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 다 아물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아직도 그 지난 4년을 떠올릴 때면 아프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지난 4년을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이 생긴 것은 그 지난 4년 시간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지난 4년 꽤 여러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 하나의 유형은 어르신들의 세계다. 그들이 말하는 공통점은 대략 이러하다.
"그때 그렇게 할걸."
"그때가 좋았어."
"아직도 젊네. 괜찮은 나이네."
50대의 나이에서는 40대, 30대, 20대 심지어 10대의 나이가 부럽다. 내가 그때였으면, 내가 그때의 나라면 한 번쯤 생각해보암직 하다. 60대의 나이에서, 70대의 나이에서, 80대의 나이에서 보면 일 년 전이 훨씬 젊은것이다. 한 살이라도 어리면 부러운 것이다. 90대의 나이에서, 심지어 100살의 나이에서 보면 어제가 더 젊고 일주일 전, 한 달 전이 더 젊고 괜찮아 보이는 것이다.
50대의 중년도 아직은 젊다.
60대의 노년이 시작되는 시기도 아직은 젊다.
팔팔한 나이다.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다.
이 나이대를 후회하지 않으려면 즐겨야 한다. 즐긴다는 것은 소비가 아니다. 오히려 생산적이다. 공부도 즐기는 사람을 못 이긴다고 하지 않는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즐기는 사람은 생산적이다. 즐겨야 생산적이 된다. 생산적이라는 말은 효용가치가 높은 말이다. 에너지가 넘치고 시너지가 되어서 다른 일까지 잘하게 되고 결국은 성공적인 삶으로 연결이 되기도 한다. 성공적이다라는 말은 물질적인 것부터 육체적인 건강, 정신적인 것, 사회적인 것, 정서적인 것, 심리적인 것을 다 포함하는 말이다. 어느 것 하나 치우치지 않는 삶이야말로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 재미있게 살고 싶다. 여유를 갖고 싶다. 여유를 부리고 싶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이고 죽음은 비투명성이지 않는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으로 가는 길을 가고 있다고 하는데, 그 죽음조차도 불안하지 않다면 잘 사는 인생, 잘 살았는 인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슬픈 어르신들을 꽤 만났다. 70대 초반이고 건강해 보이고 예쁘기까지 한 어르신이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집에 가야 한다고 떼를 쓰고 나갈 입구, 문을 찾아다니면서 서성인 어르신이었다. 나는 그 어르신에게 '오빠 생각' 같은 동요를 들려 드렸다.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동요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것도 없었다. 이상하게 신기하게도 나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분들의 처방법을 알게 되는 듯했다. 동요를 들려드리고 옆에서 정다운 이야기들을 나누면 이내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분이셨는데, 매일 그 어르신이 돌아다니면서 떼를 쓰고 화를 내고 해서 다른 어르신들에게도 불편을 드렸고 직원들도 꽤 애를 먹었다.
그 어르신은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해서 심하게 냄새가 났었다. 그래서 아침에 모시고 오면 바로 목욕부터 씻겨드려야 했었다. 그 어르신이 그렇게 일찍 치매를 겪게 된 이유는 알고 보니 남편분이 꽤 공포스럽게 한 괴팍한 성격 때문이었다. 화를 잘 냈었던 분이었다. 그에 비해 어르신은 꽤 다정하고 성향이 여린 분이셨었다. 결혼한 딸이 근처에 살고 있었고, 결혼하지 않은 비교적 젊은 아들도 있었지만 남편분이 집에서 어르신의 대소변 케어를 힘들어해서 요양원으로 가셨다. 요양원으로 가시는 날, 주간보호센터에 있는 마지막 날, 저녁식사를 하고 댁으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조용한 곳에서 우리 두 사람만 있을 때, 그 어르신은 나를 안아주시면서 내 귀에다 대고
"잘 살아."
라고 하셨다. 그 말이, 그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그 어르신은 여기 있는 날이 마지막인 것을 알고 계셨고(대개 가족들은 그런 날짜를 알리지 않는다. 갑자기 가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여기에서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 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여자였으니까, 눈치로 알고 계셨는 것 같다. 나처럼, 그분이 동요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을 내가 알아챈 것처럼. 그분이 내 귀에 대고 한 그 말이 "잘, 살아." 아주 오랫동안 퍽 위로가 됐었다.
자녀가 효자로 효녀로 알뜰히 잘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다른 일상생활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대소변 케어가 힘들어지게 되면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요양원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쁘지 않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 자신을 살필 수 없고, 나 자신이 나를 책임질 수 없을 때가 되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들이 점차 줄어든다. 그게 현실이다. 그 현실은 슬프다. 나 역시 그런 현실을 맞닥뜨릴 때가 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현실이 오더라도 행복한 추억이 많은 사람은 죽음까지 어쩌면 잘 견딜 수도 있을지 모른다.
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가 50대일 때, 내가 60대일 때, 내가 70대 일 때, 내가 나의 삶을 선택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을 때, 나는 건강한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살았으면 한다.
(내가 겪은 어르신들, 내가 본 어르신들 중 80대가 되면 일상생활의 폭이 줄어들고, 반경이 좁아지며, 가고 싶은 곳을 내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신체적 결함이 생긴다. 신체적 결함이라는 것은 보폭이 줄어들고 운동량이 줄어들어 멀리까지 가는 여행은 어렵다는 것이다. 가족 간의 바깥 식사도, 혼자서 맛집 가는 것도 누군가의 돌봄이나 안내가 없으면 쉽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