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일까(9화)

- 선생님과 나는 다정한 거리예요. 우린 친해졌고 친밀해졌어요.

by 김현정

"선생님, 나는 주로 호칭을 이렇게 불렸어요. 대표님, 원장님, 선생님, 작가님."

나의 말에 그는 움칠 놀랬다.

나는 이어서 또 말했다.

"나를 ○○ 님, 이라고 부르니까, 나와 나이차이가 없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는 숨죽이면서 듣는 듯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 님이라고 부르긴 하더라고요. 듣기는 좋아요. 이름을 불러주니까요."





"She gives it me."


○월 ○일 ○요일, 영어 수업 시간, "World Emoji Day" 독해수업하는 날, 그날은, 그녀에게 있어서 모네가 해돋이를 보고 작품 '인상, 해돋이'를 남긴 것처럼 바로 그런 날이었다. 인상적으로! 남은 단어 하나! 인상적으로 남은 그의 말, 그녀가 채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기도 전에, 그녀가 화면의 영어 문장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읽고 있을 때, 바로 그때, 그녀의 머리 위에서 들린 말,


그가 뱉은 말, "○○." (애정이 깃든 목소리로)

님이 들어가지 않은 호칭, 그냥 이름만 툭 뱉었다. 왜? 뱉었냐고 말하냐면 그녀를 어떤 이유로 부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수업 도중, 그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아지랑이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호칭, "○○."


그녀는 그냥, 짐짓, 또ㅡ모른 척했다. 그냥 삽시간에 사라졌다. 물거품처럼. 그 호칭은 날아갔다. 아쉽지만, 한 번 더 듣고 싶은 말이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 뭐지?" 생각이 여물기도 전에, 바람처럼 지나갔다. 그저 공기를 마시듯 그냥 그렇게, 사라졌다. 허공에.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내 나이가 몇인데, 이름을 부르냐?) 그러나 꼭, 꼬집어서 말한다면 그때의 기분은 황홀했다고나 할까? 꽃봉오리에 잠시 앉았다가 인기척 소리에 순식간에 날아가버린 나비 같다고나 할까?


'언제, 누가, 내 이름을 그처럼 불러주었나?' 부드러운 바람에 몸을 맡긴 듯, 달콤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찰나였다. 내 이름이 그렇게 예뻤나? 그의 말의 톤 덕분에 내 이름이 그 순간에는 예쁘게 들렸다.


그는 나를 선생님이라고는 부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 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녀가 언급한 이후로는 자주 부르지 않았다. 한 타임 수업에서 1~2번 정도, 어떨 때는 그마저도 호칭을 부르지 않았다.





햇살을 머금은 물결이 보였다. 24층에서도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닷물결 ~~~

24층 객실,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물결은 신비로웠다. 반짝반짝, 바다 수면이 참 예뻤다. 그 물결을 보고 있으니, 그 말이 문득 생각난다.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흐르는 물은 매번 다른 물이기에 (헤라클레이토스, 단편)


똑같은 강물이 없다. 흐르는 물은 다른 물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5백 년 경 그리스 에페소스에 살았던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그리스 철학자다. 그의 이 말은 "누구도 똑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강도 사람도 다음번에는 이전과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것도 가만히 머무르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다른 물이다. 그 말이 참 좋다. 달라야 한다. 변해야 한다. 변화해야 성장하는 거다. 변화해야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거다. 나는 변화되었고, 변화를 또 하고 있다. "변화" 멋지다. 나는 글쓰기를 하면서 내가 내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게 제일 좋다. 나의 분노를 조절할 수 있다. 나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것은 나에게 큰 변화다. 지난 몇 년의 고통, 아픔, 분노를 생각하면, 롤러코스터 같았던 나의 감정을 내가 지배할 수 있게 된 변화, 이 책을 잘 빌렸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뜻밖의 것의 단순한 아름다움>은 어느 물리학자의 낚시, 생명, 우주에 관한 명상록인데, 그 책을 읽을 때, 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늘, 지금, 이 시간, 나트랑 해변가에 있는 24층 객실 아래, 햇살을 머금은 흘러가는 물결을 보니, 그 구절이 떠오른다. 흘러간다. 흘러간다. 흘러가면 예전의 물이 아니다.


오전 10시 미팅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갈 준비를 다했다. 여유를 부리면서 갖고 갈 것들과 가방 준비를 했다. 아직도 2시간이 남았다. 여유가 많았다. 새벽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그녀는 갑자기 몹시 피곤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부터 몸이 솜뭉치 같았다. 남편도 그녀도 침대에 누워서 쉬기로 했다. 남편은 주로 휴대폰을 보면서 쉰다. 그녀는 잡다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적는 중간 크기의 수첩을 꺼냈다. 이 여행을 마치고 나면 해야 할, 중요한 계획인 그녀의 소설 쓰기. 그 소설의 주요한 인물, '그'에 대해서 정리를 한 번 해보자. 그가 한 말 "나는 남자가 아니야? 나는 남자로 안 느껴져?" 그의 질문에 대한, 그와의 관계를 단정적으로 이것이다. 그런 개념을 한 번 정리해놓고 싶었다.





"Realize" (깨닫다) : 그녀가 좋아하는 말 : 깨닫는 것은 유레카다.

- 순서대로 읽어 주세요.


2025년 5월 19일 월요일


<1> 교감. 그가 처음 이 단어를 언급했을 때 나는 놀란 토끼마냥 '공감'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그런데 그는 내게 결핍된 공간(정서)을 읽었다. 지금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교감이었다.


그저 어린 사람으로 보지 않고

남자 대 여자

동등한 평등한 관계로

그를 보니

그가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남성성,

그가 가진 남성성,

용기, 솔직함, 담백함, 진실성,

성실성 + 한 스푼

(가끔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레트 버틀러의 짓궂은

농담, 비비안 리의 눈에 비친 장난기)


+ 태도, 배려

(결코 설익은 어린 남자가 아니었다.)


<2> 존재감. 존재감을 느끼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 조건을 떠나서 한 인간으로 존재감을 느낄 때(인식할 때) 남자(남성성), 여자(여성성)로 인식될 수 있다.


그가 남자로 보이니,

긴장이 되었다.


말의 높낮이, 리듬감, 그의 대화방식, 약간의 장난기

매력 있었다. 그의 배려까지.


3주 동안 내게 질문과 대답.


그는 내게 특별하다.

많은 것을 사색하고, 사유하게 해 주었다.

(2025.5.19. 월. 오전 8:30)


<3> 통찰. 3주, 사색과 사유의 시간


나는 자유로워졌다. 그 앞에서


나의 여성성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부드러움, 장난기

나는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와 내게 주어진 시간들,

존엄, 존중 속에 품격과 성숙한 태도와

감정들...


서로의 길을 위해서 응원해 주는

성실한 시간을 만들기로...


<4> 자유. 4주. 드디어 답을 찾다.

나는

자유로워졌다.


나는

그를 선택했다.

존엄과 존중의 대상으로

(일종의 '애정'이 바탕)

(2025.5.19. 월. 오전 8:40)


<5> 질문.


여자 친구한테 하나 가르쳐주면

얼굴 빨개지듯이 빨개졌다.

플러팅 했어요?

나는 남자로 안 보여요?

나는 남자가 아니야?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물어봐줘서 사유할 수 있었어요.

물어봐줘서 알게 되었어요.

(2025.5.19. 월. 오전 9:18)


내 중국어 실력이 좋아지면

당신의 영어 실력도 좋아진다.

(물론 시간이 쌓이면... 당연히

그렇게 알았지만)


그가

해커스톡 중국어 교재를 보여

주면서 했던 말

(성실한 시간을 만들자는

말이었다. realize)

(2025.5.19. 월. 오전 9:20)





4박 6일의 여행 일정이 끝났다.


토요일, 내일 고대하고 기다렸던 라틴라인댄스 3시간 워크숍이 있다. 금요일 도착 즉시, 트렁크에 있는 모든 짐들을 꺼내어서 정리부터 하였다. 미루면 하기가 싫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욕조에 뜨거운 물을 준비했다.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을 만끽하면서 일단은 잠을 푹 자자, 내일을 위해 컨디션 조절을 잘하자. 그녀는 저녁도 먹지 않고 잠을 다른 때보다 많이 잤다.


토요일 오후, 무사히 워크숍을 다녀왔다. 한 달 넘게 집에서 매일 1시간씩, 토요일은 3시간씩 안무 연습을 한 결과 2시간은 라틴라인댄스를, 10분 휴식 후, 1시간은 댄스스포츠협회의 젊고 예쁜 그리고 상냥하기까지 한 회장님과 함께 하는 라틴댄스를 열정적으로 추었다. 그렇게 그녀의 10일 정도 되는 모든 일정들이 끝났다.


이제 그와의 5월 마지막 주 수업만 남았다. 월요일 미술 1시간, 화요일 영어 2시간 그리고 금요일 영어 2시간.






"어, 웬일이야, 대박! 내가 로또 된 거야."


그녀보다 먼저 와서 음료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그를 보았을 때 그녀 입에서 터져 나온 말, 미처 품위 있는 인사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그 앞에 앉았을 때, 그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불쑥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다고 호들갑 뜬 것은 아니었으니, 괜찮다. 밝게 인사를 한 것뿐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게 들릴 수 있을 거야.



"얼굴이 좋다. 여행을 잘 갔다 왔나 보다."

그의 밝은 인사에, 그녀도 그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가 내심 나를 빨리 보고 싶어서 일찍 와 있었나 보다. 그것이 기뻤다.

"나는 서울 갔다 왔어요."

미처 그녀가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그의 일정에 대해서 말했다.

"친구를 좀 만나고 왔어요. 사회에서 만난 친구예요."

그의 얼굴이 환해 보였다. 그도 잘 쉬었는 것 같았다. 그는 웃는 얼굴이 유독 예뻤다. 그의 눈매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닮았다. 눈매 주위가 김연아의 스모키 아이라인을 그린 것처럼 까맣고 깊었다. 어떻게 검은 아이라인을 그린 것처럼 저렇게 까맬 수 있을까? 처음, 그의 눈매를 발견했을 때 너무 예뻐서 내심 놀랐다. 남자 눈매가 저렇게 예쁠 수 있나? 어디서 봤지? 저런 깊은 그윽한 눈매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엘비스 프레슬리의 눈매와 닮아 보였다.


"선생님, 수업 전에 잠깐만요."

그녀는 그 앞에 준비된 그녀의 일기장을 내밀었다.


"선생님이 전에 내게 물은 그 질문에 대해서 한 달 넘게 생각해 봤어요. 이제 내가 답변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녀의 메모지, 그녀의 수첩, 그녀의 일기 내용을 읽었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녀는 말보다는 글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다. 정리된 그녀의 마음, 감정, 생각들을 읽는 것이 그도 처음은 아니었기에 별로 당황하지도 않는 기색이었다.


그는 그녀의 일기장을 몰입하듯이 집중해서 읽었다. 그의 낯빛, 표정이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밝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그들은 질문을 한 자와 대답을 한 자로, 그가 그 질문을 한 이후, 한 달이 되었을 때쯤, 그렇게 그는 그녀의 답변을 들었다.


그녀는 속이 시원했다. 그와의 감정의 모양, 색깔을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분석을 아주 열심히 하였고, 꽤 좋은 답변, 훌륭한 답변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가 읽었을 때 어떤 것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좋은 답변을 그에게 내놓았다. 그녀는 만족스러웠다. 그와 계속 수업을 한다 해도 괜찮은 것이다. 그와의 관계는 친밀한 관계, 사회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녀는 납득이 되었다. 자기 자신에게.

물론, 그도 납득이 되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노트북을 준비하면서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모른다. 그러니까 그걸 써지도 않고 그냥 두고 있지."

"엉, 무슨 말이에요?"

그녀가 물었지만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냥 혼자 중얼거린 사람처럼 그렇게 지나갔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이상하게 그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가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는 일주일 동안, 그녀는 그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여행을 잘 다녀오라고 하면서 영어 공부를 위한 영작 카톡을 안 해도 된다고 했었다. 그의 배려였다. 그녀가 여행을 편안히 즐기고 쉴 수 있도록.


여행 중에 그녀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마, 그가 그녀의 플랫폼 브런치스토리를 찾지 않을까. 그녀가 말한 7화가 너무 궁금해서. 그녀의 연재 브런치가 너무나 궁금해서. 아니면 그녀의 부재가 너무 커서.


그의 다소 엉뚱했었던 그러나 그의 진실함, 진심이 느껴졌었던, 영어 대문자가 가득 쓰여 있었던 수백 장의 A4자료들 그리고 그의 설계 도면들.

베트남 여행 가기 전, 수업에서 그녀 또한 다소 엉뚱하게도 그에게 예전에 썼던 그녀의 글들을 메일로 보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나는 미술도, 영어도 준비하는 이유가 있어요. 배우는 이유가 있죠. 나는 미술도, 영어도 진심이에요. 그런 마음들이 나온 글들을 보냈다. 이제, 그는 그녀가 어떤 내면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녀가 그에게 글들을 보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가 그녀가 배우고 싶은 미술, 영어에 대한 수업 준비를 충분히 잘해주길 기대를 했었다. 물론 그도 노력해서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녀의 입장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그가 방향을 잘 잡고 수업 준비를 잘 해주길 기대를 한 것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는 미술도 영어도 수준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가 방향만 잘 잡는다면, 그녀의 공부에 대한 진심을 깨닫는다면 그는 그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줄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다.




그녀의 예견대로 그는 그녀의 소설을 읽어 본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중얼거림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사랑이었나? 진정 그는 그녀에게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말한 개념, 그 친밀감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을까. 그녀는 그가 그녀의 대답, 친밀감을 들으면 아주 기뻐할 줄 알았다. 물론 그의 얼굴은 미소로, 행복으로 가득 차 보인 것 같았지만 그의 중얼거림은 그녀에게 또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keyword
이전 09화우리가 사랑일까(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