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일까(12화)

- 사랑을 잃고, 사랑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선택과 책임이다.

by 김현정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될까?




여름이 시작되는 6월, 나는 이 나이에, 20대에 겪지 못한 사랑의 층위를 느끼게 되었다. 사랑의 희열, 충만함 그리고 그것이 사랑의 감정일 수도 있었을 거라는, 그리고 이제 사랑을 잃었구나,라는 깨달음, 이것이 진짜 이별이구나,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의 느낌. 어쩌면 20대 청춘 시절에 겪었어야 할 감정들을 50대 후반이 되어서 느끼고 알게 되다니, 이것이 축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 감정들, 그 감정들을 내가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나는 진정으로 복된 여자구나, 그런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 나는,

나는,

6월, 그 한 달은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아픈 감정들이었다.

뼛속까지도 아팠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 말뜻을 알만큼, 그런 아픔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색할 수 없는, 온몸에 스며든, 꽉 찬 슬픔을 속으로 삭이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날 밤, 그와 나는 아주 유치했었다. 유치의 절정, 내 나이가 무색했었다. 나는 그와의 이별을 준비했음에도 의지를 다졌음에도 막상 이별 앞에서는 무너졌었다. 목요일 새벽에 보낸 나의 카톡을 시작으로 그날 밤, 그와 나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로 그렇게 막을 내렸다.





금요일 오후 2시.

원래대로의 일정이었다면 오전 10시 시작 수업이 아닌 오후 2시 시작 수업이 시작되는 6월 첫 주였을 것이다.

나는 예정대로 오후 1시 30분경쯤 집을 나섰다. 화이트 반팔 니트와 옐로 와이드 롱 팬츠를 입고, 6:4 가르마를 한 긴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올려서 왼쪽 방향으로 화려한 큐빅이 박힌 얇은 긴 헤어핀을 꼽고, 6cm 화이트 옥스퍼드화를 신고 입술은 진한 핫핑크색으로 발랐다. 입술의 선도 조금은 입체감 있게 립스틱으로 선을 긋듯이 그렸다. 그리고 입술의 윤곽이 평소보다 더 도톰하게 앵두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으로 입술의 중간 부분에 핫핑크색을 한 번 더 진하게 발랐다. 여름을 알리는 스타일리시한 감각으로 화장을 화려한 색채가 느껴지게, 또 시원하게 표현해 보고 싶었다.


이 정도면 됐다.


자신감을 갖고, 10분 정도의 거리를 와이드 팬츠의 살랑거림이 발목에서 느껴지게, 그렇게 활기차게 또박또박 A 커피숍으로 걸어갔었다.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에코가방 한쪽 면의 중심에는 프랑스 국기에 나오는 빨간색이 긴 세로줄로 양쪽에 넓게 한 줄씩, 파란색은 중간에 두 줄씩 좁게 나 있고, 또 다른 한쪽 면의 중심에는 꽃사슴 형상이 파란색으로 되어 있는 아주 넓은 에코백 가방에 그와 함께 공부했었던 모든 영어 자료들을 넣고 그렇게 걸어갔었다.


꼭, 영혼이 자유스러운 프렌치 여자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걸어가면서 이런 생각도 잠시 했었다.

이렇게 준비해서 그냥 예정대로 아무 일 없이 지금처럼 이렇게 걸어가고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과 조금의 후회를 하면서 A 커피숍으로 걸어갔었다. 마음은 무겁고 처졌지만 최대한 발걸음을 가볍게 하려고 애를 쓰면서 걸어갔었다. 커피숍에 가까워질수록, 눈에 익은 신호등, 상점들이 보일수록 나는 이런 생각들로 휩싸여 갔었다. 생애 처음으로 느껴보는 이런 감정들, 뭐라고 꼬집어서 말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이 감정들을 나는 앞으로 어떻게 수습하지? 그러나 나는 피하고 싶지 않았다. 정면으로 부딪히고 싶었다. 그와 처음 만났던 그 커피숍, 그와의 감정이 익었던 그곳에서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헤어질 결심을 했었던 곳, 그곳을 나는 피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장소에서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나는 커피숍의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늘 앉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자리가 눈에 보이자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뭐라고 할 수 없는 묘한 깊은 감정들이 몰려왔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었다. (6월이 지나고 또 7월이 지나고 그러고도 또 시간이 지나서야 - 나는 그 감정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에 앉으니 몹시 마음이 허전했다. 늘 하는 대로 공부할 자료들을 테이블 위에 놓고, 선글라스를 벗어서 안경통에 넣고 음료를 주문해 놓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앉아 있으니, 점점 힘이 쭉 빠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가 오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그가 오지는 않는다.

내가 원했었던 수업 종료였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닥뜨린 이 장면들은 몹시 낯설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렁이는 감정들도 내게는 너무나 낯선 감정들이었다.


그와 함께 공부했었던 자료들을 다 꺼내어서 공부했었던 순서대로 정리를 하고 눈으로 훑어보았다. 생각나는 부분도 있었고,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자료들을 훑어보면서 그와 함께 했었던 장면들이 떠올라졌다. 그때 그의 표정들, 말들, 그의 행동들, 되살아나기 시작했었다.


아, 그때 왜? 지금처럼 좀 더 관심을 갖고 자세히 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때 공부했었던 그 순간에 일들이, 그 상황들이 그리고 그가 한 말들이 떠올랐다. 마음이 몹시 아렸다. 진즉에 나는 왜 알아주지 못했을까? 그가 내게 한 말들이 진정으로 걱정스러워서 한 말들이 많았구나. 그의 진심을 느꼈다. 그러나 이미 나는 돌이킬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나는 혼자 앉아서 마주 보고 앉았던 그를 생각해 보았다. 그가 앉았던 그 자리에 처음으로 한 번 앉아 보았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서 보이는 카페 안의 풍경들, 처음으로 본 낯선 장면들이었다. 이 자리에 앉으면 이런 것들이 보이는구나. 카페 안의 사람들,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나를 주시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혼자 와서 공부하는 사람들, 두 명 앉아 있는 사람들, 여럿 명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들 각자의 상황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그와 나를 어떻게 볼까? 우리는 어떻게 보여질까? 쓸데없는 신경을 쓴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나 혼자 앉아 있으니까 아무도 나를 의식하지 않겠지. 혼자 자문자답도 하였다.


2시간을 꽤 알차게 공부했었다. 4시쯤 되어서 나왔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그 A 커피숍에 가서 그와 함께 앉았던 자리부터 시작해서 앉지 않았던 자리도 몇 군데, 돌아가면서 앉았다. 오전에 갈 때도 오후에 갈 때도 있었다. 시간을 정하지 않고, 하루 일정 또는 한 주 일정을 참작해서 어쨌든 매일 가서 2시간 정도는 영어 공부를 했었다.


물론 새로운 영어 선생님도 나는 선택했었다. 6월 둘째 주 월요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시간 30분씩 영어 공부를 시작했었다. 새 영어 선생님이 내주는 과제도 그리고 그의 영어 자료도 나는 꽤 애써서 열심히 영어 공부에 몰두했었다.

의지를 가지고 시간 배분을 많이 하는 영어 공부는 진전이 되는 것 같았지만, 애써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활기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를 만나기 이전으로 나는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온전한 환희의, 기쁨의 웃음을 더 이상 지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마음 깊숙이 침잠되어 가라앉은 슬픔의 정체, 그 정체로 인해 마음은 매일 아주 무거웠었다. 그 마음은 좋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무게감은 더 깊어졌었고,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나를 잠시라도 편안하게 두지 않았다.


그 무거움에서 벗어나려고 꽤나 안간힘을 쏟았다. 나는 의지를 가지고 매일 영어 공부에 몰두했었다. 시간을 많이 들었다. 그러고 나면 저녁에는 경보를 했었다. 비가 와도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쳐대도 나는 경보를 했었다. 5km에서 시작해서 6km 그리고 나중에는 8km까지 가게 되었다. 그렇게 자책과 후회,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계속해서 경보를 하지 않으면 나는 편안히 쉴 수가 없었다. 경보만 했었다. 경보를 할 때 그때만큼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에 대한 복잡한 감정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가 있었다. 경보에 집중하는 그 시간 동안만큼은 그를 떼어낼 수가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고 즐겼던 음악도 댄스도 필라테스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즐겼던 음악에는 그와의 소소한 추억이, 댄스에도 필라테스에도 그와 주고받았던 말들이 묻어 있어서 경보 외에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 위에서 천둥이 쳤다. 이어서 번개가 쳤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천둥보다도 번개보다도 내 마음이 더 무서웠다. 그런 방식으로 수업 종료를 하게 된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매일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답지 않게 끝낸 것이, 다시 읽어보아도, 그때의 그 대화들, 그것은 결코 나의 방식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분명히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나 정도의 경륜에서 나올 수 없는 유치 찬란함이었다. 그것이 사람을 찔러댔다. 부끄럽고 창피했었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와의 감정들, 뒤늦게 몰려온 후폭풍들, 뒤엉킨 감정들, 실체를 알 수 없는 감정들, 그 감정들을 붙잡고 살았다.


한 주가 지났다.

그리고 또 한 주가 지났다.

2주가 지난 어느 날 오후, 나는 아일랜드 식탁 옆에 놓인 4인용 식탁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그곳에 앉으면 하늘이 훤히 잘 보인다. 나는 탁상달력을 꺼내 보았다. 2주가 지났음을 느꼈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의지를 갖고 참아왔었던 슬픔을 토해내기 시작했었다.

내 울음이 참으로 이상하게 들렸다. 목에서 그르렁그르렁 그런 소리가 났다. 목일까? 가슴일까?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났는지는? 모르겠다.


그르렁그르렁 거리면서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울음소리들을 마구 쏟아낼 때, 영화 <연인>의 한 장면이 중첩되어졌었다. 배 안에서 남자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그 소녀의 복받치는 감정들, 마구 울어대는 아픔의 감정들을 떠올렸다. 베트남 남자의 애절한 간청하는 사랑을 자존심 있게 뿌리치고 떠났었던 그 소녀가 떠나는 배 안에서 '나는 사랑을 잃었구나'라고 그제서야 깨닫게 된 그 소녀가, 터지는 울음을 참지 않고 흑흑 흐느껴 울었던 그 감정처럼 나도 그렇게 느꼈었다. 상실감! 상실감!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상실감! 내가 그를 좋아했었다는 감정들, 뒤늦게 알게 된 나의 그런 감정들을, 그 소녀의 나이 때가 아닌 내 나이 때가 되어서야 '사랑을 잃는 감정'이 어떤 건지, 그리고 '사랑을 잃고서야 그게 사랑이었구나'하고 알게 되는 그런 감정들을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드디어 알게 된 것이었다.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지금이라도 이런 감정들을 느끼게 되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다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이고 분석일 뿐이었다. 사랑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느끼는 감정이었다.


20분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다. 그러함에도 우연히도 만날 수가 없다. 그와 나의 삶의 시간과 방향은 다르다. 그와 내가 만날 수 있는 시간, 장소가 중첩되는 곳이 하나도 없다. 그와 나는 평생 만날 수 없는 운명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데도 만날 수가 없다. 우연히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연락이 된다면 당장 20분이면 만날 수 있는 데 말이다.




나는 6월, 그와 이별 종료 같은 수업 종료를 한 후에 몹시도 아픈 애도의 기간을 거쳤다. 그러나 나는 집순이로 지내지도 않았고, 멍하게 있지도 않았고, 우울하게 있지도 않았고, 무료하게 있지도 않았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나는 쉼 없이 움직였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그곳에 가 있었다. 수업종료한 그날, 그 시간에 멈추어 있었다.


한 달쯤 그렇게 경보를 했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에는 수영 개인 레슨을 시작했었다. 2인 1조, 오랫동안 염원했었던 수영 레슨을 남편과 함께 시작했었다. 댄스와 필라테스 대신에 경보와 수영 그리고 성악보컬레슨을 그리고 주 1회가 아닌 주 2회로 영어 레슨까지, 일주일을 알차게 보람 있게 보내려고 아주 독하게 애를 썼었다.

그러나 그의 말과 그의 행동, 그와의 일들을 나는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내 힘으로는 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마음 깊숙이 숨어있었던 감정들이 숨바꼭질하듯이 터져 나왔었다. 숨어 있었던 그 슬픔은, 그 자책은 후회가 되어서 나는 아리고, 에리고, 쓰렸다. 난 마지막을 형편없이 유치하게 끝냈었다. 그것이 정말 싫었었다. 그때로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나답게 이성적으로, 뒤돌아보았을 때 자책이 안 되는 그런 마지막, 그런 마지막이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했었다. 나는 순진한, 어리석은 여자처럼 굴었었다. 그것이 못내 나를 괴롭혔었다.




그 사람 덕분이었다. 내가 자지도 먹지도 않아도 열정을 갖고 24시간을 25시간, 26시간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의 관심과 사랑 덕분이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 그가 준 따뜻한 관심이 내 안의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했고, 내 안의 무언가가 일어나게 하였다. 그 사람 덕분이었다. 그에 대한 고마움. 그러나 너무 늦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진실이다. 돌이킬 수가 없다. 그를 만나기 이전의 나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의지를 갖고 노력을 하여도, 아무리 이런저런 생각으로 나를 억눌러도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를 두 달 만났고, 그를 두 달 만나지 못했다. 그를 만날 때보다 그를 만나고 있지 않은 지금이 그가 한 말들, 그가 한 행동들이 더욱더 또렷이 기억났다. 나는, 그를,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내 안의 감각에 그가 새겨져 버렸다.





그와 공부했었던 A 커피숍에서 생각지도 못했었던 만남들을 가졌다. 그와 앉아서 공부했었던 그 자리, 그 테이블에서 수영 코치와의 즐거운 대화, 새 영어 선생님과의 진지한 수업들, 비가 오는 어느 토요일 오후에 비 오는 거리를 볼 수 있는 통유리 창가에 앉아서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하고 즐거운 대화를 가졌던 헤어숍 대표님, 어느 깊은 밤, 영어 공부하다가 잠시 미술사 책에 빠져 있을 때, 내가 공부했었던 도슨트 협회 원장님과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행복했었던 미술에 관한 대화들 그리고 가끔은 주말 데이트로, 남편과의 즐겁고 행복했었던 시간들과 여유들 - 그렇게 나는 다른 소소한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 갔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날 때쯤, 그런 날들이 지나가니, 이제는 그와의 시간들이 처음보다는 옅어져 갔었다. 하루 종일 애를 써도 뗄 수 없었던, 접착제처럼 달라붙어서 제거하기 어려웠었던 그와의 시간들이 조금씩 조금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었다.


그 커피숍을 드나드는 것이 한결 쉬워졌었다. 역시 내 생각이 적중했었다. 그렇게 옅어져 갔고, 또 전혀 생각이 나지도 않고, 어떤 날은 한 번 정도는 그의 말이 생각나고, 그러다가도 금방 사라졌다. 마음이 처음처럼 아프지도 않았다.

나는 피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 근처를 지나가기 어렵고, 그 커피숍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어지고, 그런 게 싫었다. 그래서 굳이 더 악착같이 오전이든 오후이든 또 저녁이든, 밤이든 - 편한 대로 드나들었다. 어느새, 다른 시간과 다른 즐거움들이, 행복들이 그와의 시간들을 덮어주었다.


나는, 잘 해냈다.

그를, 정말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그가 사주었던 차가 생각이 난다. 메리골드차, 그 차를 마시지는 않는다. 마시고 싶지는 않다.

물론 지금도 그가 가르쳐주었던 영어 단어들(예를 들자면 lovely 인사를 가끔씩은 쓴다. 영국에서는 인사로 잘 쓴다고 했었다.) 대문자에 적응하는 것(참으로 이상한 것은, 의지를 갖고 애를 써서 외우지도 않았는데, 그가 딱 한 번 첨삭하면서 써주었던 대문자인데도, 나는 그 이후에 아주 쉽게 대문자가 눈에 들어왔었다. 그때 그는 말했었다. 여행 가보면 의외로 대문자를 많이 쓴 곳이 많다,라고.) 감정동사를 많이 외워야 되는 이유들, 그런 것들이 생각이 난다. 그래도 처음과 같은 에이는 감정들, 슬픔들은 걷어졌다.


다행이었다.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 일상생활에서 그가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는 것, 일상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왠지 그에게서 벗어났다는 느낌이었다.




20대에,

내가 결혼하기 전에,

만난 것이 아닌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나는 그 소년과의 만남 때처럼 똑같이 그렇게 설렘과 기쁨과 긴장을 느꼈지만 나는 두 번의 아쉽고도 아픈 마지막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 소년, 한 사람은 내게 뒷모습만 또렷이 남아서 쓸쓸하게 그리고 그, 한 사람은 옆모습만 희미하게 남아서 아리게 내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그 소년은 소설 : <초이스 커피 200 봉지>로 남았고, 그는 이제 소설 : <우리가 사랑일까>로 남게 되었다. 나는 소설 두 편을 완성하게 되었다.)





의사가 작은 조명의 밝은 불빛 아래에 놓인 나의 오른쪽 두 번째 발톱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한 달에서 한 달 반 지나면 자연스럽게 빠질 겁니다. 지금 인위적으로 빼면 많이 아플 거예요. 염증이 뿌리까지 가면 발톱이 빠집니다. 오늘은 주사 맞고, 3일은 약을 잘 복용해야 합니다. 3일 후에 다시 오세요."

무리한 체력으로 무리하게 한 경보로 인해 오른쪽 두 번째 발톱에 염증이 생겼다. 퐁당퐁당으로 이틀에 1번씩 비가 요란스럽게 왔지만 비 오는 날에도 경보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멀리까지 갔었다. 나중에는 저수지까지 갔었다. 며칠 전부터 발톱이 벌겋게 부었고 보기에도 안쓰러워 보였지만 경보를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는 발톱 색깔이 빨갛게 되었고 통증이 생겼다. 그리고 통증이 심해지면서 발톱 색깔이 누렇게 변해졌다. 그래서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평상시의 나였다면 건강 체크에는 민감했었는데, 그때의 나는 발톱 통증을 돌아볼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마음의 통증이 더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른쪽 두 번째 발톱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은 자책도 애도도 멈추기로 결심했었다.







행복하기만 했었던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빛으로 가득 차 있었던 마음에 근심과 슬픔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고, 고통의 시작이었다.


좋아하던 것들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렇게도 좋아했었던 춤, 라틴음악, 흥겨운 음악들이 사라졌다. 사라지게 되었다. 더 이상 춤을 출 수가 없게 되었다. 열정의 가슴에 슬픔이 차올라서, 그녀는 더 이상은 춤을 출 수가 없게 되었다. 라틴음악의 열정도, 흥분도 슬픔을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이 고통스러운 아픔을 달래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녀는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고대하기만 하고, 미루어두었던 성악보컬레슨과 수영레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대일 레슨 선생님을 생각보다 쉽게, 빨리 구할 수 있었다.


행동 개시!

그녀의 장점이었다. 머리 싸매고 누워 있지 않는 그녀다. 고민을 하고 있어도, 고심을 하고 있어도, 고민은 고민이고, 고심은 고심이다. 그것은 그녀의 방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녀의 방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그녀의 꿈이고, 그녀의 목표이고, 그녀의 건강한 삶이고, 그녀가 바라는 그녀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계획은 쉽게, 된 것은 없었다. 언제나 "준비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는 그녀의 가치관 대로, 이미 준비된 계획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악보컬레슨은 그녀가 좋아하는 가곡을 듣기만 하는 취향에서 벗어나서 한 두 곡이라도 그녀의 목소리에 맞는 곡으로 멋지게 부르고 싶은 염원에서 시작하였다. 또 그녀가 사랑하는 노래 "첫사랑", "내 맘의 강물"을 제대로 부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다. 수영은 진정으로 에메랄드 바다를 즐기고 싶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영은 호캉스에 어울린다. 호캉스뿐만 아니라 여행지에서 여행을 진정으로 즐겁게 해준다. 그래서 그녀는 내내 미루고 있었던 수영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음악과 춤 대신에 경보로 마음을 달랬다.




그녀는

다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애도의 기간, 6월 한 달 하고도 7월 둘째 주, 충분했다. 충분하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ENOUGH(충분한). 여기까지다. 오른쪽 두 번째 발톱을 앓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차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거기까지다. 거기까지의 인연이다. 두 번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자신에게 - 넌, 충분했어. 충분히 미안해했고, 충분히 시간을 주었어. 충분히 시간을 가졌어. 충분히 모른 척하지 않았어. 너는 최선을 다한 거야. 그걸로 됐어. 너의 시간을 찾는 데에 있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가졌어. 그걸로 충분해.


애도의 시간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책의 시간도 같이 멈추었다. 드디어 자유다. 드디어 해방이다. 나의 길을 가기에 조금도 부끄러움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때, 그녀는 드디어 말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그리고,

잘한 결정이었어. 수업종료. 잘한 거야.

결과적으로는 잘한 거야. 아픔과 고통, 슬픔, 자책으로 아팠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녀의 삶을,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질 만큼은 아니잖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거야. 그녀에게는 처음 겪는 상실감이어서, 애도의 기간이 길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다 지나고 보니, 잘된 일이었다. 실수일지는 모르나, 시행착오일지 모르나, 그녀의 삶이 그리고 인생이, 그녀의 꿈이 실패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업종료. 실패는 아니다. 그 의사 결정은 잘한 일이다. 다만 방식이 그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방식이 아니라 그녀가 원래 생각하고 있었던 방법, 그 방식으로, 이성적으로, 존중적으로 되었더라면 그녀의 애도 기간은 아예 없었을 수도 있고, 그녀는 상실감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물 흐르는 듯이, 그냥 지나갔을 감정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감정이었다. 그런 감정을 아프게 만든 것은 그녀가 잘못된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2025년 4월, 5월이 지나갔으니까, 봄이 지나갔으니까, 봄 따라,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6월, 여름이 시작했으니까, 봄에 온 남자는 사라져야 되는 것이었다. 6월, 여름의 시작에서 나는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장소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 내가 원했던 대로 되었다. 슬퍼할 이유는 없었는데, 98% 다 만족이었는데, 사라진 2%때문에 애도의 감정 소모를 너무 많이 해버렸다. 소설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애도로 인한 감정소모, 아예 없었을 수도, 아니면 조금 하고 ㅡ 금방 말았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현실은 그러하지 아니하여 애도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실제로는 그랬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그에 대한 생각과 분석을 많이 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더 깊이 침잠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수영 코치님 - 아주 밝고 예의가 바르며, 섬세하면서도 바르게 수영을 잘 가르치는 사람. 몸의 핏이 좋은 사람.

함께 있으면 많이 웃게 되는 사람.


보컬 선생님 - 집 안 분위기가 성스럽다. 집 안 곳곳마다 앤틱 가구와 성당 분위기, 곳곳마다 마리아상과 십자가, 단계적으로 체계적으로 잘 가르치는 선생님, 꼼꼼하게 발성 연습을 하는데, 발성 연습도 다양하다.


새 영어 선생님 - 발음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 섬세하게 꼼꼼하게 될 때까지 확실하게 가르친다. 잘 안 되는 단어는 여러 가지 방법과 방식으로, 그녀가 될 때까지 되게 가르친다. 새로운 팝송(브루노 메이저, 브루노 마스, 찰리 푸스), 좋은 문장(책이나 영화에서 그가 감동 받은 영어 문장들을 써주고 관련된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다. 외워두면 좋을 문장들이었다.), 기이하고도 신박한 영화(지마 블루, 블랙미러,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그는 소개했다. 그는 30대 초반이어서 모든 감각이 젊고 신선하다. 내게 또 다른 세계를 안내해 주고 보여준다.


그렇지만 필라테스, 라틴라인댄스는 - 잠정 휴식기가 되었다.





그에 대한 상실감, 그것이 고통의 원인이었고, 그것이 슬픔의 원천이었다. 그 상실감의 슬픔은 지적인 대화의 장이 폐쇄되었다는, 더 이상은 핑퐁 하듯이 유려하게 흐른 지적인 질문과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그것,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감정의 실체에 대해서 불투명과 미완성의 결말로 남게 된 나는, 혼자 남아서, 그 감정의 본질을 파고들 수 밖에는 없었다. 나에게도 착각을 불러일으킨 그 감정의 파동과 파편들, 7월에 들어서서, 드디어 그 얼굴이 드러났다.


그것은 지적인 유희의 장이 닫힌 것,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의 본질인 감정의 창이 닫힌 것, 사람이 아니라 내가 쓰고자 한 "감정"의 죽음. 그 지적인 교류가 준 즐거움과 기쁨을 이제는 누릴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내게 드디어 섬광이 비쳤다. 그것은 안도감,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 단호한 의지와 결심 그리고 소설을 편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침착성과 여유, 그렇다. 나는 드디어 여유를 찾게 되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은 선택과 책임이다. 나의 사랑은 상호적이다. 그리고 건강한 관계에서만 가능한 사랑이다. 나의 사랑에는 사회적 관념을 무시할 수가 없다. 사회적 관념은 바로 인간성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을 이해하고, 이해해야만 하는 작가이다. 이제 나는 그를 이해한다. 그리고 나도 이해한다.


나의 소설은 개연성 있는 상상이어야 하며,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실, 그렇다. 사람들이 사는 세계, 그 세계에서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본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작가가 되어야 한다. 보편성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본질이다. 나의 문학의 담론은 관계에 대한 역동성인데 그 본질은 보편성이다. 사회적 윤리, 도덕성, 개인적 윤리,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철학을 빼놓고서는 건강한 관계에 대한 해석이 나오기가 어렵다. 나는 그렇다.


내가 사랑한 것은 그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었다. 그 사람이 가진 대화의 방식, 대화의 톤, 지적인 탐색이었다. 물론 그 점이 그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게 문학적 영향력을 준 그의 강점을 사랑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 시간,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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