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을 겪고 나니 사람이 겁대가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해맑은 사람이었을 때는 순진해서 그런가? 남이 얄궂은 소리를 해도 바로 나서서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냉가슴 앓거나 바로 그 자리에서 속시원하게 맞대응을 못해서(상대방 입장 생각하다가) 나중에 이렇게 말했어야 되는데, 하고 힘들어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남편은 바로 맞받아 쳐야지. 훈수를 잘 하지만 남편은 나보다 더 못하다.
그런 내가 이제는 맞받아 치는 것도 잘하고, 남 눈치 안 보고 살게 되어서 솔직히 사람 속 시원하게 살아가고 있다. 100%는 아니지만 정말 남 눈치 안 보고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는 가야 될 자리에 안 가고 있으면 마음이 계속해서 신경이 써여서 좀 내 자신이 짜증났었다.
누가 입술이 찌그러지거나 빈정대는 표정을 하거나 해도 너 그래라, 정말 신경이 안 쓰인다. 왜? 그렇게 할까? 좀 찝찝해도 내가 짜증 날 정도는 아니다. 또 가당치도 않은 말을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나의 정확한 의사 표현을 한다. 내가 내 자신에게 짜증이 안 난다.
예전에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좀 누워 있다. 끙끙 앓게 된다. 지금은 내 루틴대로 할 일 하고, 생산적인 일을 찾아서 한다. 어떤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내게 덕이 되게 한다. 하다못해 밀린 빨래를 한다거나 도서관까지 산책을 한다거나 뼈다귀해장국을 먹으러 가서 마음 해장을 한다거나 뭐든지 나에게 해준다. 그러니 속상한 일이 생겨도 그냥 결국에는 나한테는 좋게 된다.
애써서 노력하는 인생도 살아보았고, 성실하게 한 길만 바라본 인생도 살아보았고, 다 해봤지만, 내가 노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힘든 일을 겪어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 이 나이에는 의존도가 커지고 위축되고 움츠러들 수도 있는 나이인데 나는 내가 자생하는 힘이 생겨나서 사실은 내가 젊은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어졌다. 늙으면 다 그렇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