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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처럼 온 나의 갱년기>

by 김현정

각 매체에서 떠들어대는 갱년기는 거의가 부정적이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흥분을 잘한다, 감정기복이 심하다, 우울하다, 추웠다가 더웠다가 한다, 호르몬 불균형이 된다, 에스트로겐 부족으로 뼈가 약해진다, 갱년기를 대비해야 한다. 중년을 맞이하는 여성, 중년으로 살아가야 하는 여성에게 오히려 불안과 공포감을 준다. 그래서 그런가. 때로는 실수를 했을 때(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잘못 이해하여서 감정이 격해질 때) 귀엽게 갱년기 때문인가 봐, 이런 말들을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막상 갱년기로 중년의 여성으로 살아보니 쓸데없는 걱정이고, 불안요소일 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안 괜찮은 나이대가 어디 있느냐? 솔직히 까놓고(터놓고인데, 좀 속되게, 강하게 표현하자면) 말해서 어느 세대든 다 괜찮지 않다. 불안요소가 없는 세대는 없다. 그런 나잇대는 없다.




나는 갱년기가 선물 같다. 추위에 약해서 늦은 봄, 이른 여름날 다들 시원하게 입고 다닐 때도 나는 재킷, 카디건, 긴 셔츠를 준비했었고, 입고 다녔다. 다들 덥다고 하는 온도가 나에게는 적당했었다. 아직 9월, 10월, 추운 겨울이 아닌데도 목폴라니트를 입어야 했다. 봄, 가을 옷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추위에 약했다.


그런데 갱년기가 되니 남들처럼 살게 되었다. 에어컨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남들은 시원한데 나는 추워서 에어컨을 피해서 다녀야 했다. 남들은 반팔로 슬리브리스로 시원하게 입고 편안히 있는데, 나는 재킷이나 카디건을 걸치고 있거나 입어야 했었다. 그리고 나는 강사여서 목을 많이 쓰기 때문에 항상 스카프로 목을 보호했었다. (강사일 때 목감기로 고생하거나 몸이 아파서 결석을 하거나 다른 강사를 보내거나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자기 관리 끝판왕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추위를 많이 탄 내가 갱년기가 되어 보니 내 몸의 온도가 좀 올라간 것 같다. 나도 남들처럼 반팔, 슬리브리스만 입고 에어컨을 시원하게 즐기고 있다. 어떤 분들은 너무 춥지 않냐, 온도를 좀 올려야겠다고 하는데, 나는 아주 시원해서 꿀맛이다. 그래서 나는 갱년기가 나한테는 딱 맞춤이다.


우울증, 빈둥지 증후군도 없다. 우울증은 지난 4년 겪었다. 그것은 우울증을 겪을 만한 원인과 과정,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그런 환경, 사람, 문젯거리, 위험도 등에 노출되어 4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면 우울증 안 겪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우울증이 없다는 것이다.


센티멘털은 가끔 생긴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책, 노래, 드라마, 영화, 타인, 자기 자신으로 인해 센티멘털은 생길 때가 있다. 급하강하게 되는 마음의 감정이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흥얼거리거나 책을 읽거나 또 글쓰기를 하면서 풀어낼 수가 있다. 반신욕을 하면서 이연(담담한 목소리가 정감 있고 정직하고 진실되게 들린다. 젊은 사람이 인생의 주관이 있고 신념이 있어서 똑 부러진 그 성격이 나는 좋다.)의 유튜브 영상을 청취하거나 임윤찬의 바흐 시칠리아노, 조성진의 베토벤 비창을 듣거나 가벼운 영어회화 기초를 암송하거나 활기찬 팝송을 들으면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요즘에 나에게는 센티멘털이 주는 좋은 점이 또 있다. 글쓰기를 할 때 훨씬 감성이 예민해져서 좋은 것 같다.


또 한 가지 가끔 하는 것은 네일을 바른다. 지난 4년 나는 컬러가 주는 명상을 즐겼다. 직접 손톱에 바를 때도 예쁘게 바르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그 집중도는 잠깐이라도 나쁜 감정에서 나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 내가 자주 지나가는 화장대 위 또는 소파 앞의 테이블에 내가 좋아하는 색깔들로 채웠다. 명도와 채도가 높은 것도 낮은 것도 오밀조밀하게 색을 서로 대비하거나 교차하면서 자리를 옮겨두고 그 컬러를 보면서 행복감을 느꼈다. 확실히 색이 주는 기쁨이 있었다. 나는 기쁘고 행복할 때는 네일을 바르지 않는다. 그냥 손톱이 주는 자연색이 더 예쁘게 보인다. 건강에도 네일을 바르지 않은 게 더 낫다. 손톱이 숨을 쉴 수가 있다. 그런데 기분이 안 좋거나 감정이 안 좋을 때에는 네일을 바른다. 손톱위에 바른 색에서 위안을 얻는다. 요즘에 이런 마음 챙김을 컬러테라피라고 하는 것 같다.


빈둥지 증후군 역시 없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자식들이 경제적 독립, 정서적 독립하고 나니, 나도 경제적 독립과 정서적 독립이 되어서 홀가분하고 마냥 좋다. 빈둥지 중후군 그런 것 없어서 오히려 홀가분하고 자유롭고 더 좋다. 내 인생과 내 삶,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 솔직히 다시 아가씨가 된 것 같다. 가끔은 아가씨 같이 하고 다니네, 그런 말을 듣는다. 초등학생 부모인 줄 알고, 학습지 영업하시는 선생님이 지나가는 나를 세울 때도 있다. 그럴 때 기분이 좋다. 늙어 보이지 않으니까. 어쨌든 늙는 것은 싫다. 늙어 보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 정서적 독립을 하고 나니 자유로울 것이다. 간섭 없이 자신의 인생과 삶,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내 생각에 잔소리 안 하는 엄마, 간섭 안 하는 엄마를 둔 것을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동년배인 중년여성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빈둥지 증후군을 갖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일가견 섭섭하거나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인식만 조금 바꾸면 생각이나 마음이 확 달라진다.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얼마나 홀가분한가. 세상 밖으로 나가보면 조금의 관심으로 무료로 배울 수도 있고, 즐길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다. 요즘은 지자체에서 하는 행사도 많고 배움터도 많다.


어디를 나서든 돈이 필요하긴 한데 집에 가만히 있어도 그 최소한의 돈은 쓰게 마련이다. 차라리 그 최소한의 돈을 갖고 배울 수 있는 곳에 가서 취미 생활을 하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다. 사회생활을 계속해서 할 수도 있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때로 불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보다 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심리적,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내가 도태되지 않고 계속 성장한다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쉬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익히다 보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계기나 기회가 오기도 한다. 조바심을 가지거나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내가 준비되어 있으면 기회는 온다. 준비하고 있는 시간을 즐기면 된다.


나는 그동안 남성들 못지않게 오랜 세월을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남성들만 명예퇴직이 있고 정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전업주부들도 명예퇴직이 있고 정년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양육부모, 명예부모라는 말도 생기는 것 같다. 직장을 다닌 여성들도 명예퇴직이 있고 정년이 있다. 명예퇴직과 정년은 남성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니 남성들이 명예퇴직과 정년을 죽음으로 가는 것처럼 구는 말을 들을 때면 솔직히 나는 좀 모자라게 보인다.


어떤 세대든 어떤 나잇대에 있든 그 나름의 걱정과 고민이 있고 준비해야 할 것, 대비해야 할 것들이 다 있다. 걱정과 고민을 생산적으로 계획적으로 준비를 잘하고 대비를 잘하는 사람은 현재나 미래가 그렇게까지 불안하거나 공포심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차근히 준비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선택과 해결방법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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