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 <사랑의 조명등>

by 김현정

나는 사랑을 안전하게 다루었다.


나는 사랑에 배신당해 고통받는 여자의 삶부터 읽었고, 그런 여자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다락방에 올라가서 아버지가 숨겨놓은 책들을 비밀스럽게 재미있게 읽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성인들의 세계였다. 그 세계는 고약했다. 아지랑이 같고, 물안개 같고 그리고 시련과 고통이 있었고, 결국은 파괴되었다. 내가 처음 읽은 사랑들은 파괴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사랑의 기준을 정했다. 좋은 남자, 배신하지 않을 남자, 그런 남자를 보는 안목이 됐을 때, 사랑해야지. 난 그전에는 절대로 사랑을 하지 않으리라.


사랑은 깨지기 쉬워.

사랑은 크리스털이야.

사랑은 안전하게 다루어야 돼.


여자의 일생,

안나 카레니나,


너무나 강렬했다.

절대로 사랑에,

넘어가지 말아야겠다.

굳은 다짐을 했다. 그건 유혹이야. 자신을 망쳐, 자신의 삶을 망쳐, 오로지 꿈, 이상이야말로 소중하고 가치가 있어.


소녀시절부터 사랑에 보호막, 방어막, 안전막을 씌웠다. 나를 꼭, 지켜내겠다,라고.


나는 안전했다. 아무도 나를 다치게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도 만나지도 않았고, 아무도 호감을 느끼지도 않았고, 아무도 누구 하고도 연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연애 세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랑의 소설들, 사랑의 문장들, 사랑의 언어들, 속삭임, 달콤함, 씁쓰레함, 아지랑이 같이 올라올 감정들, 알 수 없는 끌림, 매혹, 그런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갈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의 진심을 줄 사람을, 나의 마음을 줄 사람을, 나의 진심과 나의 마음과 나의 사랑을 주고 싶은 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가 다가올 때까지 그리고 내가 그를 알아볼 수 있을 때까지.



그런 사랑이 나타났다.

나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나만 사랑해 줄 것 같은 남자,

소극장에서 나를 7시간이나 기다려준 남자, 이 남자라면 평생 나를 기다려 줄 것이다.

담배 연기를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뿜는 남자가 아니라 옆으로 고개를 돌려 연기를 내뿜는 남자, 안정적으로 월급을 갖다 줄 남자, 내 말에 경청하는 남자, 이 남자와는 되겠다. 이 남자와의 사랑은 순조롭겠다. 이 남자와의 삶은 안정적이겠다. 이 남자는 내게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삶은 그렇지가 않았다. 안정적인 사랑은 그 어디에도 이 세상에는 없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너무도 순진했었다. 삶은 빙산인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데, 삶은 녹록지가 않는 것이었는데, 삶은 그런 것인데, 삶은 아름답지만 우리에게는 원죄가 있으니까 고달픈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상처 없는 사랑은 없다.

성숙해지니 깨닫게 된다.



이런 나에게도 아린 추억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리지만 깨우침을 주는 그런 것들, 아프지만 나를 더 단단하게 해주는 그런 것들, 폐부를 찌르는 상실감도 맛보았고, 어떤 감정들의 실체들을 깨우치게 되었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층위들, 파장들, 그런 것들의 경로, 어디에서 서성거리며 찾고 있는 감정의 숨결들, 영혼의 숨결들, 나는 여자로서 익어가고 있었고, 한 인간으로서도 익어가고 있었다. 맛있지 않은가. 떫기만 한 단감도 익으면 단단하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 달콤함이 녹아 있지 않은가.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나도 익어가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단감을 한 입 베어 물고 환하게 밝아오는 가을 아침을 즐기고 있다. 상큼한 리듬과 함께.





노란빛,

오렌지빛, 어우러져, 나의 사랑을 밝혀준다. 나는 여기까지 왔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채워지고 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 나는 세 번 있었다.


이 사람, 안 보면 못 살 것 같은 그런 강렬한 끌림, 딱, 한 번이었다. 내 나이 25살, 그의 나이 29살, 우리는 연애 기간 1년, 4번의 계절, 연애는 1년이 가장 좋다, 그리고 결혼하는 것이 좋다, 궁합은 4살 터울이 좋다,는 또 시어머님이 사주를 봤는데, 똑똑한 여자와 결혼한다고 하더라,는 그런 좋은 조건을 갖고 양가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했다. 나는 첫사랑을 했고, 또 첫사랑과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을 낳아, 남편 사랑 그리고 아들의 사랑, 내 소질과 적성에 맞는 그리고 내가 간절히 원했던 논술강사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는 작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으니, 나는 운이 좋은 여자다. 복이 많은 여자다. 이렇게 감사하고 있다.


첫사랑을 이룬 게, 나의 큰 자존감이었다. 나는 여자로서 내가 고결하다는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첫사랑' 가곡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장 마음이 아팠을 때 이미 빛바랜 설렘과 이해할 수 없는 사랑 때문이었다. 가장 좌절하고 힘들었던 시절, 내게 수잔 잭슨의 "에버그린"과 같은 초록빛, 푸른빛을 선사해 준 빛의 노래가 바로 '첫사랑'이었다. 한 3년을 비밀스럽게 혼자만 들었던 노래, 그 '첫사랑'이 나를 많이 위로해 주었다. 가장 인생의 삭막한 곳에서 나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던 가곡, 그 아름다운 선율과 아름다운 가사가 나의 아픔을 치료해 주었고, 나를 미풍처럼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그 노래를 사랑하게 되었다. 진짜 '첫사랑'을 첫사랑하듯이.


내가 '첫사랑' 가곡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리고 '첫사랑'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도 아마 나의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강렬함을 3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말, REALIZE(깨닫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첫사랑에는 강렬함이 있었다는 것을.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함께 하고 싶어서 결혼을 했었다.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위태로웠던 결혼생활을 지켜주었다. 나의 남편도 그랬을 것이다.


사랑의 의미, 사랑의 본질, 바로 내 옆, 가까이에 있었다. 사랑의 의미, 사랑의 본질은 함께 하고 싶다, 이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어려움도 함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쓴뿌리마저도 저절로 용서하게 되는, 이해와 용서가 사랑의 힘이 아닌가.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우리 두 사람도 시련이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이 헤어질지도 모를 정도로 가혹한 시련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을 끝까지 맺어준 것은 단 하나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믿음은 '서로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그 믿음, 하나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100세까지 건강하게 같이 잘 살자. 지금처럼. 그리고 같은 날, 죽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먼저 죽으면 당신이 잘 정리하고 몇 개월 있다가 와줘. 난, 무서우니까. 아냐, 남자가 먼저 죽어. 그러면 난 같이 따라가지. 당신 없이 연명하는 삶은 삶의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아. 그래, 그러면 같이 죽어야 되겠다.


강렬하게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냐. 죽을 때 같이 죽고 싶다는, 강렬한 연애가 아니냐.

6개월의 여정이 나의 강렬한 첫사랑을 다시 찾게 해 주었다. (2025.10.28. 새벽 04:15)


그럼, 그와의 만남, 그와의 끌림, 그것은 또 다른 첫사랑이 맞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속설과도 맞다. 그런데 첫사랑이라고 이름 부를 수 있나? 시작도 해보지 않은 사랑, 서로의 진심에 대해서 말해본 적이 없다. 그냥 알고 있다. 그냥 느끼고 있다. 서로를 위했고, 서로의 행복을 빌었다. 성숙했다. 그런데 유치하기도 했었다. 미숙해서. 나는 재미있다. 꽤 재밌는 인생 도치가 아니냐? 강렬했었던 나의 진짜 첫사랑의 회복을 위해서 나의 진짜 연애의 회복을 위해서, 내 나이 만 56살에 찾아왔던 인연, 신이 내게 주신 깨달음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의 치열한 사유 덕분일까? 나는 나의 강렬했었던, 그리고 지금도 강렬한 나의 사랑을 회복할 수가 있게 됐다. (새벽 04:48) *첫사랑* 그 말이 주는 어감이 좋아요. 지켜냈다. (새벽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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