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있다
1456년, 한양. 여름.
소식이 들렸다.
성삼문이 죽었다. 박팽년이 죽었다. 이개가 죽었다. 하위지가 죽었다. 유성원이 죽었다. 유응부가 죽었다.
여섯 개의 이름이 하루 사이에 사라졌다.
시습은 그 이름들을 들었다. 들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냥 서있었다.
길 위에 서있었다. 사람들이 그 옆을 지나갔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다. 광인이었으니까.
광인의 옆을 사람들은 보지 않고 지나간다.
여섯 개의 이름. 여섯 명의 사람. 살았고, 웃었고, 글을 썼고, 밥을 먹었고, 잠을 잤던 사람들.
어제까지 살아있었던 사람들이 — 오늘 없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하루가 있다. 하루 사이에 사람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하루는 무엇인가. 하루가 그렇게 가벼운 것인가. 하루 안에 사람이 들어있고 — 하루가 지나면 사람이 없다.
시습은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지 알았다. 이번엔 몰라서 걷는 것이 아니었다. 알면서 걷는 것이었다. 저잣거리로 가야 했다.
왜 가야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냥 가야 했다. 발이 먼저 알았다.
저잣거리였다.
사람들이 없었다. 평소엔 소리가 넘치는 곳이었다. 장사꾼의 소리, 아이들의 소리, 개 짖는 소리.
그 소리들이 없었다. 사람들이 집 안에 숨어있었다. 문을 닫고 창문을 닫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저잣거리에 무언가가 있었다.
시습은 그것을 보았다.
저것이 무엇인가.
아는 것이었다. 무엇인지 알면서 물었다. 알면서 묻는 것은 — 받아들이지 못해서 묻는 것이다.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시신이었다.
저잣거리 한복판에 시신들이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정연하게 놓인 것이 아니었다.
내던져진 것처럼 있었다. 세상에 내던져진 것처럼.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길 한쪽에서 포졸 몇이 서있었다.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막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서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포졸들의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표정을 감춘 것인지, 원래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두렵다. 저 포졸들도 두렵다. 두려운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두려움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만 두렵다. 저 시신들은 이제 두렵지 않다. 두려울 것이 없는 곳으로 갔다.
시습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잣거리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포졸 하나가 그를 보았다. 그리고 동료에게 말했다.
"광인이야. 냅둬."
가까이 갔다.
냄새가 났다. 여름이었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시습은 코를 막지 않았다. 눈을 감지 않았다. 그냥 보았다.
이분이 성삼문인가. 이분이 박팽년인가. 이분이 이개인가.
얼굴을 알지 못했다. 이름은 알았다. 그러나 얼굴은 몰랐다. 이름과 얼굴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이분들은 살았다. 그리고 죽었다. 살면서 선택했다. 죽음을 선택했다. 아니다 —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살음을 선택했다. 살아서 의리를 지키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살아있는 것이라고 선택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살기 위해 미쳤다. 살기 위해 이름을 버렸다.
이분들은 죽기 위해 이름을 지켰다. 어느 것이 더 살아있는 것인가.
질문에 답이 없었다.
답이 없어도 괜찮았다.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생각은 나중에 해도 됐다. 아니 — 생각은 평생 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했다.
시습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시신을 들기 시작했다.
무거웠다.
사람이 이렇게 무거운지 몰랐다. 살아있는 사람도 무겁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다르게 무거웠다.
더 무겁기도 했고 더 가볍기도 했다. 무게가 있으면서 무게가 없는 것 같은, 이상한 무거움이었다.
이분이 살아계실 때 이 손으로 무엇을 하셨는가. 글을 쓰셨을 것이다. 임금께 상소를 올리셨을 것이다.
밥을 드셨을 것이다. 가족의 손을 잡으셨을 것이다. 이 손이 그 손이다.
시습은 시신을 들어 옮겼다. 한 분씩 옮겼다. 여섯 분을 한 분씩 옮겼다. 힘이 들었다. 땀이 흘렀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포졸들이 지켜보았다.
아무도 막지 않았다. 광인이었으니까. 광인이 시신을 옮기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광인의 행동은 기록하지 않는다. 기록하지 않는 것은 없었던 것이 된다.
없었던 것이 된다. 그렇다면 나의 이 행동도 없었던 것이 될 것이다. 없었던 것이 되어도 괜찮다.
나는 기록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노량진이었다.
강이 보였다. 한강이었다. 여름 강물이 흘렀다. 유유히,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흘렀다.
강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가. 안다. 강은 다 안다. 그러나 강은 말하지 않는다. 강은 그냥 흐른다.
흐르는 것이 강의 방식이다. 아는 것을 말하지 않고 흐르는 것 — 그것이 강의 지혜인가, 강의 무심함인가.
시습은 땅을 팠다.
손으로 팠다. 도구가 없었다. 손이 긁혔다. 흙이 손톱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여섯 분이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여름 땅이 단단했다. 그러나 파면 파졌다.
땅은 막지 않는다. 땅은 그냥 받아준다. 산 것도 받고 죽은 것도 받는다. 씨앗도 받고 시신도 받는다.
땅이 가장 공평하다. 땅 앞에서는 임금도 신하도 없다. 살았던 것과 죽은 것만 있다.
한 분씩 누이셨다.
여섯 분을 한 분씩 누이셨다. 조용히 누이셨다. 마지막 분을 누이고 나서 시습은 한참 그 자리에 서있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붉은 빛이 강물 위에 퍼졌다. 강물이 붉게 물들었다. 하늘도 붉었다. 세상이 잠시 붉었다.
붉은 것이 슬픔인가. 아니면 붉은 것이 그냥 붉은 것인가. 하늘은 오늘도 지는 것이다. 어제도 졌고 오늘도 진다. 내일도 질 것이다. 그러나 내일 다시 뜰 것이다. 저분들은 다시 뜨시는가. 모른다. 모른다는 것을 안다.
술이 있었다.
광인에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 시습은 가끔 주막에서 술을 얻어왔다.
구걸은 아니었다. 주막 주인들이 그냥 주었다. 광인에게 술값을 받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술 한 잔을 따랐다.
여섯 분이 누워계신 앞에 놓았다.
그리고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일어서서 하늘을 보았다. 별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씩 나왔다. 어두워질수록 더 많이 나왔다.
저분들도 지금 저 별 어딘가에 계신가. 별이 사람인가. 사람이 별인가. 모른다. 그러나 별은 있다.
저분들이 살아계셨다는 것도 있다. 있었다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습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말했다. 소리를 내어 말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강물 소리만 있었다.
"용서하시오."
강물이 흘렀다. 바람이 불었다. 풀이 흔들렸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대답이 없다는 것이 용서인가. 아니면 대답이 없다는 것이 아직 용서하지 않은 것인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용서를 구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시습은 오래 그 자리에 있었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양 쪽으로 걸었다. 밤이었다. 달이 떴다. 달빛이 길 위에 내려앉았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살아있다.
그 생각이 이상했다. 아까와 다르게 이상했다. 아까는 그 생각이 무거웠다.
나는 살아있고 저분들은 돌아가셨다는 것이 — 무거웠다. 지금은 달랐다.
나는 살아있다. 그것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 책임인지도 모른다.
책임. 그 말이 새로웠다.
살아있다는 것이 책임이라면 — 그 책임은 무엇인가. 살아있음으로써 해야 할 것이 있다는 뜻인가. 저분들이 돌아가셨으니 — 저분들이 하시려 했던 것을 내가 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모른다.
지금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알 것이다. 모르면서 걷다 보면 안다. 세종 임금이 가르쳐 주셨다.
스승이 가르쳐 주셨다. 모르면서 걷는 것이 걷는 것이다.
달빛이 강물 위에 내려앉았다.
강물이 달빛을 품고 흘렀다.
강은 달빛을 받으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달빛을 받으면서 더 밝게 흐른다. 그것이 아름다운가. 그렇다. 아름답다. 슬프면서 아름답다. 슬픔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아니 — 슬픔이 있어야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
지는 꽃이 피는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지기 때문이라고 — 다섯 살에 말했다.
저분들도 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가.
그렇다. 그리고 — 그것이 너무 아프다.
저잣거리로 돌아왔다.
처마 밑에 자리를 잡았다. 시습은 앉았다. 등을 벽에 기댔다.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아침에 소식을 들었다. 저잣거리로 갔다. 시신을 보았다. 시신을 옮겼다. 노량진에 묻었다. 술을 따랐다.
절을 했다. 용서를 빌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충분한가.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그것으로 — 지금은 충분하다.
하늘을 보았다.
별이 가득했다. 어제도 이 별들이 있었다. 저분들이 살아계실 때도 이 별들이 있었다. 별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하고, 나라가 변하고, 임금이 바뀌어도 — 별은 그 자리에 있다.
저분들의 이름도 저 별처럼 남을 것인가. 지금은 지워졌다. 기록에서 지워지고, 사람들의 입에서 지워지고, 두려움 속에서 지워졌다. 그러나 — 지워진 것이 없어진 것인가. 아니다. 흙 속에 씨앗이 있다. 겨울에 보이지 않아도 씨앗은 있다. 봄이 오면 싹이 난다. 저분들의 이름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믿겠다.
바람이 불었다.
처마 끝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시습은 눈을 감았다.
나는 살아있다. 그들은 죽었다. 살아있는 것이 옳은가.
그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 평생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책임이라면 —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대답인지도 모른다. 말로 하는 대답이 아니라 — 살아서 하는 대답.
살겠다. 그리고 — 무언가를 남기겠다.
잠이 들었다.
달이 중천에 떴다. 강물이 흘렀다. 노량진 어딘가에 여섯 분이 누워계셨다.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세상은 조용했다.
— 5화로 이어집니다 —
다음 화 예고: "세조 측근이 다시 찾아왔다. '조정에 나오면 크게 쓸 것이다.' 시습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은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