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비누의 시대 : 비누를 품은 역사

2,570살 비누를 둘러싼 이야기

by 플래닛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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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열풍에 가장 큰 성장을 이룬 산업은 단연 비누시장이다. 꽤 많은 사람이 ‘플라스틱 제로’를 응원하면서 바디워시, 샴푸, 트리트먼트 등의 세안용 소비재를 액체형에서 고체형으로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리필스테이션이나 소분가게도 주목받고 있지만, 비누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친환경 시대가 도래하면 제조업이나 유통업 등이 쇠퇴할 것이란 우려와 달리 오히려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친환경/비건 화장품이 있다. 참 흥미롭다. 화장품은 누가봐도 소비재로 분류된다. 지속 가능한 상품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체비누에 열광하고 있다. 왜일까?


플래닛보이스(PLANET VOICE) vol.2에서는 기원전 2800년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곁을 단 한순간도 떠나본 적 없는 ‘비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친환경 시대의 비누. 대략 3,572년 동안 우리의 화장실 한켠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온 비누의 역사를 알아보고 현재 비누 시장의 성장을 살펴보자.




기원전 1550년생 비누가 온다


불멸의 비누가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기원전 2800년경이다. 메소포타미아 남쪽 고대 왕국인 바빌로니아 시절에 비누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대 로마인들은 언덕에 재단을 만든 뒤 양 같은 동물을 태워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제사 후 언덕에 타고 남은 재를 물통에 담아 옮겼는데, 우연히 그 통에 걸레를 빨던 사람들이 때가 잘 없어지는 걸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부터 로마인들은 동물의 기름재를 사포(sapo, 제사를 지내던 언덕)라고 불렀고 그것이 오늘날 비누의 영단어 솝(soap)이 됐다. 가장 원시적인, 기원에 가까운 비누의 시초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기름재 = 비누?


기름재를 담은 물통에 걸레를 빨았더니 때가 잘 없어졌다고? 왜 동물이 타고 남은 재가 물에 탔을 뿐인데 때가 벗겨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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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의 원리는간단하다.알칼리 성분과 지방질을 섞어서 열을 가하면 물과 쉽게 결합하는 친수성분, 기름과 친유성분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그래서 몸을 씻을 때 비누가 물에 녹으면서 친유성분이 오염되고 분리되어 피부와 오염물질에 붙어 몸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물로 비누를 닦아내어 친수성분 덕분에 오염물질이 물에 씻겨 내려간다.


간단하게 말하면 비누는 기름과 물 각각에 잘 달라붙는 성분을 하나의 원자에 갖고 있다. 이 성분들은 비누를 몸에 사용하면 기름과 친한 성분은 인체 오염물질에 달라붙고, 물과 친한 성분은 물과 달라붙어 물로 비누를 씻을 때 함께 쓸려 내려간다는 말이다.


잿물은 이러한 원리로 비누의 역할을 수행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풍습이 전해져 내려와서인지 유럽에서는 동물의 기름인 수지와 잿물을 섞어 비누를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풀즙과 밀가루를 섞은 응고제인 여뀌와 잿물로 석감을(비누) 만들었다.


우리가 무슨 민족입니까?!


우리는 백의민족이다. (물론 다른 민족이기도 하다.(번쩍)) 19세기에는 한국을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이 흰옷을 입고 있다는 데 강한 인상을 받아 우리 민족을 ‘백민’ 혹은 ‘백의민족’이란 별칭으로 불렀다.


흰옷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금세 더러워진다. 내가 조심해도 외부의 충격으로 더러워질 수도 있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여름에는 땀자국에 얼룩이 남기도 한다. 특히 지금처럼 현대사회가 아닌 농경사회였던 과거에는 흰 옷을 입으면 매일 같이 빨레감에 시달렸을 테다. 이때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이용해 더러워진 흰 옷의 때를 벗겨냈을까?


우리나라도 중국이나 유럽처럼 잿물을 이용해 옷의 때를 뺐다. 다만 동물 기름이 아닌 식물을 태운 재를 모아두었다가 물을 부어 불그스름한 잿물이 나오면 그 물을 사용해 세탁을 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콩깍지잿물, 창포뿌리를 말린 가루, 토란 삶은 물 등도 세정제로 사용했다. 잿물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규합총서』에 잘 기록되어 있다.


“옷의 때가 안 지는 것은 토란 삶은 즙에 빨면 희어진다. 창포의 흰 뿌리를 구리칼이나 대칼로 얇게 저며 볕에 말린 뒤 가루를 내어 물그릇 속에 넣고 때 묻은 옷을 담가 그 가루를 뿌리면서 빨면 깨끗해진다. 콩깍지잿물에도 묵은 때가 잘진다.”


이때까지만 해도 과거 우리 조상들은 잿물을 자주 사용했다. 익히 알고 있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 역시 세정제를 사용했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2022031558239159.jpg 네덜란드 하멜의 동상


국내에 비누가 처음 알려진 건 네덜란드인 하멜의 표류 때문이다. 당시 하멜이 타고 있던 무역선은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폭풍을 만나 제주도 해안에 좌초됐다. 하멜은 동인도 무역회사 소속으로, 그가 타고 있던 배에는 값비싼 향료는 물론이고 당시만 해도 귀족만 사용하던 비누가 실려있었다. 무역선이 좌초되면서 하멜은 물론 비누까지 조선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비누의 이면, 이데올로기


제1의 비누 르네상스 시대라 부를 수 있는 18세기는 제국주의와 인종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였다. 안타깝게도 비누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흑인을 괴롭히는 매개체로 이용됐다. 흑인의 피부를 악의 상징으로 삼고, 몸도 더럽고 병균이 득실거리는 것으로 치부하며 비누를 청결이 아닌 핍박과 차별의 도구로 쓴 것이다.


당시 유럽인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비누 광고’다. 엔드류 피어스가 운영한 비누 브랜드 ‘피어스’는 19세기 비누 시장의 한 획을 그었다. 1895년 피어스는 비누 광고에 ‘검은 피부색’을 더러움 상징으로 삼고 씻고 나온 아이가 백인처럼 하얀 모습으로 변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오염물질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비누의 성질을 극대화하기 위해 광고에 ‘인종차별’ 이데올로기를 주입한 것이다. 이밖에도 피어스의 광고는 혀를 내두를 만큼 심각해 비누 자체의 성능과 효능보다는 이념을 이용한 최악의 광고로 손꼽힌다.


202203155322308.png 피어스 비누 광고. 광고속 흑인 아기는 비누를 사용해 목욕을 하고 몸이 백인처럼 하얗게 변했다. ©트위터


피어스의 인종차별적 비누 광고는 현재 우리가 보기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런데 현대에서도 비누 같은 세정제 광고에 흑인과 백인을 등장시켜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광고가 송출돼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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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547188812.jpg 2017년 도브는 비누의 세정 효과를 강조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도브는 피어스 비누와 합병해 유럽 내 비누 시장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트위터


비누를 중심으로 역사 속 다양한 이야기를 훑어봤다. 우리의 역사는 서로 얽히고설켜 그속에서 비누는 특유의 향기를 잃지 않고 존재감을 유지한다. 친환경, 환경보호, 필必환경시대라는 환경 관련 키워드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한 ‘비누’. 비누를 둘러싼 이야기들로 흥미가 돋았다면 2편 ‘제2 비누의 시대 : 환경시대와 비누의 성장’에서 더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접해보자.



※참고자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소비의 역사:지금껏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 설혜심 지음, 휴머니스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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