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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의 죽음, 지인의 죽음, 어르신들의 죽음>

- 죽음은 소멸이다. 살아가는 동안 나를 많이 알고 싶다.

by 김현정 Jul 19. 2024

제부는 나와 동갑이었다. 훤칠하게 잘 생겼다. 기골도 있고 멋있었다. 그러나 외모에 비해 마음이 약하고 온순했다. 제부는 두 해 전에 돌연사했다. 내 동생은 미망인이 되었고, 내 조카들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이 되었다. 동생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애처롭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


남편의 지인 두 사람이 작년과 올해에 돌연사했다. 마라톤 회원들이다. 한 사람은 58세, 또 다른 한 사람은 65세, 58세인 분은 한의사로 마라톤을 하는 도중에, 65세인 분은 강연자로 중국에서 가족들과 여행 중에 돌연사했다. 한의사는 마라톤을 예찬한 분인데 운동에는 진심인 분이셨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가족들을 깨우고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분이셨다. 내가 논술로 업을 하고 있었을 때 내 학생의 아버지였다. 내 학생은 그런 아버지로 인해 가족들이 힘들다고 푸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남편의 마라톤 행사로 이 두 분과 대화를 나눈 적도 몇 번 있었고, 65세인 분은 시댁 앞 집에 사신 분이어서 그들의 죽음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의사인 아내(학부모로, 부부 모임에서) 분도, 강연자인 아내(센터 개원할 때 친구분들을 모시고 와주셨다) 분도 몇 번 만나서 친근한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다. 


죽음, 죽음은 나이가 들어 죽는다. 죽음, 불치병으로 죽는다. 죽음, 갑자기 무서운 재난으로 사고로 죽는다.

그렇게 생각한 내 죽음의 초상화는 달라졌다.

연예인, 정치인 그들의 죽음은 내 현실에는 와닿지 않았다.


어르신들의 죽음, 

주간보호센터 하기 이전에 죽음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피부로 느낀 것은 내가 초등 5학년 때 몇 년 동안 내 방에서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함께 살았던 외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결혼 후에 시부모님의 죽음이다. 그런데 이 사업을 하고부터는 죽음, 이라는 단어가 내 앞에 성큼 와 있었다. 죽음은 일상이었다. 


죽음,

조문을 가면 죽음에 대해 그날은 생각을 많이 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을 앞두고 있지 않은 경우 아니라면 죽음은 오늘 일어날 일처럼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사업장에서 오늘 저녁 식사 때 인사드리고 식사하는 모습을 본 어르신이, 집에 잘 모셔 드리고 인사를 나눈 어르신이, 노래교실에서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흥겨워하셨던 어르신이, 예쁜 꽃그림에 색연필로 정성껏 그림을 그리고 행복해하셨던 어르신이  그다음 날 돌아가셨다는 가족들의 연락을 받는 일들이 자꾸 생기면서 그리고 지난 4년은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때, 그리고 죽으려고 했을 때 죽음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은 가볍지 않았다.


가끔은 심장마비로 나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크게 흥분하고 싸우고 내 온몸의 세포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기가 통하는 듯, 불같은 게 올라와서 얼굴에 열이 오르고 빨갛게 되고, 어느새 눈동자가 빨간 핏줄로 덮이고 핏줄이 터지고, 심장은 벌떡벌떡 뛰고, 내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침대에 누워도 심장이 진정이 안 되고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시작될 때, 이러다가 나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심환을 집에 몇 개씩 사두고, 그럴 때마다 청심환을 먹고 잠을 청했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살아있구나.

집을 정리하고 청소해 두어야겠다. 내 옷들이 너무 많다. 옷만 사모았나 보다. 욕을 하겠다. 옷을 좀 버리고 입을 것만 두고 정리를 해야겠다. 내 소지품을 정리해 두고 필요 없는 것들은 버리고 내 집에 와서 나를 기억할 때 깨끗하게 해 놓고 살았네, 하는 소리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음,

내가 죽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내가 죽고 나면 나라는 사람은 이 우주에서 없어지는 것이다.

0

이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동안은 아내, 엄마, 딸, 가르치는 사람, 사업하는 사람, 

시댁 가족들, 친정 가족들, 지인들, 학부모, 학생들, 어르신들, 보호자들, 직원들, 

때로는 스치는 타인조차도

타인들을 의식하고 살았다.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 사람,

나의 말과 행동에,

남의 시선과 사회적인 시선에 갇혀서 나는 '내가 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주간보호센터에 오시는 어르신들의 나잇대가 다양하다. 80대, 90대, 100살도 계셨다. 

70대도 있고 60대도 50대도 오는 경우도 있다. 

60대와 50대는 드물지만 파킨슨병, 치매, 뇌졸중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이 어렵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주간보호센터에 오시는 어르신들은 마음도 몸도 아프다. 일상생활에 갇혀 산다.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자꾸만 줄어든다. 하나씩 줄어든다. 세수도 양치도 손톱을 깎는 것도 식사를 하는 것도 물을 먹는 것도, 외롭고 슬퍼진다. "할 수 있는 것"은 마음뿐이다. 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나는 지난 4년을 그런 아픈 분들을 지켜보면서, 

나의 죽음에 대해서 진지해졌다. 그리고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니, '나'를 좀 알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여자는 한국 사회에서 통과의례적인 삶, 60대가 되면 65세에 법적 노인이 되고, 자식이 결혼하면 할머니가 되고, 손자 손녀를 돌보아주는 삶, 가족들을 위한 삶, 그리고 가끔은 남편과 여행을 가는 삶 정도일 것이다. 


55세, 예전 나이로는 57세이다. 

70세, 70대는 먼 곳에 여행 가기가 사실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업을 위해서 내가 사는 동네부터 시골 곳곳에서 만난 어르신들, 주간보호센터에서 만난 어르신들, 그리고 내 주변의 건강한 어르신들도 국내여행도 혼자서는 어렵다. 국외여행은 더더욱 혼자는 어렵다. 남편이 동반한다고 해도 어렵다. 60대 후반, 70대 초반, 80대 초중반 어르신 부부 몇 쌍은 외국여행 중에 만났다. 건강하시고 여행을, 삶을, 여유를 즐기시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사시는 듯했다. 그러나 아주 보기 드문 경우이고, 사업이 잘 되고 인생을 성실하게 사셔서 자기 관리도 부부 관리, 가정 관리도 잘하신 분들이셨다. 무척 행복해 보였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행을 많이 가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딱, 지금부터 10년이다. 이 10년 동안에는 내가 이 땅에 왜 태어났는지, 나는 왜 존재하는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어떻게 했을 때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한지, 나의 한계는 어디인지, 나의 가능성은 어디까지 인지 ???


나의 가능성, 

나의 미래, 내가 만날 미래,


나는 만나고 싶다.

오늘의 나가 아니라 내일의 나, 

올해 겨울에는 내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내년 봄에는, 그리고 내년 여름에는, 내년 가을에는, 내년 겨울에는,

1년 이후, 3년 이후, 5년 이후, 10년 이후의 나


매일 되풀이되는 삶이지만 나는 나의 무한한 가능성, 나의 미래와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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