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를 지켜라, 씻겨 내려가기 전에

PART Ⅲ. 마음의 지도: 아빠의 세계 속으로

by 연우

작가들이 기벽을 가지고 있다는 일화는 자주 전해진다.


사과의 썩은 냄새가 창의력을 증가시킨다고 생각한 독일의 실러는 책상 서랍에 사과를 넣어두었다. 괴테가 실러의 작업실에서 시체 냄새를 맡고 기겁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는 글을 다 쓰기 전까지는 하인에게 옷을 갖다 주지 말라고 명령하고서는, 나체의 상태로 글을 썼다고도 한다. 영국의 찰스 디킨스는 나침반을 꺼내 침대가 북쪽을 향하는지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


이쯤 되면 국적을 불문하고 작가에게 루틴이란 거의 종교에 가까워 보인다. 어딘가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이는 가까운 곳에도 있었다. 우리 집에도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아빠였다.


하지만 아빠의 의식은 다른 작가들처럼 뭔가를 하는 행위가 아닌, 하지 않는 행위였다. 처음에는 머리를 감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세수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는 양치마저 하지 않았다. 그랬다. 아빠는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씻지 않았다.


일이 바빠질수록 서재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썰렁이의 목욕 시기가 다가오면 냄새는 한층 진해졌다. 아빠와 썰렁이의 체취가 섞이면 생전 처음 맡아보는 괴상한 냄새가 났다. 이불까지 빨지 않으면 악취의 삼위일체였다. 그 냄새는 마치 형태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서재에 들어갈 때마다 뱀이 내 몸을 끈적하게 휘감는 것만 같았다.


털이 사방으로 엉킨 썰렁이는 멀리서 보면 젖은 대걸레처럼 보였고, 꾀죄죄한 아빠는 긴 수염과 머리카락 때문에 집이 아니라면 마치 야생에서 지내는 사람처럼 보였다. 바닥 이불 위에서 둘이 사이좋게 누워 있는 모습은 꼭 ‘문명을 거부한 자와 그의 반려견’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 같았다.


썰렁이는 씻기면 해결됐다. 하지만 아빠를 씻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참다못한 엄마는 처음엔 잔소리로, 나중엔 애원으로, 마침내 이혼 협박으로까지 단계를 밟아갔다. 엄마의 목소리는 아빠의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흘러나가는 배경음악일 뿐이었다.


씻지 않는 고집은 미스터리였다. 처음에는 바빠서 씻을 시간이 없다고 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고 당구나 바둑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도 씻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바둑 두거나 책 읽을 시간에 씻으면 되잖아. 시간이 없는 게 아니잖아.”


아빠는 정곡이 찔렸는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빠 머릿속에는 광대하고 체계적인 우주가 있어. 그 우주는 날마다 창조와 파괴를 거듭하지.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생기고, 인물들이 말을 하기도 해. 그런데 만약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 올린 우주가 뜨거운 물에 녹아 하수구로 흘러가 버려. 이미 씻겨 내려간 것들은 되찾을 수 없지. 그래서 씻을 수가 없는 거야. 알겠니?”


아빠의 창작론은 그럴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냄새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빠의 우주적 창작론과 냄새라는 현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었다. 결국, 나는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를 보면 언젠가부터 가장 많이 떠올린 단어가 ‘그러려니’였다. 그래서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아빠는 어느새 ‘그러려니 씨’가 되어 있었다.


우리의 ‘그러려니 씨’는 결국 엄마의 인내심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아빠의 상태가 너무 지저분해진 어느 날, 엄마는 처음으로 식사를 따로 하자고 했다. 엄마와 내가 먼저 식사하고, 아빠는 나중에 혼자 먹었다. 엄마는 밥상을 두 번 차리는 수고로움보다, 코를 쥐고 숨을 참는 고통을 더 견딜 수 없던 것이었다.


“으이구. 내가 언젠가는 이혼하고 말지.”


저녁상에서 엄마가 홧김에 반 장난, 반 진담 조로 중얼거렸다. 나는 입안에 밥을 문 채 물었다.


“너무 씻지 않는 것도 이혼 사유가 될까?”

“당연하지."

“그렇다면 이 이혼은 아빠의 잘못이 크겠네?”


엄마는 두말하면 잔소리라 대답했다.


“재산 분배는 어떻게 할 건데?”


엄마는 코웃음을 쳤다.


“네 아빠에게 줄 건 늘 누워 있는 저 냄새 나는 이불이랑 베개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는 결국 이혼하지 않았다. 한 끼에 밥상을 두 번 차리면서도, 그러려니 하며 살아갔다. 아빠는 여전히 씻지 않았고 여전히 우주를 창조했다.


나는 생각했다. 스토리 작가는 머리 속에서 혼자서 수십 명의 인물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밥도 혼자 먹고 씻지도 않는다고.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예술가는 절대로 사랑하지 않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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