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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Aug 22. 2024

방향성을 찾게 되니 그때부터 마음의 지표로(7화)

건강한 삶을 살려면 생각 안에 마음 안에 건강한 세포로 넘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삶이 어떤 삶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또렷한 이정표가 없으면 걸어가는 길이 흐트러지고 무너지게 된다. 잘 가다가 두 갈래 길, 세 갈래 길에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어느 길인지 분명히 알고 있기에.


소소한 일상의 힘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 삶이야말로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평범함이 바로 특별한 힘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매일 똑같은 규칙적인 루틴을 하면서도 내 소소한 일상에서 작은 성취감을 만들어내려고 나는 매일, 그 전날, 며칠 전에, 일주일 전에, 한 달 전에 늘 내가 살아왔었던 삶, 인생처럼 다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10년의 계획을 세우고, 앞의 5년, 뒤의 5년 그리고 다시 그것을 쪼개어 3년, 3년, 3년 또다시 그것을 더 세분하여 1년, 2년, 3년 그리고 더 낱낱이 쪼개어 1년 중에서 상반기, 하반기 또 3개월, 3개월 그리고 한 달, 다시 일주일씩, 또다시 일주일에서 3일씩, 3일씩 그다음 하루를 또 그다음 잠자는 시간 외에 어떻게 하루를 알차게, 분배할까? 효율성 있게, 효과적으로 - 이것이 나였다.


지난 4년 동안에는 계획을 굳이 세울 필요가 없었다. 사업적으로, 내가 맡아서 하는 업무에는 작은 계획부터 중간계획, 큰 계획을 세워서 했지만 내가 말하고 있는 계획은 나의 삶에 대한 계획을 말하는데 그 계획을 세워보았자 그것은 내 삶의 계획이 아니어서, 그것을 깨달은 어느 순간부터는 내 삶, 내 인생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무산되는 계획은 애초에 세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수첩에 쪽지에 계획을 늘 세우면서 살았지만 지금은 휴대폰 메모지에 내 계획을, 내 컴퓨터 안에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잘 되고 있지만 자주 들여다보면서 체크를 하고, 또 수정할 필요가 있어서 수정을 하고, 또 마음을 다지고, 의욕을 돋우기 위해서 또 계획을 들여다보면서 다른 메모지에 또 내 결심을 계획성 있게 적어보고 - 이것이 나다. 


<계획을 세우는 것> 내 삶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계획이야말로 삶의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 주고, 준비를 해주고, 삶을 안정되게, 시행착오를 줄이고, 실수를 줄이고, 실패를 줄이고,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가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나는 내 소소한 일상의 계획을 세우는 것까지 계획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다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내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고, 내 인생을 선택해서 살 수 있다. 계획을 세우는 나를 발견하는 곳에서부터 나는 희열을 느꼈다.


이제 내 삶이 시작되고 있다. 그래, 이게 내 삶이야, 이제 내 삶을 찾을 수 있어!




그 무서운 사업장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를 미치게 돌게 만든 그 사업장. 그곳은 두렵고 무서운 장소였다. 공포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 공포의 세계로 나를 이끈 남편,  나를 미친 여자로 만든, 광기의 여자로 만든 그에게서 나는 벗어나기로 굳게 결심을 했다.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 했다가도 다시 일을 하고, 몇 번이나 여기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가도 다시 주저앉게 되고 그렇게 반복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여기서 탈출을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여기에서 끝난다. 무너진다. 다시는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사람이 완전히 다 무너지고 말면 자기 힘으로 다시 일어서기가 어렵다. 


"그"

그가 문제였다. 그리고 그의 주변의 사람들, 모든 것이 "그"로부터 시작되었고, 모든 것이 "그"로 인해 시작되었고, 모든 것이 "그의 주변인물들"로 시작되었다.


원인은 사람, 환경이었다. 그 사람, 그 환경이 나를 광기의 길로 인도했었고, 나를 그곳에서 광기를 부리게 했고, 나를 아주 미친 여자, 아주 못난 여자로 만들었고, 만들고 있었고 그랬다. 그 사람,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고 계속 이대로 있다면 나는 결국 광기를 부리는, 광기만 부리는, 광기로, 결국 나락으로 빠져 죽을 것이다. 죽는 것은 무섭지 않은 데, 나의 죽음은 걸레처럼 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잘 죽고 싶어서 이곳에서 벗어나기로 굳게 결심을 했다. 이번에는 꼭 벗어나리라,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그 원인과 과정, 결과를 다 분석하고 예측하고 나니 결심도 한결 쉬웠고, 결행은 더욱 쉬웠다. 

그리고 잘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잘 죽는 방법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0"에서 시작한다고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백지. 백지 위에 다시 그리는 것은 쉽다. 온통 그려져 있는 도화지는 많이 지워야 한다. 그러나 하얀 도화지에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 무엇이든. 훨씬 쉽다. 


내 공간, 내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 내 집, 이 집이야말로 온전히 내가 피땀으로 벌은 내 돈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내 집이다. 내가 만든 이 공간 안에서 숨을 쉬고 있으니 숨 쉬기가 쉬웠다. 남편과 아들과 입씨름하는 게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들의 일 하는 진척은 느렸다. 내가 자꾸 옆에서 채근을 해야 했었다. 채근할 때도 이유를 대어야 했고, 근거를 대어야 겨우 실행을 했었다. 그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나 혼자서 하면 척, 척, 빨리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성향은 낙관주의였다. 삶에서 인생을 살 때 길게 보면 낙관주의가 상당히 좋다. 그들 자신은 걱정을 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러나 일에 있어서는 낙관주의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피곤하게 한다.


그들을 일하게 만드는 이유, 근거, 합리적인 방법 등을 설명하는 데에 진이 다 빠졌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더 수월했다. 직원들도, 어르신들도 모든 게 수월하지가 않았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계획해야 하고 설명해야 하고 또 설명해야 하고 그래도 몰랐다. 매일 이야기해 줘야 안다. 이들을 한결같이 잘 되었을 때는 자신들이 열심히 했을 때고, 잘 되지 않은 일에는 원장님이, 원장님이, 진짜 미치고 빨딱거릴 일이었다. 이들을 붙들고 일하는 것 자체가 십자가다. 이들은 내 진을 다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 같았다. 여기에서 이렇게 살려고 내가 그 오랜 세월 동안 힘들게 공부하고 봄 소풍, 가을 소풍 하나 없이 노는 날 없이 뼈 빠지게 일해서 빚 갚아주고 생활하고 그렇게 산 세월이 분하고 억울했었다. 


차라리 그 시간, 그 노력을 온전히 나한테 다 바쳤더라면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곳, 원하는 시간,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멋진 삶을 살고 있을 텐데 말이다.


심방 온 목사님은 나에게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도 복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시면서 다 죽어가는 나를 위해 그런 말씀으로 위로를 해주셨었다. 그러나 목사님이 말한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인가?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인가? 여기 있는 어르신들은 불쌍하신 분이시니, 그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인가? 그 가치 있는 삶이란 말에 고결성을 얹히고 나는 또 묵묵히 일을 했었다. 그 말에 기대어서. 


그러나 가치 있는 삶은 자신을 죽이지 않는 삶이다. 자신을 살게 하는 게 가치 있는 삶이다. 자신을 걸레로 만드는 사람, 환경, 그런 곳에서는 나와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나오는 게 잘 사는 길이다. 


왜 "걸레"라는 말을 썼냐면 걸레는 더러운 곳을 닦는 것이니까, 헌신하는 삶으로 딱 맞는 말이지만 "걸레"는 걸레라서 사람으로 인정을 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그동안 살아왔었던 나의 가치에 대해,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나의 명예를 다 추락되었다. 쉽게 말해서 나는 당했다. 시편 37편에 나오는 것처럼 도처에 악인으로 들끓어 나는 사자의 밥이 되고 있었다.


나의 고결성, 나의 고귀함이 다 추하게 된 이곳에서 내가 연명하는 건 웃기는 일이었다. 내가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 사업장을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이 바로 나인데도 내가 여기에서 불청객처럼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은 나를 명예스럽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예> 

명예를 지키고 싶었다. 추락한 나의 명예, 실추된 나의 명예, 나는 나의 명예를 더 이상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 나는 명예롭게 다시 살고 싶었다. 나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를 부정적인 삶으로 나를 부정적인 인생으로 나를 내가 부정하게 만드는 사람, 내가 나를 죽이고 싶게 만드는 사람, 바로 그가 남편이었다. 남편이라는 이 소우주, 이 소우주에서 나는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탈출! 그것이야말로 변혁이었고 변화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남편이 바로 근원지였고, 그 가지에서 파생된 나를 죽이는 사람들, 남편과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몽땅 내 삶에서 다 삭제, 제거. 그리고 남편이 하려고 했었던 그 사업, 그 사업장에서 모든 소식 몽땅 삭제, 제거


완전히 온전히 다 내 삶으로 채우는 게 내가 다시 태어나는 거였다. 내 사람으로만 채우는 거, 내 삶, 내 인생, 내 사람들은 <안전했었다> <나를 위협하는 게 하나도 조금도 없었다>


<안전성> 

리스크가 없는 세계, 세상 그곳이 나의 유토피아다. 


<계획>

1년 - 기초

2년 - 기본

3년 - 심화


3년 공든 탑을 세우면 나는 10년까지는 무사하게 살아갈 수 있다. 

내 나이 55세, 3년이면 58세 그리고 10년이면 68세. 

나는 장장 70세까지는 팔팔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용솟음치는 기개로 불 같은 정열로 점화되어 우주로 날아가는 미사일처럼 마지막 불꽃으로 나는 미지의 우주로 날아가는 거다. 그리고 "팡" 터지는 것이다. 불꽃으로 그리고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다. 우주에서 "0"으로.


나는 나의 장례식을 하지 말라고 했었다. 나의 장례식으로 인해서 부조금을 받는 그의 모습을 보기가 싫다. 경조사라면 그 어떤 급한 일도 그 어떤 중요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녔던 남편,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부조를 못 낸 것을 얼마나 아쉬워하고, 그 사람들이 자신을 보지 않고 외면한다면서, 형편이 좋아지면 못 낸 그 부조금부터 빚처럼 갚을 거라는 그 남자의 말이 얼마나 우습고 모자라고 어리석게 보이는지.


무슨 빚부터 갚아야 하냐? 아내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아내를 망하게 만든 그 남자, 자식에게 상처와 아픔을, 아내에게 상처, 아픔, 고통, 트라우마를 준 것은 하나도 모르는 남자.


나는 그 남자가 애지중지하게 살피고 생각하는 부조금, 그 경조사비. 그런 것으로 나의 장례를, 나의 장례식을

또 부정 타듯이 나의 명예에 불명예스럽게 하는 게 싫었다.


그까짓 장례를 안 하면 무슨 큰 난리가 나느냐. 장례 하나 못 치르고 죽은 사람들, 그런 영혼들이 이 세상에 이 세계에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으냐? 장례를 못 치르고 죽은 사람들은 천국에 못 가냐? 지옥에 못 가냐? 천국에 가든 지옥에 가든 신의 심판이고, 신의 선택이고, 신의 결정이다. 그럼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할 수는 있다. 


나는 우주로 가서 죽는 게 좋다. 광활한 우주로 가는 게 좋다. 나는 우주에서 왔고 나는 우주로 가는 것이다. 우주가 내가 가서 소멸해야 할 곳이다. 




내 집을 둘러보니 정리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었다. 예전에는 서랍 하나하나 정리가 잘 되어 있었고, 무엇이 있는지를 다 꿰뚫고 살았었는데, 서랍장 하나 열어도 잘 정리가 되어 있는 속옷들, 양말들, 수납장 하나 열어도 착착 잘 정돈되어 있었던 생활용품들, 지금은 어디에 무엇이 있는 지를 잘 모르겠다. 집부터, 내가 살 공간부터 내 힘의 완급에 맞게 매일 조금씩 정돈을 하고 청소를 하고 그렇게 해야겠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냉장고도 청소가 안 되어 있고, 온통 음식물 쓰레기에, 온통 정리가 안 되어 있다.


1년은 마음 치료부터 하는 거로 계획을 세웠다. 이 마음을 갖고는 사회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예전의 나로 일을 하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았다. 마음을 다쳐서, 일단은 마음부터 고쳐야 한다. 그다음 2년째부터는 무엇을 하든, 정해진 것은 없지만 기본 교육, 3년째부터는 심화과정이다. 

3년쯤 지나야 내 꿈, 내 직장, 내 사회생활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 계획을 세웠다. 초조하고 싶지 않아서.


삶의 방향성과 정체성 없는 부지런한 루틴은 영혼 없는 계획과 같았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고프고 허한 것처럼 아무리 열심히 부지런히 떨어도 영혼 없는 부지런함, 허함이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나? 내가 왜 살고 있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내 속에 에너지가 생길까? 넘칠까? 


영혼 없는 부지런함이었지만 뭔가를 계속해서 부지런하게 하려고 또 계획부터 세우고 또 행동하고 그것을 반복했었다. 앉아서 고민하고 사유하고 그 대신에 청승은 떨지 말자. 나는 왜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자면서도 자기 전까지 계속해서 의문을 갖고, 고민을 하고, 유튜브를 하든 숏폼을 보든 음악을 듣든 영화를 보든 무엇을 하든 그랬다. 나는 무엇을 하든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의문에, 의문에, 의문에, 의문으로 하루를 채워 나갔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갔었다.




매일 계획을 세우고 나는 나로서 열심히 규칙적으로 작은 성취감들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충만함으로의 삶, 인생이 아니었다. 간간히 나를 버티는 날들이었다. 한 마디로 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나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마음에 큰 빈 공간이 생겼다. 마음에 아주 작은 내 방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하늘 아래 땅 아래 이 우주 아래 나는 혼자였다. 나 혼자였다. 나 혼자.


나 혼자만 존재하는 이 세상. 공허했다. 

30년 결혼생활, 30년 내가 살았던 삶, 30년 내가 살려고 발버둥쳤었던 삶, 내 인생이 불쌍했다.

그러나 나는 내 책임을 다 했었고, 내 노력을 다 했었다.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 그들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나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게 나를 홀가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미안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뒤돌아선 게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다. 미안하지 않으니까 나는 내 삶에 뛰어들어가면 된다.

나는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나에게 이해를 시켜주었다. 나는 나에게 할 수 있다고 주문을 외워주었다. 마법사처럼


외롭지만 현실이 그랬다. 현실은 언제나 인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현실 속에 살고 있으니까. 현실을 외면하면 절대로 여기서 나갈 수가 없다. 현실을 찾아야 자기 삶을 찾을 수 있다. 찾아보자!

나를 다독이는 것은 쉽지만 나는 외로웠다. 

나는 혼자야. 이 하늘 아래 이 땅에 나는 혼자야.

쓸쓸했다.

쓸쓸해서 웃었다.

쓸쓸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 앞에서 웃었다. 하루종일 웃었다. 웃는 모습을 확인하려고 일어나자마자 잠을 잘 수 있을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어제도 찍고 오늘도 찍고 내일도 찍을.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금방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어제의 사진을 확인하고, 그저께 사진을 확인하고 계속해서 내가 웃고 있는지 사진을 확인했다.


나는 웃을 날을 준비하려고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아름답게 웃는 나, 예쁘게 웃고 있는 나, 나는 웃고 싶었다. 그것도 예쁘게, 아름답게, 매력적이게.


웃는 게 제일 좋았다. 웃는 연습이 제일 좋았다. 언젠가는 이렇게 환하게 웃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 그런 상상이 나를 지켜주었다.


하지만 쓸쓸했다. 아무리 웃고 있어도 쓸쓸했다. 

나를 위해서 뭔가를 열심히 하는 루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쓸쓸했다. 

공허했다. 이 공허함을 무엇으로도 메꿀 수는 없었다. 





나는 왜 살까? 왜 살아가야 할까?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뭘까? 하루종일 골똘히 내 속에서 묻고 있었다. 몇 달 동안 나의 루틴은 루틴대로 살지만 흡족하지 않았다. 내 속에서 묻는 질문의 근원지를 몰랐고, 나는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될지도 몰랐다. 기도는 할 수 없었고, 하기가 싫었고, 나는 그냥 하나님께 하소연만 했었다. 나는 혼자다,라고. 한나처럼 나의 처지에 대해서 하소연만 했다. 


나는 다시 찾아온 내 일상에는 행복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서 외롭고 또 쓸쓸했다. 다행히 나는 나를 잘 위로하는 사람이어서 "괴롭지 않은 게 어디야. 외로운 게 낫지, 괴롭지는 않잖아." 유태인 같은 기분이었다. 탈출에는 성공했는데, 혼자 남은 유태인, 열심히 성실히 사는데 방향을 잃어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될지, 모르는 것, 여자로,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왜 살아야 되는지.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는데,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은데, 왠지 죽으면 안 될 것 같은, 죽기에는 아직 내가 너무 젊지 않은가. 이제 내 소소한 일상을 찾았는데, 아쉬운데 죽어도 괜찮은데, 이렇게 허무하게 살면은 안 될 것 같은 온갖 감정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그런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어느 날, 한 줄기 빛처럼 내게 찾아온 팝송이 있었다. 바로 아바의 <Move on>이었다.


여느 날과 똑같이 컴퓨터의 노래하는 유튜브 영상을 켰다. 어제 들었던 스티븐 리들리의 "할렐루야" 옆으로 유튜브 영상들이 보였다. "Move on"을 선택했다. 바다가 보이는 화면이 나를 이끌었다.


부지런한 육체에 평화로운 영혼이 깃든다고 하지요.

멀리 가는 게 목표인 항해자나 이주자 같은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만일 내가 하늘에 대해 탐구하거나, 나의 내면을 성찰해 보아도 

내 자신에게 (난 항상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는 한 전혀 문제될 게 없죠. I've always tried 


대양의 큰 파도처럼 인생은 움직이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항상 불어오는 바람처럼, 인생은 흘러가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인생은 다시 밝아오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내가 매 순간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

그것을 이루며, 그것들 속에서 나아가며

그 의지와 함께 나아가세요.


난 모든 나라를 여행해보았고 내 마음속도 여행해봤어요

우리는 먼 여행을 하는 것 같아요 시공간을 넘다드는 여행을

그리고, 진정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어딘가에는 있어요

모든 죽은 것과 살려는 의지를 가진 것들 사이에서 


대양의 큰 파도처럼, 인생은 움직이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항상 불어오는 바람처럼, 인생은 흘러가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인생은 다시 밝아오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내가 매순간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것을 이루며, 그것 속에서 살아가며

그 의지와 함께 나아가세요


바다 수면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아침 산들바람

내 위를 맴도는 갈매기들의 웃음소리 

나에겐 보이고 들리죠

그러나, 그 순간의 경이로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비 그친 후 떠오른 찬란한 햇살과 살아 있는 것의 경이로움을


대양의 큰 파도처럼, 인생은 움직이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항상 불어오는 바람처럼, 인생은 흘러가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인생은 다시 밝아오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그것을 이루며, 그것 속에서 살아가며

그 의지와 함께 나아가세요

항상 불고 있는 바람처럼, 인생은 흘러가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인생은 다시 밝아오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내가 매순간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것을 이루며, 그것 속에서 살아가며

그 의지와 함께 나아가세요

항상 불어오는 바람처럼, 인생은 흘러가는 것

계속 나아가세요 ~~  Move on


아, 아, 아, 인생은 계속 나아가는 거라고 한다. 계속 나아가면 되는구나, 삶은 계속 나아가는구나, 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어, 그래, 난 노력했어, 자신한테 넌, 노력했어, 넌 잘 살은 거야, 넌 잘 한 거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네가 잘못 살아서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니야, 네 탓이 아니야. 네가 잘 살았어도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거야. 하나님이 사람을 의지하지 마라. 하나님이 네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나에게 사람의 배신과 상처, 아픔, 고통을 가르쳐 주신 건가? 


아, 아, 아, 어쨌든 난 계속 나아가면 돼. 나아가는 게 삶이라면 네가 살아온 것처럼 넌 또 열심히 노력하면서 사는 거야. 다른 게 있다면 오직 너를 위해서 살아보는 거야. 네가 살고 싶은 삶, 네게 기회를 주는 삶, 네가 얼만큼 해낼 수 있는지. 나이는 전혀 문제가 안돼. 나이는 전혀 문제가 안돼. 보여주는 거야, 너를, 넌, 잘 해냈다! 라고 보여 주는 거야!


세상을 향해 ~~~ 도전하는 거야!

너 자신을 향해 ~~~ 도전하는 거야! 

살아가는 것, 사는 게 멋진 거야 ~~~ 그러함에도 사는 게 멋진 거야! 산다는 건 멋진 거야! 

시간만 필요할 뿐이야.


그날, 이 팝송을 들은 그날부터 나는 내 마음속의 먹구름이 걷히는 것 같았다. 전혀 공허하지도 전혀 외롭지도 전혀 허전하지도 않았다. 내 마음 속이 꽉 찬 기분이 들었다. 내 공허함을 다 채워주었다. 


< Move on > 

계속 나아가세요   Move on 

난 항상 노력했다  I've always tried 


내 삶의 방향성, 지표가 되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꼭 성경책 구절, 찬송가 구절만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이 주신 위로와 격려의 노래라고 나는 생각을 했다. 그 날,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을 느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내게 주신 선물, 나를 다시 일으켜주신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아주 많이 힘든 날은 아바의 팝송 Move on을 들으면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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