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미안해 지지 않기
[나이 들수록 나에게 미안해지는 7가지]
1. 가고 싶었던 여행, 늘 '언젠가'로 미뤄둔 것
2. 즐겁게 몰입할 취미 하나 없이 살았던 시간
3.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버틴 날들
4. 그저 견디는 관계 속에서 웃어준 내 모습
5. 하고 싶은 걸 말하지 못하고 넘긴 순간들
6. "괜찮아"란 말로 내 감정을 외면한 습관
7. 한 번도 진심으로 나를 위하지 못한 삶의 방식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과거의 나에게 사과문을 쓰고 싶어진다. 아니, 정확히는 변명문에 가깝다. "그때는 정말 바빴어",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어", "시기가 안 좋았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냥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가고 싶었던 여행을 '언젠가'로 미뤄둔 것. 교토? 언젠가. 산티아고? 언젠가. 심지어 옆 동네 맛집도 언젠가. 내 여행 계획서는 "언젠가" 연대기로 가득했다. 결국 내 여권은 서랍 깊숙이서 먼지만 쌓이며 "나도 한때는 꿈이 있었다"며 한숨짓고 있을 것이다. 지금 와서 보니 '언젠가'는 '절대 안 가'의 정중한 표현이었다. 친구가 "일본 교토여행 갈래?"라고 했을 때도, 회사에서 연차를 권했을 때도, 항상 "다음에, 다음에"만 외쳤다. 그 다음은 영원히 오지 않았다.
취미 없이 살았던 시간들. "취미가 뭐예요?" 이 질문만큼 나를 식은땀 나게 하는 것도 없었다. 지금은 하지 않는 검도? 농구? 냉장고 털기? 포털사이트 뉴스 읽기? 이런 걸 취미라고 말하기엔 너무 민망하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 기타도 배우고 헬스도 다니고 러닝도 하고 블로그도 쓰는 걸까. 나는 그동안 뭘 했을까? 생각해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도 찾아보지 않았다. 주말마다 "이번엔 뭐라도 시작해보자"고 다짐하다가 결국 너크북으로 유튜브만 보며 하루를 날렸던 나.
몸의 신호를 무시한 날들. "괜찮아, 좀 더 버틸 수 있어." 내 몸이 백기를 들어도 나는 계속 밀어붙였다. 어깨가 결렸어도,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아직 젊으니까"라며 무시했다. 야식에 술에 수면 부족까지. 내 몸은 참 착했다. 그렇게 혹사당하고도 아직 나를 완전히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계단만 올라도 헉헉대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과거의 나야, 미안하다. 너의 건강한 몸을 너무 함부로 대했다.
그저 견디는 관계 속에서 웃어준 내 모습. 마치 자동판매기처럼 동전만 넣으면 미소가 나오는 사람이었다. "힘들지 않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며 웃어주던 내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그때의 나는 아마 웃음 근육이 가장 발달했을 것이다. 속으로는 "이 상황이 정말 말이 돼?"라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네, 알겠습니다"만 연발했다. 불합리한 상사에게도, 무례한 사람들에게도, 나를 이용하려는 지인들에게도. 내 진짜 감정은 어디에 숨겨두었을까.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넘긴 순간들. 목까지 올라온 말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좀 부당한 것 같아요"... 그 말들은 지금쯤 내 속에서 화석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고고학자가 내 마음을 발굴하면 "하지만요", "사실은요", "제 생각에는요"라는 미완성 문장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특히 회의 때마다 "다른 의견은 없나요?"라는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나. 분명히 할 말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괜찮아"란 만능 해결사. 내 감정의 119번이었다. 슬플 때도, 화날 때도, 서운할 때도 "괜찮아"만 외치면 만사 OK. 하지만 정작 내 감정들은 괜찮지 않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삐져있을 것이다. "괜찮아"는 내가 가장 자주 사용한 거짓말이었다. 정말로는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게 더 편했으니까. 그렇게 내 감정들을 계속 무시하다 보니, 이제는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진심으로 나를 위하지 못한 삶. 남을 위한 삶은 참 많이 살았다. 부모님을 위해, 친구를 위해, 회사를 위해, 세상의 기대를 위해. 정작 나를 위해서는 뭘 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나에게 제일 인색했다.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위한 돈, 나를 위한 선택... 모든 것이 후순위였다. "나중에 여유생기면"이라는 말로 계속 미뤘지만, 그 여유는 영원히 생기지 않았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용기 부족'이었던 것 같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걱정,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 그런 것들이 나를 현상 유지의 늪에 빠뜨렸다.
하지만 이제라도 좋다. 오늘부터는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하는 대신, 미래의 나에게 고마워할 일들을 만들어보려 한다. 작은 여행이라도 떠나고, 새로운 취미를 즐기고 있고,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하고 싶은 말은 용기 내서 한다. 그래야 나중에 또 다른 사과문을 쓸 일이 없지 않겠나.
어쩌면 이 글 자체가 과거의 나에게 쓰는 첫 번째 진짜 편지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