산행보다 힘든 50대의 일상
매일 시간의 문을 열어봅니다.
펼쳐 보이는 하루가 천국 같은 시간이기를 바란 적은 없습니다.
손잡이에 체온이 닫기도 전에 문틈사이로 어둠이 느껴집니다.
막내는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자신의 가족의 문제점은 뭘까요?"라는 질문에 "돈이 없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은?" "돈 좀 주세요"라고 썼다고 합니다.
출근을 해서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를 마십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머그컵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납니다.
지금은 그런 여유가 없습니다. 쓴맛의 강도만큼 빠르게 각성을 해야 합니다.
돈이 불러온 답답한 마음을 카톡으로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위로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서글프게도 무거운 돈이야기를 할 사람이 이제는 서로밖에 없습니다
결혼 이후 아내는 제게 "내영혼"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졌습니다. 저보다 맑은 영혼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부적과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의 대화 속에서도 저보다 나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며 후회하는 남편의 우울한 모습에 "그래도 웃음이 나는 건, 신랑의 글솜씨"라는 위로를 담아냅니다.
볼품없는 글솜씨라는 사실에 웃음 지을 수 있다는 건 "사랑"입니다.
제가 아내를 향한 사랑보다 아내의 사랑이 깊음을 느낍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농도가 곧 그 사람의 "인격"일 것입니다.
역시 아내는 저보다 나은 사람입니다.
아직은 견딜만합니다. 막내의 말과 행동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습니다. 저의 고민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치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마음의 여유도 남아 있습니다. 가끔씩 '어떻게 되겠지' '더 열심히 살면 되지'라는 막연한 호기도 부려봅니다.
그러나, 우울은 가시지가 않습니다.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시기와 질투라는 뿌리가 보입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아니라 남들보다 뒤처질 것 같다는 불안감입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의미 없는 외침입니다.
오늘도 너그러운 척, 똑똑한 척, 사랑하는 척하며 살아갑니다.
언제쯤 '사람다운 사람'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