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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Jul 09. 2024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1>

- 휴면기에 나는 무엇을 할까?

나는 휴면기를 시작할 때 나를 알아가자.”라고 결심했다

나는나를 알아가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사람은 왜 살아야 할까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이 들 때, 50대 중반에 든 가여운 여자는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몹시 힘들었다. 


나는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어떤 사람을 피해야 하는지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배우를 좋아하는지어떤 취미를 좋아하는지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취미를 가져야 할까? 내게도 취향이라는 것이 생길 수 있을까? 내게도 특기가 생길까?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나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그동안 국어논술강사가 되고 싶어서 오랫동안 공부했었고학생을 잘 가르치고 싶어서 오랫동안 공부했었다또 소설 등단을 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습작을 했었다국어논술강사가 되었고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글짓기 상도 많이 받게 했다입시논술 수업을 하여 좋은 대학교도 보냈다또 소설 등단도 오래전에 했었다지역 문인협회도 참여하기도 했었다그러나 이내 염증을 느꼈다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결혼생활을 하면서 오랫동안 혼자서 고독하게 꿈을 위해 학교를 다녔고 공부를 했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오랫동안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그러나 그 말 외에는 대체할 말이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나는 원래 성향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서 책 읽고 영화 보고 무언가 성취하는 것을 좋아했다그런데 문학에 대한 열정도 차츰 식어졌다또 남편이 큰 빚을 졌다.(남편의 월급은 한 푼도 받을 수가 없었다빚을 갚기에도 부족했었다그런 여러 가지 이유가 섞여 나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학생들을 많이 가르쳤다



 그런데 이제 나의 휴면기를 마련해 보니 나는 일반인들이 잘하는 운전수영노래 등을 잘하지 못했다운전면허증도 운전이 무서워서 운전학원에도 결심만 하고 선뜻 가지 못했었다수영은 동남아 여행 가서 재미있게 놀고 싶어서 배우고 싶었지만 물이 무서워서 동경만 했었다노래는 음치에박치에 누가 노래방에 가자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났었다노래방에서 내내 박수만 치다가 노래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만 했었다그렇지만 나는 음악만 나오면 리듬을 잘 탔었다나는 춤을 좋아했다하지만 남들 눈이 꺼려져서 춤을 마음껏 추지는 못했다결혼 전에 친구들과 몇 번 나이트클럽에 가본 게 전부다.(그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도 종종 갈 때가 있었다그렇게 나쁜 문화는 아니었다.)     


나도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여태 못 놀아본 것한 1년 정도 실컷 놀아보고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알게 되면 열심히 배워야겠다. 그리고 나에게 많은 기회를 주어야겠다.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내 자식들을 키운 것처럼 내가 나의 학부모가 되어 나를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남들처럼 문화센터 다니면서 취미를 가지고 싶었다배우다 보면 잘하겠지. 시간도 들이고 노력도 정성도 들이면 나도 잘하는 게 생기겠지


나는 관절이 좋지 않았다초등 5학년쯤 다락방에서 내려오면서 발목 인대를 다친 이후로 줄곧 자라면서 발목 인대를 다치기 일쑤였다버스에서 내려오면서도 다치고평지를 잘 걸어가다가도 다쳤다몇 달을 침을 맞으면서 치료를 했었다결혼 이후에도 몇십 년을 그렇게 지냈었다늘 한의원을 다녔었다고달팠다건강하지 않으면서 항상 배우러 다니고공부하고살림하고돈을 벌기 위해 다니고나는 줄곧 힘든 생활을 했었다봄 소풍도 가을 소풍도 남들은 다 가는 데 공부해야 할 때가 많았고(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시험 치는 기간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주말도 일을 해야 했었다


지난 4년 주간보호센터도 안정되기까지 일주일 내내 일했었고, 간호에 대한 공부, 사회복지사 공부를 했었고, 행정업무 공부를 했었다. 어르신들과 보호자, 직원들에 대한 상담 등 늘 긴장의 연속리스크의 연속이었다   


나는 쉬고 싶었다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었다.

무조건 나는 나를 쉬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을 잡아먹고살고 싶지는 않았다허탕 치는 세월로 놀고먹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퇴사 후, 10월부터 그다음 해 2월까지는 남편과 남은 잔해가 많아서  가끔 지칠 때까지 부부갈등과 부부싸움이 있었다그래도 나는 나의 휴면기를 위해 내가 정해 놓은 루틴대로 하루를 잘 견뎌내면서 하루를 채워갔다내가 계획한 하루의 것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오늘 하면은 "됐다잘했다,라고 넘어가자행복해하자" 그런 결심을 했었다오늘 내가 먹은 그릇을 설거지했다. 오늘 내가 정한 작은 구역이라도 정리하고 청소했다.

 "그럼잘했다." 

혼자 지내지만, 작은 계획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이루어 나가는 내가 정말 좋았다. 마음에 들었다.


나는 꽤 머리가 길다. 주로 조금씩 변형한 롱헤어펌을 한다.

오늘은 두피클리닉을 받으러 간다오늘은 컷을 하러 간다.(조금씩 컷을 해주어야 건강하게 자란다) 헤어숍에는 일주일에 1번은 가려고 했다두피클리닉은 외출하기 위한 장치였다기본 두피클리닉은 3만 원이다. 3만 원에 내가 원한 차와 어울리는 작은 비스킷 또는 견과류 1 봉지가 나온다매거진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고헤어 디자이너와 이런저런 가벼운 대화도 나누며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또 마무리를 잘해주어서 출렁이듯 아름답게 드라이한 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나는 언제나 준비된 모습이고, 단정하고 예뻐 보였다. 이따금 시선이 느껴질 때 괜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세상과 등지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은둔형이 아니라 혼자서 잘 지내는 사람이다. 


내가 예뻐졌기 때문에 아이쇼핑도 가고 또 내게 필요한 것들로 채워 나가니속상했었던 괴로운 일들에서도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을 했었다나는 내가 은둔형이 되는 것은 싫었다나는 사회성을 잃고 싶지 않았다휴면기(내 몸과 마음이 쉬면서 회복되는 기간)를 지나고 나면 언젠가는 내가 사회 속으로, 나의 꿈속으로 걸어갈 것이기 때문에 하루에 1번은 외출을 했었다계절도 느껴야 했었다그래야 어울리게 옷차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모르는 누구 하고라도 가볍게 대화를 하려고 했었다간단한 인사라도

집 앞에 있는 다이소에 가서 아이쇼핑도 하고, 1000 원하는 머그컵이라도, 예쁜 장식품이라도 사 갖고 왔었다. 작은 공간에 꽃이 펴지고 웃음이 감돌고, 내가 있는 공간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런 온기가 좋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내가 좋았다 지금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희망의 싹이 자라고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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