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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Jul 15. 2024

<불과 5개월도 채 안 되어 많은 것을 이루었다>

- 10년의 계획, 조금씩  주춧돌이 세워지고 있다.

비 오는 밤, 밤 산책을 하고 왔다. 낭만이 다정하다. 추적추적,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오는 비, 우리는 즐기면서 천천히 걸었다. 비 오는 밤거리가 위험스러울 수 있다. 빗길이 미끄럽고 어둡고 사람들이 많이 안 다닌다.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홀딱 다 맞고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연신 쓰다듬어 올리면서 걸어가는 젊은 성인 남자들이 보인다. 혼자 산책을 하면 을씨년스럽고 우울할 수가 있다. 그런데 나는 남편과 같이 걸어가니 안심이 된다. 


가벼운 작은 우산을 쓴 나는 긴 머리도 스커트도 많이 젖었다. 집에 오자마자 내가 생각하는 물 온도에 맞게 반신욕을 했다. 늘 하던 대로, 남편이 반신욕을 할 수 있게 물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화장을 지우고, 머리를 감고, 가벼운 샤워를 하고 반신욕을 10~15분 정도 즐긴다. 몸이 너무 힘들지 않게 적당히 즐기는 편이다. 그 욕조의 물이 깨끗해서 얼굴도 안 씻고, 머리도 안 감고, 가벼운 샤워도 하지 않은 남편은 그 물에 바로 들어간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유튜브 영상이나 인터넷 신문 뉴스거리를 읽으면서 반신욕을 나보다는 더 오래 즐긴다. 보통 20분~30분 정도 즐기는 것 같다. 


남편이 반신욕을 하는 동안 나는 내가 이루어 낸 것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았다. 퇴사하기 전, 생각해 두었던 것들도 있었지만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0"에서 시작하자고 결심했었다. 국어논술강사로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도 썩 내키지는 않았다. 요즘의 국어논술 시장의 트렌드를 알아보기도 했었다. 감을 잡고 일을 하면 예전의 인기 강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고는 싶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나는 번아웃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쉬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급할 필요는 없었다. 집에서 시간을 유용하게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부터 먼저 했었다. 어떤 분명한 정해진 것들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1년은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로 채워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럼, 뭔가가 정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서 쉬면서 고심하고 계획했었던 일들을 3월부터 실행에 옮겼었다. 


- 퇴사하고 올해 2월까지 : 영어회화 공부(나를 몰입시킬 공부, 여행을 목표로),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몇 달 들으면서 내 아픈 마음을 내가 위로하고 달랬다.(왜? 그 노래였는지는 모르겠다. 원래 좋아한 노래는 아닌데, 내가 노래를 장르 구분 없이 그때그때마다 잘 듣는다. 김윤아 가수는 동경하고 있었다. 멋지니까, 노래를 잘하니까, '스물다섯, 스물하나', '집으로 간다'도 나중에는 들었다.


- 백화점 문화센터를 선택한 이유 : 내가 살지 않는 도시로 기차 타고 가니까 당일 여행으로 힐링이 되고, 앞으로 혼자서 하는 여행을 하고 싶고, 나 혼자서 앞으로는 살아가야 하니까(이혼을 결심하고 실행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무엇이든지 잘해야 되니까 연습을 해야 된다. 또 백화점은 마트보다는 유행을 선도하고 젊고 아름답고 멋진 여자들이 많으니까, 남들은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궁금하니까 그리고 내가 사는 소도시에는 내가 배우고 싶은 게 잘 없다. 또 있다고 해도 강사 수준을 보장할 수가 없어서, 또 있다. 내 취향에 맞는, 내가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을 나 혼자서, 먹는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음식을 즐기고 싶어서다. 남편은 빨리 많이 후다닥 먹는다. 내가 먹을 틈이 없다.


1. 작가가 들려주는 동시대 미술사 이야기 수강 

 - 문화 예술 공간이 확장, 향유하게 되어 나의 일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풍요로워졌다.

2. 가볍게 시작한 미술 공부 - 도슨트 양성 과정 3개월 - 다음 주면 도슨트 수료 : 내가 좋아하는 미술에 대해 한참 부족했었던 지식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전시장을 가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 빡세게 공부하여 나만의 미술적 지도를 만들었고, 나만의 안목과 기준이 생겼다.

(빡세게 :힘들게,라는 표준어가 있다. 하지만 나는 빡세게,라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 가를 보여 줄 수 있는 단어다. 이런 말을 평소 나는 전혀 쓰지 않는다. 비교적 표준어를 쓰려고 한다.)

3. 작년 봄부터 올봄까지 5번의 외국여행 - 호주 6박 8일, 스페인 6박 8일, 베트남 나트랑 달랏 3박 5일, 베트남 하롱베이 3박 5일, 일본 북해도 3박 4일 

- 남편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점차적으로 갈등과 긴장이 완화되어 많이 행복해졌다.

4. 가곡, 발레,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나

- 아침부터 밤까지 마음껏 향유하고 있다. 

5. 화요 라인댄스, 화요 라틴댄스, 금요 라인댄스 

 -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운동을 하면 에너지를 뺏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운동을 하는 사람은 에너지를 오히려 얻는다는 것을 안다. 춤 역시 운동과 똑같다. 춤을 춰보지 않은 사람은 춤의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춤은 사람을 몰입하게 만든다. 박자와 안무에 맞게 춰야 하기 때문에 잠시 잠깐 다른 생각을 하면 박자도 안무도 놓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래서 몰입하게 되니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게 만든다. 그리고 추는 동안 기쁨과 웃음, 행복으로 안색이 아름다워진다. 몸의 라인도 예뻐지고 근력도 생긴다. 집에서도 틈틈이 연습을 해야 한다. 잘 추는 사람들이 많아서 못 추면 안 된다. 왜냐? 자꾸 삑사리 나듯이 하면 춤을 즐길 수가 없다.

(문화센터 라틴댄스반 : 남자와 춤을 추는 듀엣이 아니다. 우리 수강생들은 솔로댄스를 배우는 것이다.)

6.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어 지금 나는 마음껏 글을 쓰고 있다.

- "나의 정체성을 찾았다" 

7. 작가가 그린 나만의 그림 2점을 갖게 되었다. 

- 20호, 20호보다 조금 더 큰 것 : 나만의 그림 보는 안목, 그림 사는 기준이 생겼다. 잘 알고 있는 작가의 그림을 사 주고 싶다. 우리 주변에는 또 다른 프리다 칼로가 많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의미가 있는 그림을 사려고 한다. 나는 260만 원 이상의 명품백을 단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그림은 내가 정말 통 크게 샀다. 그런 나를 남편이 신기해한다. 그래도 내 뜻을 알고 수긍해 주었다. 


반신욕을 하고, 목욕 가운을 입은 남편이 내가 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또 글 쓰고 있어요. 허허."

"네."

"무리하지 말아요. 작가님."

요즘 남편은 나를 작가님,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불과 5개월이 채 안 되었다. 7월 8일 오후 5시 33분 브런치스토리 작가 합격 발표를 다음날 9일 새벽에 확인하고부터 나는 지금까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고 있다.


일요일 오후, 전시가 끝난 나의 그림을 갖고 오는 고속도로 차 안에서 남편은 감개무량하는 듯했다.

"야, 생각도 못했봤다. 단 한 번도, 내가 갤러리도 가보고, 그림도 이렇게 사 갖고 오고, 와 정말 신기해!"

'이 남자는 복도 많다. 나 같은 여자를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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