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계속

by 김현정

강요받지 않은 숙제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써야 하는데, 아직도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소재, 주제를 찾지 못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

나는 오늘의 계획에, 주간 계획에 '글쓰기'를 넣지만 -

나는 유보를 했었다. 내게는 시간이 더 필요해, 나는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었지만 속은 편하지가 않았다.

쉬었으니까,

아, 글이 좋네. 좋아졌네, 소재가 좋네, 주제가 참신해 등 그런 피드백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주저주저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었다.


글을 안 써도 나는 불행해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는 더 행복해졌다.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 많아졌다.

그것이 그동안 내가 글을 쓰지 않은 이유의 한 부분도 되었다. 작년에 내 속의 검은 덩어리들을 마구마구 쏟아내면서 속앓이가 풀린 것도 있었지만 애써 잊으려고 했었던 기억들로 인해 또 잊고 있었던 기억들로 인해서 고통스럽기도 한 시간도 보냈었기 때문에 나의 일상에 관한 것은 쓰지 말아야겠다는 결심까지도 하게 되었다.



오늘 점심시간에 자주 찾는 식당에 갔었다.

그 식당에는 동아일보 신문이 있다. 예전에는 신문을 받아보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신문 냄새를 맡는 것이 좋았었다. 특히 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하시는 분과 홀에서 일하시는 분이 친절하여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졌었고, 식당의 환경이 청결해서 나는 그 식당을 자주 찾았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주문을 하고, 동아일보 신문을 펼쳤다. 제목부터 훑어보면서 관심 가는 내용에는 더 눈길이 갔었는데, 내 눈과 마음을 온통 휘어잡은(아마 catch가 적절하다) 제목이 있었다.


<이제 글을 쓰면 됩니다>

(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그 에세이스트에서

중년의 다큐멘터리 PD였던 멘토가 내게 물었다. 학생은 꿈이 뭐냐고.

"저는 글을 쓰고 싶어요."


스펙을 쌓으며 대기업에 수십 통의 자기소개서를 내고 있던 나로서는 충동적인 대답이었다.

PD가 활짝 웃었다.

"멋지네요. 이제 글을 쓰면 됩니다."

단순하고도 단단한 긍정이었다.

"글쓰기는 업의 영역이라기보단 삶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글을 쓰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합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선 자기 이해가 우선이겠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를 이해하려면 자기 삶을 써봐야 합니다. 계속 쓰세요. 공개적으로 쓰세요. 글쓰기로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진 아무도 모르니까요. 계속 쓰면 뭔가는 달라질 겁니다."


이후로 용기 내 공개적으로 글을 썼다. 계속 글을 쓰자 댓글이 달리고 독자가 생기고 기회가 찾아왔다. 첫 책을 낸 건 7년이나 지나서였지만, 한때 내게로만 침잠했던 글은 어느새 사람과 세상을 향해 갔다. 글쓰기에 진지했기에 그만큼 두려웠단 걸 뒤늦게 알았다. 나에게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용기와 지지가 필요했다.


"저는 글을 쓰고 싶어요." 작가인 내게 사람들은 말한다.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과 이미 늦었다는 좌절감을 품었지만 그래도 글쓰기를 희망한다. 글쓰기의 첫 단어가 '용기'라면 마지막 단어는 '계속'이라고 생각한다. 용기와 계속을 연결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단어는 '다시'. 몇 번이고 다시, 글을 쓰면 된다. 자기 자신이 될 때까지, 다른 삶을 이해할 때까지. 나만은 당신 장래의 희망을 힘껏 긍정한다. "멋지네요. 이제 글을 쓰면 됩니다.


(발췌 :동아일보 2025.3.14)



마음이 뜨거워졌다.

내 눈은, 내 마음은, 내 온통 신경은 그 에세이에 집중되었다.


"이제 글을 쓰면 됩니다"




식당에 가기 전, 도서관에 갔었다. 이번 주에는 기필코 글을 쓰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책 1권을 찾으러 갔었다. 검색도 하기 전에 추천 도서란에 있는 <풍덩!>이라는 제목과 함께 책 표지의 그림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표적인 작품 <더 큰 첨벙>(1967)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손을 내밀어 책을 잡으니 <풍덩!>이라는 제목 앞에는 "완전한 휴식 속으로"라는 문구가 있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수영장의 화가라고도 불리는데, 책에는 100점의 과거부터 현대까지 수영 그림들로 꽉 차 있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 책은 나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했다. 우지현 작가의 그림 에세이는 내 생각에 주제가 '삶과 휴식'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가

1. 쉼표가 필요한 순간

2. 수영하는 마음으로

3. 헤엄치는 생각들

4. 삶과 휴식


이렇게 되어 있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우지현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수영과 휴식을 넘나 든다. 수영 그림으로 채워져 있지만 수영만을 논하지는 않는다. 휴식에 관해 말하지만 휴식만을 전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에는 화가들의 이야기가 담긴 미술책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수영과 휴식에 대한 산문집일 수 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그림을 감상하는 화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독자들의 몫이다.

( <풍덩!> 우지현 / 위즈덤하우스 / P10 발췌 )






"이제 글을 쓰면 됩니다"

내 마음을 온통 뜨겁게 해 준 말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수영 그림들을 통해 마음껏 휴식하고, 나아가 더 많은 것을 얻기를 바란다" (P12)


"결국 휴식은 행하는 자의 것이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는 수영할 수 없듯이 휴식을 실천해야 휴식할 수 있다. 물론 각자의 상황과 환경은 다르겠지만, 제각기 사정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쉬기를,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홀가분하게 쉬기를, 자신의 휴식을 소중하게 누리기를 바란다. 어쩌면 나는 이 말을 전하고자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 자신에게, 그리고 모든 독자들에게. 우리는 쉬어야 한다. 삶을 위해 쉬어야 한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쉬어야 한다. 반복한다. 쉬어야 한다. (P238)




얼마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소재와 주제를 정하고, 쓸 수 있는 준비가 언제쯤 될까? 너무 늦었지면 큰일인데. 쓰고 싶지 않았었던 일상글을 먼저 쓰면서 소재와 주제를 찾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자유스럽게 쓰다가 진실로 쓰고 싶은 무언가를 찾게 된다면(어쩌면 얻게 된다면) 그때쯤 연재를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이제 글을 쓰면 됩니다"

움츠려져 있는 내 마음에,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에 뜨거움과 용기를 주었다. 그래, 좀 모자란 글이면 어떠랴. 그래, 좀 내 속을 보이면 어떠랴. 그렇게 처음 시작한 것처럼 써봐야겠다.


'계속' 쓰면서 '다시' 하면서.

더 나은 삶을, 더 좋은 삶을 꿈꾸어 보련다.


* 2025년 3월 14일 오후 3시 51분

(선물처럼 다가온 오늘, 오늘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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