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라, 딸의 친구들을 피해서. 아니, 사람을 피해서!

PART Ⅲ. 마음의 지도: 아빠의 세계 속으로

by 연우

혼자 놀기의 달인이었던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왔다. 처음엔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하교했고 다음엔 길거리에서 컵볶이(일회용 종이컵에 담아 팔던 떡볶이)를 사 먹으며 깔깔거렸다. 허물없이 친한 친구들은 집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그 시절, 친구들과 방에 틀어박혀 만화책을 보던 즐거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가는 날은 아빠에게만큼은 비상사태였다. “왔냐?”라고 인사하던 아빠는, 내 뒤에 서 있는 친구들을 발견하는 순간 조각상처럼 굳었다. 마치 침입자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내심 아빠가 친구들에게 살갑게 말을 건네거나, 간식 사 먹으라며 용돈이라도 쥐여주길 바랐다. 하지만 상황은 늘 똑같았다. 내가 친구를 소개하면 아빠는 언제나 쭈뼛거리는 수줍은 아이가 되었다. “같이 수학 공부하려고. 얘가 수학을 잘하거든”하고 덧붙이기라도 하면 아빠는 더 움츠러들었다. 그 순간 쉰을 넘긴 아빠는 영락없는 아홉 살 아이 같았고, 열다섯 살인 나는 서른 살을 훌쩍 넘긴 것만 같았다. 서재의 닫힌 문은 친구들이 돌아가기 전에는 열리지 않았다.


대학교 때 늦게까지 놀다가 지하철이 끊기면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자고 갔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더더욱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친구들이 1박 2일로 집에 있는 날엔 나조차도 아빠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마치 집을 공유하는 하우스메이트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느 날, 친구들이 방에서 기다리고 내가 부엌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챙겨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아빠가 불쑥 나타났다. 그러더니 물병과 간식을 챙겨서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은 마치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겨울잠을 준비하는 동물 같았다. 나는 아빠가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만 그랬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아빠의 수난은 엄마가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를 부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네 번의 자궁 수술 이후, 엄마의 체력은 급격히 나빠졌다. 수술 후유증 때문에 오래 집안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기 30분 전부터 아빠는 서재에 숨어들었다. 혹시라도 방 밖으로 나올 일이 없도록, 간식과 물을 미리 챙기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마치 대피 훈련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아빠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집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방문을 열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떠난 뒤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정찰병처럼 조심스럽게 방문 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한번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아빠 방 쪽으로 걸어가려 하자 엄마가 놀란 얼굴로 “저기는, 저기는 안 해도 돼요!”라고 외치며 막아섰다.


아빠는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외부인을 견디지 못했고 엄마는 그 고집 앞에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그 고집의 여파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통학 대학생이던 나는, 3년 넘게 대청소와 집안일을 도맡아야만 했다. 하기 싫다고 투덜거리면 엄마는 늘 “네 아빠가…”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이를 먹으면 변한다지만, 아빠는 그 예외인 것 같다.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말수가 적고 사람을 피해 방 안에만 머문다. 심지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조차, 사람 없는 시간을 굳이 골라 나간다.


지금도 아빠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하지만 이제 나는 머리로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빠는 그저 그런 사람인 것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까지 끌어안는 것이다. 어쩌면 '이해한다'라는 인식을 초월할 때 진정한 이해의 윤곽선을 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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