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너머의 마음을 읽는 일 ⅰ

PART Ⅲ. 마음의 지도: 아빠의 세계 속으로

by 연우



식탁 위에서 피어오르던 훈훈한 온기는 길지 않았다.


엄마의 “요즘에도 글 써?”라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순간, 내 옆에 앉은 아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다. 공동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라는 말에, 아빠는 팔짱을 끼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게 뭐, 문학 공모전이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공모전이라기보다는 일반인들이 모여 에세이 초고부터 퇴고까지 함께 하는 앤솔로지 프로젝트라 답했다.


“엄마는 네가 글을 쓰는 게 좋아. 그게 뭐든 간에.”


엄마는 뭉클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서는 무조건적인 지지가 느껴졌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따스한 분위기는 아빠의 무심한 한 마디에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곧바로 아빠의 장광설이 이어졌다. 깊은 산 속에 숨어 3년간 칼을 닦아야 비로소 고수가 된다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그놈의 은둔 고수’ 이야기였다. 그건 7, 80년대 무협 만화에서 시작된(이라고 추측하는) 아빠의 인생 철학이었다. 습작 시를 보여주면 아빠는 '아직 멀었다'는 식으로 냉정하게 평했다. 아빠는 비록 만화 스토리 작가였지만 결혼 전 본래 꿈은 시인이었던 만큼, 글에 대한 기준이 남달랐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항상 글쓰기는 무척 어렵고, 진지하고, 중대한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일기도 쓰고, 플래너도 썼다. 가끔은 소설 습작도 하고, 메모장에 시 같지도 않은 시를 끄적이기도 했다. 글이 좋았고, 글을 쓸 때 행복했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고 행복을 느끼는 일을 할 뿐이었다. 작가는 아닐지라도 내 삶의 중심에는 항상 책과 글쓰기가 있었다. 하지만 아빠에게 글쓰기는 오직 ‘최고’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장광설은 취미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득음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걸음마를 이제 뗀 아이에게 육상 선수 훈련법을 설파하는 꼴이었다.


어릴 적부터 이런 훈계를 들을 때면 마음이 무거웠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분야에서조차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좋아했던 글쓰기와 책을 한동안 멀리하기도 했다. 최고가 되지 못할 바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고 싶지 않았다.


아빠의 말들은 브레이크가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나갔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왜 하필 지금, 우리 셋이 오래간만에 둘러앉은 정겨운 식탁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나를 생각하는 부성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머리와 마음이 엇갈리자, 내 안에서 뭔가가 뚝 하고 부러졌다. 딸에게 응원 대신 훈계만을 늘어놓는 아빠가 갑자기 야속했다. 그 야속함은 평소라면 삼켰을 퉁명스러운 말이 되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나는 최고가 되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야. 행복하고 즐거워서 쓰는 거야. 은둔 고수처럼 살 거면 난 최고가 되고 싶지 않아.”


나의 한 마디에 식탁 위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빠는 눈썹을 찌푸리며 맞받아쳤다.


“내가 언제 너한테 최고가 되라고 했냐.”


그때 엄마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얼어붙었던 공기가 조금씩 풀려 원래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대화는 잘 마무리되었고 너무 늦지 않게 가라며 엄마와 아빠는 나를 배웅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아까의 상황을 반추했다. 순간적으로 욱하긴 했었다. 하지만 스무 살 무렵의 나였다면 아빠의 반응에 상처받고 한동안 글쓰기를 멈추었을 것이다. 유년 시절부터 나는 성정이 섬세했고 감수성도 풍부했으며 눈물마저 많았다. 그래서 머릿속을 맴도는 말들을 수없이 곱씹고 되뇌며 밤새워 뒤척였을 것이다.


서른이 넘었을 무렵, 말이 나를 흔들지 못하게 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말을 내 기준으로만 해석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아빠에게는 글을 써 온 인생이 너무나 고된 길이었을 테니, 그렇게 표현할 만도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아빠의 쓴소리에는 내가 더 발전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역시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누구보다 크게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결국, 아빠의 훈계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딸을 걱정하는 한 아버지의 서툰 표현법일 뿐이었다. 말을 내 기준으로만 해석하지 않으면 상처를 다루는 법으로 이어진다. 상처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다루는 법을 온전히 체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마음의 상처에 대한 주도권은 결국 내게 달린 셈이다.


그날 밤 나는, 아빠의 말은 오롯이 ‘아빠의 세계’라는 폴더에 넣어두고, 내가 느꼈을 법한 상처는 미련 없이 ‘휴지통’에 넣어 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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