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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닛타임즈 Feb 08. 2022

죽음 앞에 놓인 동물들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동물권 활동가 혜린과의 대화

도살장 비질을 가서 혜린 활동가가 촬영한 돼지  ©혜린


여러 차례의 비질 사진전에 이어 새로운 동물권 전시를 진행 중인 혜린 활동가를 만났다. 그는 농장과 도살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만난 존재들을 기억하며 기꺼이 증인이 되었다. 그리고 사회가 외면해온 비인간 동물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동물들의 눈을 보면 그들의 표정이 느껴진다고 한다. 인간이 음식으로 취하는 것은 동물들의 몸이기 때문이다. 감정으로 가득 찬 얼굴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 또한 영혼을 지닌 동물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도살되기 직전 죽음 앞에 놓인 존재들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지 혜린 활동가에게 들어보자.

기자 김민선 


Q. 혜린님은 동물권 활동가로서 동물해방운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처음에 동물권 운동, 기후위기 운동, 환경-생태운동, 세 가지 중에서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세 가지 의제 모두 너무나 심각한데, 내 몸은 하나뿐이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와중에 동물권 운동을 하는 활동가분들의 절박한 모습을 봤어요. 축산업의 규모 자체가 엄청났고, 그에 비해 활동가들은 너무 적은 거예요. 우리가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동물을 너무 많이 죽이고 있었고, 저도 얼마 전까지 그것에 가담하고 있었던 거죠. 제가 가해자라는 느낌이 너무 명확해서 그것을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Q. 여러 동물해방운동의 방식 중에서도 비질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비질은 어떤 활동인가요?


비질(Vigil)은 도살장 앞으로 찾아가 곧 살해당할 존재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활동이에요. 사전에 비질을 검색하면 ‘밤샘 간호’, ‘철야 기도’라는 뜻이 나오는데요. 지금까지 당신들의 얼굴을 봐준 이들이 아무도 없었지만, 우리가 지금 여기 있으니 당신들을 목격하고 기억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토론토 피그 세이브(Toronto Pig Save)라는 단체에서 2010년 처음으로 축산업 피해자를 마주하기 위해 도살장 앞으로 찾아가면서 돼지 비질이 처음 시작됐어요. 현재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동물해방 풀뿌리 운동입니다. 비질은 동물권 운동의 가장 출발점인 것 같아요. 동물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서 동물해방운동을 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잖아요.


 도살장 비질을 가서 혜린 활동가가 촬영한 소  ©혜린


Q. 도살되기 직전, 동물들의 얼굴을 목격하는 일이군요. 


도살장 앞에서 트럭에 실린 동물들을 만나고, 그것을 기록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행위까지 크게 비질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소의 경우 조금씩 다른데, 돼지는 6개월, 닭은 겨우 30일 정도 농장에서 살다가 생애 처음으로 맑은 숨을 쉬러 나오는 날이 도살당하는 날이에요. 그런데 도살을 할 때 내장에서 무언가가 나오면 도살이 힘들어져서 절식을 시킨다고 해요. 도로 위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서 멀미도 하니까 24시간 정도 물이나 음식 아무것도 주지 않은 채로 도살장 앞에 도착을 하는 거예요. 특히, 돼지는 열이 많은 동물이라서 여름에 물을 먹고 싶어 해요. 그래서 저희가 물이나 감자, 고구마 같은 것들을 준비해 가서 주는 경우도 있죠. 


Q. 고통받는 동물들을 직접 만난다는 건 혜린님에게도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일 것 같아요. 그럼에도 비질을 지속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요즘 레프 톨스토이의 말이 자주 생각이 나는데요. 고통받는 존재를 목격하고 그들의 고통이 당신에게 고통으로 다가올 때, 회피하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 고통받는 존재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라는 말이었어요. 모든 사회에서 동물을 음식으로만 바라보게 만들어요. 사람들은 치킨, 삼겹살을 욕망하고, SNS에 공유하고, 미디어가 홍보하죠. 그래서 동물권 활동가인 저조차도 계속 신경 쓰지 않으면 동물 혐오적인 시선에 중력처럼 빨려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제가 목격한 존재는 분명 우리와 같이 말을 할 수 있었고, 비명을 지를 수 있었고, 살고 싶어 하는 존재였어요. 아직도 비질을 갈 때마다 비현실적이에요. 여기서 나와 마주한 존재들이 불과 100미터 떨어진 도살장으로 들어가면 죽임 당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요. 그래서 진실을 인지하려고 가는 것 같아요. 


Q. 도살장을 갔을 때 그곳의 직원분들을 만나면 반응이 어떠신가요? 


사실 직원들이나 트럭 기사님들한테 욕을 많이 먹어요. 도살장 앞에 와서 동물들을 보고 있고, 촬영하는 저희 모습이 불편한 거예요. 저희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데도 비난받는다고 느끼시는 거죠. 물론 지지하거나 존중해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공격적으로 대하시는 경우에도 저희는 직원분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분들도 축산업의 피해자로서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값을 지불하고 축산업 종사자에게 동물을 사체로 만드는 작업을 외주 맡긴 거나 다름없어요. 심지어 도살 작업은 너무 위험해요. 칼에 잘못 다칠 수도 있고, 바닥에 피가 낭자해서 미끄러우니까 넘어질 수도 있고요. 그들이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에는 삶의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을 탓하기보다 사회 구조를 바꿔서 이 직업을 선택할 수 없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동물들을 죽이고 있지만, 훨씬 동물에게 가깝게 존재하는 그들과 같이 해결해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까지 동물권 활동의 일환인 것 같아요.


수산시장 비질을 가서 혜린 활동가가 촬영한 물살이  ©혜린


Q. 도살장뿐만 아니라 수산시장에서도 비질을 하시잖아요. 물살이 비질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상대적으로 포유류와 만나고 관계 맺기 쉬운 반면, 물살이에게는 감정을 잘 이입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도 물살이보다는 소랑 돼지 비질을 먼저 갔었어요. 그런데 저한테는 수산시장 비질이 훨씬 더 충격적이었요. 저는 목포에서 태어났는데 해안 지역이다 보니 물살이를 많이 먹으면서 살았거든요. 그런데 이들을 동물로 보기 시작하니까 너무 다르게 느껴지는 거예요. 관계를 맺기 어렵다 하더라도 어떤 생명을 이렇게까지 함부로 다룰 수가 있나 싶었어요. 수산시장을 가면 도살장 비질과는 다르게 살해 장면을 사람들한테 보여줘요. 막 건져 올려서 팔딱팔딱 살아있는 것을 죽이는 게 가치 있다고 홍보하는 거죠. 수조만 봐도 ‘가자미 몇 그램에 얼마’라고 적혀 있어서 물건처럼 생각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비질을 가도 이 장면이 너무 익숙해서 집중을 못 하는 분들도 계세요. 횟집을 봐도 수조에 물살이가 있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있잖아요. 그래서 배제되는 물살이를 더 마주하고 자주 얘기하고 싶어요.


잎싹이가 구조된 도계장 ©혜린


Q. 혜린님이 도계장에서 구조하신 닭 잎싹이와의 이야기도 너무 궁금한데요. 잎싹이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건가요? 


비질을 함께 하고 있는 소모임이 있는데요. 거기서 포천에 있는 도계장으로 비질 답사를 갔었어요. 그 앞에 닭 한 명이 돌아다니고 있는 거예요. 닭들이 빛에 예민하다 보니 농장에서 트럭을 닭들을 옮기는 작업을 새벽에 해요. 그 도계장에서 도축하는 산란계들은 주로 흰색 닭인데, 그 사이에 갈색 털을 가진 잎싹이가 섞여 있었던 거예요. 작업하는 노동자가 잘 모르고 잎싹이까지 넣어버린 거죠.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해요. 도계장에 도착해서 트럭을 주차했는데 기사님이 잘못 섞인 잎싹이를 발견한 거예요. 그곳에 있던 닭들은 도축하면 한 명에 천 원이 안 된대요. 그런데 잎싹이는 병아리라서 살이 없기 때문에 도축해봤자 돈이 안 되니까 그 앞에 그냥 꺼내 준 거죠. 


Q. 도계장 앞에서 겨우 살아남게 된 거네요. 


그래도 여전히 폭력적인 상황이었어요. 도계장 근처에 고양이가 되게 많은데, 고양이가 새, 그러니까 닭을 공격하잖아요. 바로 옆이 도로이기 때문에 로드킬을 당할 위험도 컸죠. 그곳에서 잎싹이가 10일 간 겨우 살아남았고 그 앞에 저희가 나타난 거예요. 심지어 자기처럼 생긴 동물들이 트럭에 갇혀서 고통스럽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습을 매일 봐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당장 구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가 잡으면 데려가도 되는지 여쭤보니까 ‘데려가. 근데 안 잡힐 거야.’라고 하셨어요. 4명이서 1시간을 넘게 쫓아다니다 결국 구조를 했고 제 집으로 택시를 타고 얼른 갔어요. 저희가 잡고 나니까 우리 재산인데 왜 가져가냐고 뺏어갈까 봐 무서워서 품에 숨겨서 얼른 집으로 왔죠.


혜린 활동가와 잎싹이  ©혜린  


Q. 그렇게 어렵게 잎싹이를 구조한 후에 함께 사는 생활은 어떠셨나요? 


잎싹이가 가장 불편해했던 점은 빛이 없으면 잠을 못 잤던 거예요. 아마 잎싹이가 불이 없는 곳에서 잠을 잔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몸을 빨리 불리려고 성장촉진제를 맞추고 나서 닭들을 잠을 안 재우기 위해 농장에 불을 항상 켜놓는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불을 끄면 불안해하면서 제 주변을 막 돌아다녔어요. 더 어려웠던 점은 인근 아파트 산책길에서 잎싹이랑 산책을 다녔는데 신고를 많이 받았던 거예요. 경비원 분이 ‘동물이 있다고 신고 들어왔다’면서 저희를 쫓아내셨어요. 인간, 개, 고양이가 아닌 이상한 동물, 그러니까 닭이 여기 들어왔다는 게 불편하다는 거죠. 다른 공원에는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잎싹이랑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이상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밀양에 보내게 되었어요. 전에 동물권 활동을 하던 친구들을 귀농을 했고, 다른 닭들 세 명도 같이 살고 있었거든요. 


Q. 잎싹이는 밀양에서 다른 닭들과 잘 지내고 있나요? 


잎싹이가 그곳으로 간 후에 너무 건강해졌어요. 원래 분리불안이 있어서 제가 없어지면 불안해했는데, 이제 저는 신경도 안 쓰더라고요. 닭 커뮤니티 안에서 적응도 잘했고, 다른 닭들이랑 뒷산에서 놀면서 근육도 생겼어요. 그래도 잎싹이는 도계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닭들과는 다른 점들이 많아요. 개량을 했기 때문에 장애를 많이 입고 태어난 거죠. 원래 닭은 인간 여성이랑 생리 주기가 거의 비슷해서 한 달에 일주일 정도 알을 낳고 삼 주는 쉬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잎싹이는 일주일에 세 번은 알을 낳아요. 심지어 닭발을 먹기 위해서 발도 훨씬 크게 개량을 했어요. 새들은 부리가 뾰족해야  벌레도 쪼아서 잡아먹을 수 있는데, 부리도 뭉툭하게 개량을 해요. 도살당하는 닭들에게 필요가 없으니까요. 


Q. 잎싹이와 함께 살면서, 그리고 비질을 하며 동물들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제가 어쩌다 보니 비질을 하면서 찍은 사진으로 전시를 하게 됐는데 많은 분들이 전시에 와서 사진도 봐주시고, 제가 쓰는 글도 읽어주시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동물들을 직접 만나 보시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한 번이 아니라 무조건 여러 번이요. 비질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제가 쓰는 글도 인간의 언어이기 때문에 인간의 시선이 담길 수밖에 없거든요. 매체를 통해 접할 수는 있지만, 그들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에요. 그들이 우리와 같은 생명이고, 그들에게도 관계가 있고, 표정과 얼굴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만 해도 정말 많은 것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저도 동물권 운동을 하는 중 잎싹이를 만나면서 새로운 만남과 관계가 시작된 것 같아요.  




혜린 활동가는 오는 2월 20일까지 문화공간 길담에서 ‘잎싹이와 잎싹이가 될 수 있었던’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도살장에서 살아남은 닭 ‘잎싹이’와의 기록, 그리고 살아남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전시 관람과 함께 혜린 활동가가 당부한 것처럼 직접 동물들과 눈을 마주하고 시선을 나누는 시도를 해보길 간절히 권해본다. 고기가 아닌 살아 존재하는 생명으로서, 서로의 눈을 마주하는 관계로서 동물들을 만나보길 바란다. 눈을 돌리고 싶은 마음을 넘어 고통받는 존재들에게 함께 다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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