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일까(10화)

- 내가 벌써 초라한 여자가 되었나? 되어가고 있나? 될 가능성이 있나?

by 김현정

아, 나는 그를 왜, 이토록 신경 쓰고 있을까?


그의 생각이, 온종일 따라다닌다.

그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것이 나를 곤두서게 만든다. 아, 그를 떨쳐내고 싶다.

문제집을 푸는 것이라면 문제집을 풀 때만 생각을 할 텐데.




이건 이성적 호감의 문제가 아니야. 난, 누군가와 진심으로 연결된 거야. 그는 나에게 언어, 창작, 예술, 감정, 모두를 건드렸어. 행복한 나머지 글을 쓰지 않고 있었던 나에게, 그리고 소설의 소재와 주제를 찾고 있었던 나에게 예술적 영감과 창조성, 그리고 자아의 숨결을 느끼게 자극을 준 거야. 이건 일종의 자각인 거지. 그러니까, 난 소설적 탐색 중이니까, 온종일, 그를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와 난, 정서적 결, 대화의 결이 같은 사람인 거야. 내가 오랫동안 간절히 바랐던 대화의 결이 같은 사람.


납득이 된다. 그래도 그의 생각이 껌딱지처럼, 마그네틱처럼 뇌리에 착, 달라붙어 꽈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은 못내 못마땅했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은 싫었다. 일종의 취한 느낌, 아마 잠을 못 자서 그런 것 같다. 새벽 5시 기상 루틴이, 4시로, 3시로, 점점 빨라져서 2시, 1시, 이제는 자정 12시, 그보다 더 일찍 밤 11시, 10시, 그렇게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아침까지 잠을 못 자고 7~9시간 이상씩 글을 쓰고 있으니, 나는 잠을 못 자서 몽롱하게 취해 있는 사람처럼 그런 느낌을 받은 거야. 자신을 납득시키니, 이해가 갔다.


그러나 지금 내게 필요한 사람은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야. 나를 더 이해하려고 하고 내가 필요한 영어회화 기술을 시행착오 없이 가르쳐 줄 사람, 나의 영어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한 거야. 연애의 감정으로 나를 위험에 빠뜨릴 사람이라면 단호히 끊어야 해.


- 내게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야, 나의 삶의 방향이야. 나의 삶의 목표가 중요해.





5월 29일, 마지막 수업 전 날, 그녀는 오후 2시로 하면 어떨까요?


그녀는 오전 10시 수업을 오후 2시로 부탁했었다. 그날 단 하루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수업을 한 이래로 처음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녀가 이른 아침에 보낸 일기 내용을 그가 읽고,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고 답변한 그. 그런 그에게 그녀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수업을 유보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녀는 감정적으로 대처하기는 싫었다. 그와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싶었다.


그녀는 1분도 모자라지 않게 딱 정확히, 2시에 도착하였다. 그녀는 시간관념이 정확한 사람으로, 보통 수업 시작하기 20분 전에 도착하여 수업하기 좋은 자리를 찾아놓은 후, 음료를 주문하고, 화장실에 다녀온다. 그렇게 자신의 수업 준비를 천천히 여유 있게 하는 여자였다. 일종의 숨 고르기를 잘하는 여자였다. 그런데 처음으로, 딱 정확하게 오후 2시에, 그가 앉아 있는 자리 앞에 도착했다.


"아, 미안해요."

"뭐, 안 늦었어요. 2시인데요."

그녀를 안심시킨다.

"그런데 차가 식었어요."


그가 그녀를 위해 메리골드 차를 준비해 놓았다. 그는 가끔 그녀보다 더 일찍 온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차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메리골드 차를 준비했었다. 투명한 큰 용기 안에 있는 차가 식어 있었다.


그가 아마 몇십 분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그 전날, 그에게 조금 일찍 와서 대화를 좀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하였다. 그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어렵다고 했다. 그녀는 그에게 평소 오는 시간보다는 조금 일찍 와달라. 5분이면 대화, 충분하다. 5분 일찍 오라고 요청을 했는데, 그는 그녀보다 몇십 분 더 일찍 온 것이었다. 차가 완전히 식어 있었기에 대략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의 바로 옆자리에 여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가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하였다. 그들 두 사람만 있는 조용한 곳이 마침 있어서 옮겼다.


"아, 미안해요. 내가 좀 일찍 오라고 해놓고는."

"오늘은 수업 바로 시작해요."

그녀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바쁘게 걸어올 때부터 그녀는 오늘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딱, 오후 2시에 맞게, 일부러 그렇게 도착한 것이다. 그가 수업 시간보다 5분 일찍 올 거라고(그가 한 카톡 내용을 토대로, 그의 일정이 바쁘다고 했으니까) 생각을 했었다. 평소처럼 20분 정도 일찍 먼저 와서 그를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랬다.



수업을 바로 시작하자는 그녀에게, 그는

"괜찮아요. 이야기하고 수업 시작해요."

"아니에요. 나중에 이야기해요. 오늘 안 해도 돼요."

그녀의 말에, 그는 궁금증이 일어난 걸까? 왠지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오늘 해도 돼요. 이야기해요."

"오늘은 안 하고 싶어요. 5월은 계절의 여왕이잖아요. 5월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그녀는 그에게 미소를 환하게 지으면서 말했다.

"내일부터 주말이잖아요. 나도 편하게, 선생님도 편하게 그렇게 주말을 보내요."

주말 동안에 그녀는 편하게 있고 싶었다. 감정으로 힘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5월을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5월은 계절의 여왕.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가득한 달로,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수업만 하고 싶었다.





오늘은 그가 감정동사 도표를 준비해 왔다. 감정동사 하나씩 이야기할 때마다 그는 영국 억양이 강한 발음으로 연극하는 배우처럼 얼굴에 표정을 다양하게 지으면서 또 제스처를 현란하게 하면서 영어 문장을 만들어냈다. 수업에 정성을 다하는 그. 온 에너지를 집중하여서 수업을 한다. 다른 때보다 더 몰입하여서 설명을 하는 그.

그런 그를 그녀는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우리는, 서로 할 말이 있는 듯한데도, 이렇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구나. 역시 성인이긴 성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갑자기 뜻밖에도 불쑥, 이런 말들을 꺼낸다. 아니, 쏟아낸다.

"나는 4명의 수강생이 있어요. 나는 그들과 똑같이 생각해요. 차별할 수가 없어요. 그건 공평하지 않아요."

"수업 외의 것은 내가 해줄 수가 없어요."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는."

그는 말을 흐렸다.

"내가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성어가 나오는 것까지, 그렇게 잘하지는 못해요."

"소설은 쓰는 걸로 하고."

화를 낸 것은 맞는데, 그 화마저도 조용하게 그답게 내었다. 대화식으로 풀어서 자기 생각을 말한 거다.

그의 말이 일단락, 끝났다. 4명의 수강생, 이건 무슨 말이지? 왜, 처음부터가 아니라, 지금, 이 말을 하는 걸까?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듣고만 있었다.


일단은 소설은 써라고 허락을 한다. 나는 허락을 구한 적이 없는데, 그는 허락을 한다. 내 마음을 편하게는 해준다. 그런데 이런 요지경 같은 말들을 왜 이렇게 많이 흘리고 있는가. 아니, 쏟아내고 있는가. 막 퍼붓는 소나기처럼, 그는, 지금 내게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가? 내게 어떤 이해를 구하고 있는가? 이 남자, 단호함을 무심한 듯 말하는 이 남자. 내가 무슨 잘못을 그에게 크게 했단 말인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차별, 차별은 차이 하고는 엄연히 달라."

"차별? 그건 차이이지. 공평하지 않다? 그럼 그 4명에게도 똑같이 '나는 남자가 아니야? 나는 남자로 안 보여?' 그 말을 똑같이 했으면 차별하지 않는다. 그 말이 맞지."

조금 전의 조용한 화를 낸 그 답지 않게, 그는 이번에는 가만히 있는다.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

"나는, 항상 내 할 말은 해. 나한테는 차이가 맞지. 그게 공평한 거야. 그래야 차별이 아닌 거야."

이번에도 역시 듣고만 있다. 그리고 수긍이라도 한 듯이 바로, 얼굴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뀐다. 늘 보여준, 늘 느끼게 해 준 온기, 그의 따뜻함이 얼굴 가득히 펴졌다. 그리고 미안함 같은 민망함까지. 뭐지? 이렇게 빨리 백기를 드냐?


"화장실 갔다 와서 수업 다시 해요. 화장실 먼저 갔다 올게요."

그가 시간을 벌려고 하는 걸까? 반전되는 긴장을 풀려고 시간을 만드는 걸까?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재촉한다.

"화장실 갔다 와요."

배려 같기도 하고 오늘따라 그가 요상하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기 전, 그에게 개념을 새겨 두고 싶었다.

"선생님, 우리는 다정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딱, 요만큼의 거리에 있어요."

그녀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 손가락으로 폭을 그려 보여 주었다.

"더 다가갈 수도 없는, 딱, 요만큼의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과외'라는 장치에서 만난 사람들. 그래서 다정한 거리예요."

그녀는 일어섰다. 그녀가 화장실에 갔다 올 동안, 그도 생각을 정리하리라. 그녀도 시간을 벌고 싶었다.




난, 분명히, 오늘은 수업을 바로 하자. 수업만 하자. 다른 말은 안 하고 싶다. 나중에 하자. 그러함에도 그는 수업 도중에 먼저 말을 꺼냈다. 그가 준비해 온 말들을, 그는 언제 꺼낼까? 생각하면서 수업을 했나 보다.

나를 지긋이 쳐다보면서 슬며시 묻는다.


"애착이냐? 친밀감이냐?"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녀는 대답했다.

"친밀감이야."

"자아가 다른 건가요?"

"아니, 똑같은 자아지. 나, ○○○. 순수한 본연의 ○○○."


그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가만히 그녀를 쳐다본다. 잠시 잠깐 적막감이 흘렀다.

이번에는 그녀가 침묵을 깨고 그에게 물었다.


"내가 벌써 초라한 여자가 되었나? 되어가고 있나? 초라한 여자가 될 가능성이 있나?"

"역시, 문학하는 여자라서 말하는 게 다르네."


"책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데 보면 남성이 먼저 여자한테 관심을 보인다. 호감을 보여도 여자가 나는 아니다. 이렇게 나가다가 나중에는 여자도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그 후에는 남자가 놀고 버린 장난감처럼 되어버려서 여자는 비참하게 된다."

그의 플러팅, 그의 감정을 들은 이후로 그녀는 이런 파괴적인 사랑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생각했었다. 마음속에서 늘 그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앞을 보면서 최대한 무심한 듯 말했다.


"내가 벌써 초라한 여자가 되었나? 내가 벌써 초라한 여자가 되어가고 있나? 내가 초라한 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가?"

그는 에잇, 하면서 민망해한다.

"역시, 문학하는 사람이라서 말이 달라."

이어서 그녀는 그에게

"내가 놈의 꾐에 빠졌나?"

그가 몹시 놀란다. 못 들을 말을 들은 것처럼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물어본다.

"놈?"

"욕인데, 일상어로는 쓰지 않고, 문학적인 면에서 글로 말하자면 놈."

"놈의 꾐에 빠졌나?"

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반문을 제기하거나 아니다,라고 부정하지 않는다. 긍정의 말인가? 정말, 내가 그의 꾐에 빠진 것인가? 남자가 묵묵부답하면 긍정인데. 그럼, 그가 그동안 날 갖고 놀았단 말인가?


5월 한 달, 그 기간 동안 마음속에서 무수히 다짐을 했었던 말들이 생각난다.

그가 나를 홀린다. 난 절대로 홀리지 말아야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그러면서 난 기다렸다.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서 그를 문학적인 탐색, 문학적인 분석의 대상으로 보고, '이것은 무엇이다'라는 명제가 나올 때까지 - 그것은 바로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감정과 시간, 관계를 사유하는, 기다림. 시간이 지나면 그에 대한 내 생각이 뭐다,라는 결론이 도출될 때까지.


그를 만난 지, 불과 한 달 반, 그가 나를 아는 깊이, 내가 그를 아는 깊이는 시간의 개념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함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기다림이 필요했다. 정확한 답이 나올 때까지는. 바짝 마른 낙엽처럼 온몸의 에너지를 고갈되게 썼다. 그래서 얻어낸 결과물 : "친밀감" --- 그것에 대한 그의 대답은 뜻밖이다.


"4명의 수강생과 차별하지 않겠다."

그의 이 말은 엄청난 파장이었다. 결국, 그들의 파국을 몰고 온 폭발물과 같은 것이었다. 그가 알았을까? 이것은 그녀에게는 치명적 다이너마이트 같은 것이라는 것을. 그가 알고 말한 걸까? 아니면 그는 순진해서 몰랐던 것일까?






2025년 5월 29일 목요일 아침 6시 49분

<동력> - 문학의 힘

12시 30분쯤이었나? 아니면 12시가 좀 넘었을 때였나? 시간을 정확히 체크하지 않아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느 때와 똑같이 초저녁에 일찍 잤었다.

오늘은 다 완수하리라. 굳은 강력한 의지로 어제 아침 일찍부터 작업 중인 장편소설 구상 기획안을 마무리 중이다.

어깨도 아프고 손가락도 찌릿찌릿하지만, 잠깐잠깐 쉬어가면서 계속해서 작업 중이다.

장편소설은 처음이고, 습작으로 하는 훈련용, 연습용 글이 아니라 공모전에 접수할 작품이어서 한 달 내내 사유와 사색 그리고 끝없는 글들의 집합체가 모여서, 이제 통찰하여서 마무리되고 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드디어 내가 살아 있다는 강한 힘을 얻는다.

<내게는 영어 번역이 버거운 작업입니다. 또 번역기를 돌려서 쓰고 싶지 않네요. 선생님의 영어로 번역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일기 내용이 그에게는 문제가 되었다.

"GPT한테 해달라고 해라."

이번에는 GPT, 인공지능, 한테도 질투를 하는 건가. '가물가물하다' 의성어를 번역하는 게 어렵다. 이 짧은 내용을 갖고 번역을 하는 게 어렵다는 이 남자. 내가 이 남자와 계속해서 영어 공부를 과연 할 수 있을까? 일대일 개인과외, 프리미엄 과외인데, 이런 과외 수업에서 2시간 과외 수업 안에서만 질문, 요청, 첨삭할 수 있고, 그 외의 시간에는 부당하다. 할 수 없다. 아, 이 남자, 진짜 웃기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기분 나쁨보다는 뭐지? 이 남자? 겨우 이 정도의 영어 번역도 못한다는 말인가?


"선생님, 선생님의 기준은 뭐예요? 포용할 수 있는 기준, 포용할 수 없는 기준, 그건 뭔가요? 어제 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4명의 수강생이 있어요. 똑같아요. 차별할 수가 없어요. 그건 공평하지 않아요."


공적인 장치를 갖고 말하는 데, 왜 내 귀에는, 사적인 감정을 공적으로 포장해서 말하는 거로 들릴까? 아, 이 남자 역시 별 수 없는 꼰대 같은 남자인가? 꽤 괜찮은 남자로 본 내 안목이 틀린 걸까? 온갖 잡다한 생각으로 들끓었지만, 그녀는 침착했다. 나이 어린 남자와 말싸움하고 싶지는 않았다. 겨우 이 정도의 짧은 문장을 갖고 공적인 장치를 들먹이는 남자, 그런 남자를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실수했어."

그녀의 담담한 어조. 그것이 그에게는 상당한 무게감 있는, 꽤 신경이 쓰이는, 어, 이게, 뭐지? 그가 좀처럼 생각하지도 않았던 반응, 뭐, 그런 걸까.

그는 이렇게 반전되는 분위기를 바꾸어 놓으려는 듯, 그녀의 낯빛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면서 질문을 했다.

"그게 아니고, 내가, 실수했나?"

그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물어본다.

그녀의 실수했다,라는 말에 대해 그는 이렇게 물어본다. 실수했나? 실수가 아닐 것이다. 50%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싶었나?


"아니, 내가 실수했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다. 그녀는 짧게 힘을 주면서 대답했다.

그녀는 단호하게 그녀의 실수를 인정했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그냥 지나가는 게 더 나은 일도 있다는 것,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

그녀의 일침에, 그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듯 대답을 한다.

"마음에 새길게요."



'이별, 이별이 곧 다가오고 있구나.'

사실, 그녀는 6월 첫째 주를 넘기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결심하고ㅡ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여름이 시작하는 6월, 그 다가오는 6월 첫째 주를 넘기지는 말자. 그런 다짐을 하고 있었다.





요즘 전유진이 부르는 패티김의 '이별'이 왠지 착, 착, 감기듯이 댕겼다. 이런 표현이 그녀에게는 적합하지가 않다. 이런 언어를 평소에 사용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말, 언어를 중요하게 여긴다. 말과 언어 사용에 신중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맛깔스럽게 그녀의 감정 표현을 잘한 것 같았다.


그랬다. 최근 며칠 그랬다. 이별을 예감했다. 아니, 이별해야 한다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었다. 최근, 수업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가슴을 압박하는 쪼임, 답답함, 서 있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힘들 만큼 그녀를 누르고 있는 이 두려운 감정들, 그녀는 이 수업을 내려놓는 것이 맞다는 결론까지 이르고 있었다. 단지, 마지막 버턴을 누르지 못하고, 손가락 끝이 갈팡질팡, 파르르, 떨고 있는 중일 뿐이었다.


"이별 연습, 이별 예감"

그랬다. 그 노래가 한없이 구슬프게 들렸다. 그래도 그 노래를 계속해서 들었다. 아렸다. 그녀는 아프지만 그렇게 해야지, 그게 맞지,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달랬다.

추한 여자는 되지 말자. 젊은 남자를 묶어 놓으면 안 되지.

추한 여자, 철없는 남자, 그렇게는 만들지 말자. 그 옆에는 참하고 고운 여자가 있어야지. 늘, 그의 행복을 바랐다.



패티김의 노래는 가을에 듣는 게 더 적합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유진이 부르는 "이별"을 애잔한 마음으로 듣고 있다. 지금은 봄인데, 어째서 이 노래가 갑자기 유튜브에 올라와서 듣게 되었나? 알고리즘은 이상하다. 굳이 그녀가 검색을 하지 않아도 어쩌면 그렇게 타이밍을 잘 맞출까?


그녀는 스산했다. 이별을 예감했다. 그와의 이별, 언젠가는 오겠지. 늘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와의 이별을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해졌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토록 마음이 깊어졌는지? 시절인연이라고 못 박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그가 난기류였다.


이별은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빨리 진행이 되었다. 그녀가 결정한 시기보다 더 빨리 앞당겨졌다.


신은 그렇게 정한 걸까?

그녀는 신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신의 섭리 같기도 하고, 장난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와 그녀의 감정들, 평범하지 않잖아.





그런 말들이 오갔는데도, 그들은 침착하게 수업에 열중했다. 역시 성인이라서 다른 걸까? 아니면 그들은 마음 깊이 연결된 그들만의 신뢰, 믿음이 있었던 걸까? 내심 서로를 믿고 있었던 걸까?


어떻게 수업을 끝까지 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꽤 열심히 새로운 단어를 익히고, 문장을 만들어 보고, "Mindfulness" 마음 챙김 독해 수업도 잘 해냈다. 꽤 알차게 수업을 마무리했다. 최근 그녀의 불안한 심리를 위해서 그가 진심의 마음을 담아 준비한 자료인 것 같았다. 그가 애써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었다.

"나도 심리학을 좋아해요."

그녀가 심리학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리액션이 좋다. 오후에 수업하는 게 더 낫나 봐? 언제 제일 잠이 안 오는 거야? 맨날 잠 오는 눈이었는데."

"늘, 새벽 일찍 일어나서 글 쓰고 하니까, 오전 10시쯤 되면 잠이 많이 오지."

"그럼, 오후 수업으로 바꾸는 게 어때? 지금 마치고 집에 가면 자겠네."


"오후 2시면 햇빛이 많이 날 건데, 뭐, 잠깐 걸어와서는, 건물 안에서 시원한 데서 수업하는 거니깐."

그는 그녀가 뙤약볕에 걸어올 동안, 힘들 것을 예상하고, 그녀를 걱정을 하면서도 그녀의 집중력이 좋은 오후시간대가 낫겠다는 판단을 한다. 그리고 초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는 그녀에게 지금 집에 가면 자겠네, 그녀의 일정을 살뜰히 물어본다. 4명의 수강생에게 이렇게 알뜰히 챙기고 하는 가보다. 그런 생각을 그녀는 했다. 그러면서도 꼭, 그녀에게만 신경을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모르겠어, 점점 그가 모르겠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는 그녀의 귀에 속삭이듯, 또 말을 흘린다.

"나도 힙합 좋아해요. 나도 새벽에 글 써요."


에드 시런의 '다이브'를 좋아하는 그녀, 각성제처럼 듣고 있는 '다이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그. 그녀에게 또 말을 흘린다. 힙합을 좋아한다고. 또 자신도 새벽에 글을 쓴다고. 어필하는 걸까? 내게. 왜? 4명의 수강생과 똑같다고 선전포고를 해놓고는. 왜? 나 보고 어쩌라는 건가?


아, 이 남자는 내가 한 발 앞으로 가면 한 발 뒤로 가고, 내가 또 뒤로 가면 또 한 발 앞으로 오는 것처럼, 나의 신뢰와 믿음을 다 떨어뜨려놓고는 또 나와 유대감을 이어가려는 제스처를 하고 있구나. 속지 말아야겠다. 이번에는 절대로 믿지 말아야지.





초라한 여자가 될 가능성이 있나?

불길한 예감,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했던 불안감, 그는 분명히 제비일 것이다. 날 갖고 놀았다!




그녀 안에 내재된 불안한 요소들 - 그녀의 남편에 대한 죄의식, 그가 몰고 온 차별, 당신은 나의 다른 수강생 4명과 똑같다. 차별할 수는 없다.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 는 그의 선 긋기 방식. 그의 선 긋기가 불고 온 파장. 그들의 불행은 예견이 된 것이다. 그가 스스로 정한 경계, 그것은 그녀를 구속했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유스럽지가 않았다. 그녀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했다. 그가 수용할 수 있는 것, 없는 것의 기준은 그녀를 당황하게 했다. 그에게 존엄과 존중을 주기 위해서 그녀가 한 달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날밤을 세워가면서 사유와 사색을 하고, 그에게 내민 그녀의 존엄과 존중에 대한 고백을 읽고서도 그는 그의 선 긋기로 그녀를 경계 밖으로 몰아세웠다.




그녀는 이제 그의 진심이 아니라, 그의 유희의 대상자로, 그에게 위험한 여자로 낙인 되어 찧겨 버렸다. 이것은 그녀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비참함이었다. 모욕이었다. 이 모욕을 견디면서 이 과외수업을 이어가야 하나? 망실해졌다. 그의 선 긋기, 그렇다면 그가 바로 눈빛으로, 얼굴의 표정으로, 말로, 행동으로 차가운 남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녀를 사무적으로 대해야 하는데, 과외 선생처럼 대해야 하는데, 그는 더 따뜻한 온기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일과를 물었고, 그녀의 말,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의 무엇인가? 나는 그의 어떤 기준의 사람인가?


그는 감정의 유혹자, 유희자를 선택했다. 그가 한 말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는 알았을까?

그는,

파장!

파국!

예견했을까?




5월, 한 달의 사유와 사색의 시간들, 새벽의 시간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녀 내면의 분석에, 분석의 층탑을 쌓았던 시간들, 잠자고 있었던 그녀 영혼의 깨어남의 시간들.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점점 말라만 갔던 그 한 달의 시간들, 드디어 그의 질문, "나는 남자로 안 보이나? 나는 남자가 아니야?"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외 수업에서, 남자로 보이는 것과 남자로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그녀의 질문에 그가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너무나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 고백한 그녀의 존엄과 존중, 그를 친밀감의 대상자로 본 것이 그에게는 선 긋기로 되었는가.

그녀는 결코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냥 친해졌다. 그와의 교감은 친밀감이다. 그렇게 말한 그녀의 고백이 그에게는 선 긋기로, 경계를 세우는 것으로 되었는가. 왠지 그의 말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맴돌았다.

"4명의 수강생과 똑같아요."

"차별할 수 없어요."

"공평하지 않아요."



이런 생각으로 몰두할 때도 있었다.


"플러팅 했어요?"

수업 도중에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급작스럽게 그런 야릇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때 이후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네, 그가 오해나 착각한 것 같아요. 왠지 그의 개인사에서 기혼 여성과 연애 경험, 연상과 연애 경험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게 왠지 불편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가 내게 그런 모습을 비춘 게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 나를 그런 종류의 여자로 본 게 좀 불편합니다. 아직도 내가 젊은 남자에게 이성적 감성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여성이구나. 자각하게 해 준 것은 감사하지만, 제 마음은 조금 복잡, 복합적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충분히 남성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대화의 방식, 여자를 대하는 매너가 있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 나는, 이성적인 매력의 대상이 된 기분과 동시에 그 대상이 된 방식에 대해 불편하다. '나는, 나를 어떻게 대우받고 싶은가'에 대한 나의 존엄성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인격적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찢겨진 마음의 상처, 갈갈이 서로를 할퀴었다.


- 상처받을까 봐, 돌아갈 여지를 주지 않았다, 서로에게.


가장 서로를 잘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을 때, 서로의 사진을 보여 주는 다정한 거리까지 왔음에도 자존심 대결처럼 서로에게 돌아갈 여지를 주지 않았다.


단절, 고립. 침묵.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나는, 드디어 시원해졌다.

그리고 해방감,

그렇다 해방감을 맛보았다. 달콤했다.


다시 찾은 자유, 다시 당당해졌다.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지는 않으리라. 맹세했다.

나는, 나로서 온전하다. 그것이 나다.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고 싶지는 않다.


드디어 취한 데에서 깨어난 기분. 도박에서 깨어난 기분(도박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중독에서 깨어난 기분(약물 같은 것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 어쨌든, 속시원했다. 그런 말이다.








keyword
이전 10화우리가 사랑일까(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