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처음 만나는 날8
품이 적은 옷을 버리지 못하고 오래 입었다. 나에게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선의에 먼저 주목했다.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 미덕이고, 나다운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들의 이익과 부합할 때에는. 그러다 계산에 오차가 생기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긴다. 떠나가거나 항의한다.
사과 수확을 앞두고 있다. 귀농 후 줄곧 무농약 사과농사를 짓고 있다. 작년까지는 서울에 가져다 팔았는데, 남편 말대로 남는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인심 좋다 소리만 오지게 들었다. 지금도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같은 사람이다. 카카오톡 게시물에 좋아요가 눌리고 댓글도 달린다. 콜 부탁.
이쯤 되면 나도 오기가 생긴다. 그래서 지금은 더더욱 연락을 드릴 수가 없는 이유다.
한때 나는, 나의 실패는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라 생각했다. 영혼을 갈아 넣었다. 태양에 얼굴을 양보했다.
이제 다시 생각한다. 지금의 실패는 그 전의 실패보다는 진화했으며, 그 전전의 실패와도 같지 않다. 그건이면 족하다. 뉘우치고 반성하는 시간을 좋아한 나머지 내 것이 아닌 타인의 잘못까지 뉘우치며 살아온 건 아닌지?
정리한다. 쉽게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실패는 나의 실패와 다르다. 나의 패인은 노력하지 말아야 하는 자들에게 나를 헐값에 내준 것에 있다.
그러므로 나의 은둔은 무죄. 꽝꽝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