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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Oct 08. 2024

괜찮은 걸(girl)

찌익 - 


끄윽 -


또 위층집 여자가 청소를 시작하나 보다. 아침 8시 15분~20분이면 여지없이 쩍! 끄윽- 하는 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여자. 1시간 정도 아니면 1시간 30분 정도. 거의 미칠 지경이다. 나는 저 여자가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면 좋겠다는 나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후다닥 - 

찌익 -

쿵 - 


오후 4시쯤 그 여자와 여자의 막내딸이 집에 온 시간이다. 소파에서 뛰어내리는 소리, 후다닥 거리면서 쫑쫑 뛰어다니는 소리, 찌이익 하면서 나는 쇠한 소리가 시작되었다. 


평일의 루틴은 대개 이러하다. 위층 여자는 10시쯤 출근을 한다. 그전에 온갖 잡동사니 같은 소리를 낸다. 여자의 코푸는 소리까지 들릴 때도 있었다. 발뒤꿈치에서 내는 발망치소리부터 이 여자가 내는 소리는 퍽 다양하다. 


그런데 이 여자가 내는 잡동사니 같은 소음보다 더 웃기는 해프닝이 있다. 한 번쯤은 소개해보고 싶었다.


올해 봄,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위층 여자는 부지런한 여자다. 벌써부터 일어나서 청소를 하고 있다. 평일과 똑같은 아침시간부터 오전 내내 찌익- , 끄는 소리부터 쿵, 후다닥, 또 온갖 잡동사니 같은 소리들로 나와 남편의 감정을 갖고 놀고 있었다. 참다못한 남편이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동  ○○○호입니다. 수고하십니다. ○○○호에서 계속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조용히 좀 해달라고 해주세요.


여지없이 관리실 인터폰이 울린다.

관리실 직원은 또 위층 여자가 건넨 준 말을 전해주고 있다.

청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관리실 직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주 큰 드럼통 같은 걸 갖고 냅다 찧는 소리가 싱크대 바로 윗 천장에서

쿵! 큰 소리가 집 전체로 울렸다. 

굉음이었다. 폭격기를 맞은 소리 같은 아주 큰 소리였다. 


세상에, 이런 날벼락같은 일이 있나? 남편과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게 뭐야? 


나는 냅다 뛰듯이 걸어서 관리실에 갔다.

"안녕하세요." 

나를 알고 있는 젊은 관리실 직원이 오늘 근무를 하고 있었다. 형광등을 교체할 때, 싱크대 물이 역류되었을 때 도와준 직원이었다.

내 인사가 끝나자마자 직원이 앉아 있는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 여자였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왜 시끄럽다고 하느냐? 아래층이 예민하다. 아래층이 시끄럽다고 해서 이제 청소를 안 한다. 그런 내용이 수화기 너머 들렸다.


나는 그 직원에게 그 여자가 한 <쿵!>의 내막을 말해주었다. 

오전 내내 시끄러운 소리를 냈으면, 아래층에서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하면, 그냥 좀 조용히 해주면 되는데, 드럼통 같은 걸로 냅다 찧는 굉음을 내고는 어떻게 관리실에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을 하느냐? 

우리도 주말에 좀 편하게 지내고 싶다. 일요일 아침이 아니냐? 일요일은 늦게까지 잘 수도 있지 않느냐? 너무하네. 내가 왜 뛰듯이 왔냐면 청소하니 이해해 달라고 해놓고는 드럼통 같은 걸로 내리 찧듯이 해서, 이 상황을 관리실에서 알고 있어야 된다고 여겨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이 여자가 이런 전화를 할 줄은 꿈에도 예상도 못했었다. 


이 여자는 이랬다. 공휴일이든 주말이든 청소를 아침부터 하루종일 한다. 그 여자는 자신이 내는 소리는 다 청소 소리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오전에 청소하는 데 무슨 소음이냐? 이런 소리가 왜 소음이냐? 밤 10시 전에 내는 소리는 괜찮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소리를 아래층에서는 시끄럽다고 한다. 

(그동안 저녁 시간마다, 공휴일과 주말 내내 아이들의 후다닥, 쿵, 뛰어다니는 소리는 아파트 같은 공동체 생활에서 조심하는 게 맞다. 아이들을 가르쳐야지, 아래층에 이해해달라고 요구만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라고 했더니, 그 이후로는 조금 나아지기는 했었다. 1년 내내 주차장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3번을 꼽을 정도로만 본다. 층간소음이 아니었으면 누가 사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40대 중반쯤 된 여자인 것 같다. 세 아이가 있는데, 중학생, 고등학생 밑으로 막내딸이 있다. 아이들이 내는 소리나 남자가 내는 소리는 없고 이 여자가 내는 소리로 나와 남편은 평일 저녁,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 내내 피곤하다. 이 여자의 웃픈 해프닝에 휘말리기 싫어서 아예 피곤해져서 우리가 밖으로 나갈 때가 자꾸 많아지고 있다. 근처의 도서관으로, 우리 둘만의 맛집으로, 하루 당일치기 소풍으로, 그 여자가 내는 시끄러운 소리와 그 여자가 내는 사회적 가면 때문에 그냥 복불복, 재수 없는 여자를 위층에 두게 되어서 우리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 뭐, 그냥 울면 겨자 먹기로 지내고 있다. 


그렇게 두었는데 찌익 ! 끄윽 !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고 점점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오늘도 또 찌익 ! 끄윽 ! 하고 있다. 


오늘은 10월 3일 개천절날이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몇 십 번을 그러고 있다. 힘도 좋다. 원래 근육이 세 보이지만 정말 힘도 좋다. 매일 청소를 하고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 내내, 공휴일 내내, 정말 미칠 지경이다.

꼭지가 돈다. 관리실에 전화도 여러 번 하고 관리실에서 상담도 받아 보고, 관리실에서도 엘리베이터에 배려의 안내문을 붙여 보아도 이 여자가 내는 소리는 점점 도가 지나치고 있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층간소음 문제. 그 때문에 일어나는 살인에 대해서 이제는 십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살인자가 비난을 받는 것은 죄를 지었으니,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층간소음 때문에 우리가 괴로운 일을 당하고 보니,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범죄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센터에 점심 메뉴 맛있는 것 나와요?"

"응, 몰라."

"쫄면이 먹고 싶어요. 김밥도 떡볶이도 같이 시키고 싶어요. 양이 너무 많잖아요. 점심 같이 할래요."

"알았어. 지금 출발할게."


몇 주 전의 일이다. 추석 전의 일인데, 진짜 코믹드라마 한 편을 찍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또 여느 날과 똑같이 위층 여자가 몇 시간을 오전 내내 시끄러운 잡동사니 소리를 내고 있었다. 참는 데에 한계를 느끼게 한다. 관리실 직원에게 좀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몇 시부터 지금까지 이런 소리를 내고 있다고 했다.


여지없이 또 관리실 직원으로부터 인터폰 전화가 왔다.

"청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죄송하다고 하네요."

인터폰 전화를 끊자마자 위층여자가 굉음 같은 소리를 냈다. 꽝꽝 - 쾅쾅 - 

나, 화! 났거든.

뭐, 그런 거였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여자다. 이렇게 하리라고는!  보통 상식으로는 꿈에도 생각조차 못한 발상이었다.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선글라스를 쓰고 양산과 작은 미니핸드백을 들고 급하게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관리실에 뛰듯이 걸어갔다.

이 40대 중반의 관리실 직원도 잘 알고 있다. 형광등 교체 때 도움을 준 직원이다.

그 여자가 낸 <꽝꽝! - 쾅쾅! - > 폭격기 같은 소리에 대해서 말하려고 할 때 또 전화기 소리가 울렸다. 여지없이 위층 여자다. 수화기 너머로 그 여자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직원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또 그러려니 했다.

"아래층에서 시끄럽다고 하니 청소는 지금부터 안 할게요. 그런데 오후에 1번 더 하려고요. 아래층이 너무 예민해요."


와 - ! - 

진짜 돈다.

우르릉 꽝, 꽝, 쾅 

소리를 내면서 나, 화 ! 났거든 !

온갖 분풀이를 다해놓고는.

도저히 집 안에 있지를 못하게 해 놓고는.

또라이를 만났다.

아니면 나쁜 악마인지도 모르겠다.


관리실에 전화를 해서 조용히 좀 해달라고 했다고 분풀이로 굉음 같은 소리를 내려고 어떤 둔탁한 도구로 찧어대었는데 - (그것이 청소기였는지?)

그래놓고는 관리실에 전화를 해서는 아주 상냥하게 아랫집이 예민하다고 한다. 보통 여자가 아니다. 


관리실 직원은 말했다. 소음을 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은 그런 소리는 괜찮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래층이 예민해서 문제가 된다고 1+1처럼 세트라고, 관리실 직원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 여자는 알까? 

관리실 직원과 나는 그 여자가 하고 있는 그 웃픈 상황, 그 웃픈 말과 행동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관리실 직원과 내가 허허, 웃으면서 진짜 코믹이다. 웃긴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그래서 아예 이 여자를 개무시로 그냥 두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10월 3일이 공휴일이다 보니, 또 오전 내내 청소를 하면서 시끄러운 잡동사니 소음을 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팠다. 부랴부랴 가볍게 짐들을 챙겼다. 필사하고 싶은 팝송북, 노트, 얇은 책 1권, 의자에 깔 담요, 추으면 입을 청셔츠 등을 에코백에 넣어서 나왔다. 시간이 딱 맞았다. 남편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운이 좋았다. 잘못했으면 길이 엇갈릴 뻔했다.


남편에게 그 여자가 내는 소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처음에 남편은 층간소음 날 때마다 참지 말고, 바로 관리실에 전화를 하라고 나를 채근했다. 왜? 그동안 참아줬냐고. 그런데 이 여자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사회적 가면을 알고부터는 남편은 아예 말을 섞지 말라고 한다. 


남편은 그 바람에 우리 둘이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서 남편이 퇴근하고 나를 픽업할 때까지 공부를 좀 하겠다고 했다.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쫄면, 김밥, 떡볶이로 배를 채웠다. 바로 근처에 있는 도서관까지 그리고 내가 공부할 자리에까지 남편은 내 에코백을 들어주었다. 남편과 손짓으로 인사를 했다. 남편이 나가고 난 뒤, 내 자리에 공부할 것들을 하나씩 꺼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쿵쿵한 시큼한 냄새가 솔솔 났다. 돌아보니 여자는 나와 합쳐 두 명, 다 남자들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냄새인 것 같았다. 오후 2시가 훨씬 넘었다. 그 여자가 이제는 청소를 끝냈겠지. 냄새 때문에 집으로 가야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집으로 가는 것도 우스운 것 같기도 하고 공부를 좀 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고, 어떻게 할까?


결국 냄새 때문에 나왔다. 짐이 좀 무거웠다. 택시를 부를까?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기본요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여서. 쉬엄쉬엄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도서관을 나왔다. 하얀 집, 남편과 내가 저녁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먹고 재밌게 수다를 떨고 놀았던 그 커피숍이 보이는 길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웬 차가 경적을 울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 이럴 수가! 

남편의 차였다. 아, 이렇게 반가울 수가!

벌써 남편이 갔을 줄 알았는데, 차 문을 열면서 나도 모르게 

"반가워요. 호호."

"아무래도 우리는 천생연분이야."

"벌써, 안 갔어요. 난 벌써 간 줄 알았는데."

"어, 어떻게 이 길로 왔어요. 길이 몇 군데가 있는데."

남편의 차는 농협 앞에 주차했었다. 우리가 점심 먹었던 그 분식집, 맞은편으로 조금 위에 농협이 있다. 남편의 걸음으로 도서관에서 나와서 거기까지 걸어가면 벌써 센터로 돌아가고도 남는 시간이어서 의아하기도 하고 신기했었다. 


남편도 타이밍이 너무 딱 맞다고 신기해했다. 

남편은 하하핫 ~~~ 환하게 웃었다.

"오늘 괜찮은 걸"

"아, 진짜, 어쩌면 이렇게 타이밍이 딱 맞지."

도서관 맞은편, 빌라에 살고 있는 남편의 고교 동창이 있다. 아픈 동창을 잠깐 보러 갈까? 생각하다가 이제 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괜찮은 걸(girl)>

언어유희로 제목을 정해도 좋겠다. 그치? 

우리의 개천절날 데이트, 천생연분인지? 확인한 날이 되었다. 

위층 여자한테 고마워해야 되나? 



오늘 아침에도 여느 날과 똑같이 찌익 - 끄윽 - 쇠한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내 두통도 예민해져 가고 있었다. 뇌근육이 긴장되고 부풀어진다. 사람을 곤두서게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냥 참고 있는다고 답이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내내 벼르고 있다가 오늘은 관리실 소장님을 뵈러 갔었다.

<오후에 관리실 소장님께 층간소음 문제로 의논을 드렸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통해 조율을 한 번 해보자고 하셨다. 우리 아파트에 2건 정도 있었는데, 조율 이후로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위층에서 400만원 들여서 매트도 깔고, 공사를 했다고 한다. 내가 안되어 보였는지 소장님은 오늘 엘리베이터 안의 층간소음 안내문을 기존의 것과 다른 것으로 새로 붙인다고 하셨다. 감사했다. 남편과 의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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