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Ⅲ. 마음의 지도: 아빠의 세계 속으로
엎드린 채 밥을 먹고, 집 안을 기어 다니는 삶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그것도 병원에 가기 싫다는 이유 하나로, 그런 삶을 택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바로 나의 아빠가 그런 사람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60일을 살았다.
아픈데도 병원에 왜 안 가냐는 나의 물음에 아빠는 늘 “병원은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대꾸했다.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아빠는 단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감기에 걸리든, 배탈이 나든, 급체하든 말이다. 아빠는 매번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졌고, 이상하게도 매번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병원에 가지 않는 고집이 이번만큼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발현될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처음에 아빠는 허리가 뻐근하다고 했다. 그리고 왼쪽 다리가 조금 저릿하다고도 했다. 엄마는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자고 설득했지만, 아빠는 아프지 않으니 괜찮다며 버티는 쪽을 택했다.
바로 다음 날, 세상은 예고도 없이 뒤집혔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하루아침에 제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몸이 되어 있었다.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린 것처럼 말이다.
아빠는 무거운 짐을 든 적도 넘어진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서는 자세는커녕 다리를 일으킬 수조차 없다고 했다. 허리와 왼쪽 다리에서는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에,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해졌다. 아빠는 이제 장애인이 된 건가? 앞으로 내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아빠 목욕은 누가 해주지?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내게 감당하기 힘든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아빠의 태도였다. 허리가 마비되어 몸조차 일으키지 못하면서도 아빠는 마치 손가락 끝에 작은 가시가 박힌 듯 태연했다. 원래도 누워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엎드려 글을 썼던 터라, 일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그 침착함이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장실도 기어가는 모습에 엄마와 나는 경악했다. 화장실에서의 아빠를 목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허리가 마비된 사람이 화장실까지 기어가서 볼일을 해결하는 것, 나는 그 상상을 끝까지 마무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식의 구체성은 나를 너무 깊은 곳까지 데려갈 것만 같았다.
엎드린 채 일하고, 엎드린 채 식사하고, 엎드린 채 기어 다니는 아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빠는 정말 괜찮을 걸까?’ ‘근데 나랑 엄마가 이렇게 걱정하는 건 안중에도 없나?’ 걱정과 분노가 동시에 나를 괴롭혔다. 아빠를 바으면 양가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마음속에서 혼란은 더해만 갔다.
한 달이 지나자 우리 집은 딴 세상이 되어버렸다. 엄마와 나는 식탁에서, 아빠와 썰렁이는 바닥에서 식사했다. 아빠의 음식은 죄다 숟가락으로 떠먹기 편한, 한데 섞은 음식이었다. 그 모양새는 썰렁이의 음식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차츰차츰 어색해졌다. 아빠랑 엄마는 점점 말을 나누지 않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벙어리가 되었다. 중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냥 입을 다물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뿐이었다. 가끔 엄마가 아빠를 욕할 때면 엄마 편을 들어주곤 했다. 마치 아빠가 감기에 걸린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애썼다. 나는 아빠로부터도, 내 마음으로부터도 멀어지고 있었다.
한 달이 넘어가자 아빠는 마비를 완전히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름의 생존법도 터득했다고 했다. 날이 더우면 거실 에어컨과 전기장판을 동시에 켜면, 머리는 시원하고 허리에 감각이 조금은 돌아오는 기분이라고 했다. 눕거나 엎드리면 아픈데, 아프지 않은 자세가 딱 하나 있다며 자랑할 때는 정말로 아빠를 때려주고 싶었다. 소화가 안 될 때는 어떤 자세가 좋다는 아빠의 말에 엄마는 아빠를 불같이 노려보더니 이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변명에 가까운 설명을 늘어놓았다. 병원에 가면 당연히 입원하라고 할 텐데, 그럼 매일 연재하는 만화가 펑크 난다는 거였다. 듣고 보면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허리가 마비된 채 바닥을 기는 사람이, 원고 마감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는 정말로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그레고르 잠자는 벌레가 된 몸으로도 여전히 회사에 지각할까 걱정한다.)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두 달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기적이 찾아왔다. 아빠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스로 제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멀쩡한 두 다리로 집안을 걸어 다녔다. 엄마도 나도, 심지어 아빠 자신조차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병원도 약도 없이 그저 시간의 흐름만으로 마비된 허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초능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그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땅바닥을 기어 다니던 나날도, 이제 두 발로 걷는 나날도, 그저 물 흐르듯 일상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를 망설였다. 예고 없이 허리가 마비되고, 이유 없이 기적처럼 마비된 허리가 나은 일화는 현실감이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빠가 기인을 넘어 내가 창조한 초현실적인 인물로 비칠까 봐 걱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일어났던 사건이고, 아빠는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던 사람이었다.
엄마는 아빠와 사소한 일로 다툴 때마다 이날의 일을 아빠의 완고함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인 양 매번 끄집어낸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을 보면 엄마에게도 그때의 기억이 깊은 상처로 남은 모양이다. 얼마 전,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때 일이 궁금해졌다. 내가 조심스레 물어보자 아빠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사실 그때 허리 마비가 언젠가는 회복되리라 확신했다는 것이다. 그 확신의 근거는 할아버지였다.
“허리가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아프게 되면 병원에 가나 안 가나 똑같다. 그러면 언젠가는 저절로 나아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옛날에 했던 말씀이었다. 할아버지 역시 지독한 허리통증을 앓다 못해 허리가 기역 모양으로 굽어버린 분이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말씀이라 더욱 믿음직했나 보다. 그래서 아빠는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그 60일 동안 말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과 연재에 대한 책임감만으로는 당시 아빠의 고집은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 고집은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흔이 넘은 아빠는 지금 치아가 전부 빠져 잇몸만 남았다. 잇몸만으로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되어서 해골처럼 앙상하게 말랐다. 그런데도 틀니를 5년 넘게 거부하고 있다. 두 번의 골수이식까지 버텨냈던 사람이 치과만은 가기 싫다고 고집을 피우는 이유를, 나는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열다섯 살 때 느꼈던 그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물론, 엄마도 미칠 지경이라며 한숨을 쉰다. 그러나 열다섯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때는 현실을 회피하며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아빠의 영역을 때론 답답해하면서도 결국은 받아들인다. 이해하지도 못하겠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어쩌겠는가. 이 사람이 나의 아빠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