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Ⅲ. 마음의 지도: 아빠의 세계 속으로
카페에서 수필 초고를 쓰던 와중이었다. 헤드폰 음악 사이로 울리는 벨 소리에 깜짝 놀라 보니, 액정에는 ‘아빠’라고 쓰여 있었다.
“어제는 잘 들어갔냐.”
“피곤해서 바로 잤어.”
아빠는 헛기침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제 너희 엄마한테 엄청나게 혼났다.”
저 한마디만으로도 왜인지 알 것만 같았다. 어제 아빠가 한 말들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짐짓 모른 척하며 물었다.
“왜 혼났는데?”
“너를 응원은 못 해줄망정, 찬물이나 끼얹는다고 혼났지. 뭐.”
아빠는 투덜거렸다.
“에이. 엄마는 뭘 그거 가지고 혼내냐. 난 벌써 잊어버렸는데 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빠가 그러려던 게 아니고…… 네가 크게 되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려던 거야. 허나, 내 뜻과 달리 네가 서운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서운했다면 아빠가 미안하다.”
아빠의 진심이 담긴 말에 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알아, 다 알지. 아빠야말로 너무 신경 쓰지 마.”
나의 넉살에 아빠는 겸연쩍어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빠는 다시 물었다.
“네가 쓰고 있다던 글, 주제가 뭐라고?
“신체를 소재로 하는 글이야. 술 마시고 넘어져서 인대 끊어진 거 기억나?”
“너 인대도 끊어졌었냐?”
“왜. 대학교 때. 한 달 동안 깁스하고 다녔잖아.”
“……그랬었나.”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딸이 크게 다쳤던 것도 기억 못 하지?’라며 가슴이 먹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조차도 아빠가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지 속속들이 기억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상처나 고통은 아무리 사소해도 기억에 오래 남잖아. 인대가 끊어지고 이가 깨졌던 경험, 그걸 써 보려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통증, 하면 역시 아빠지.”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허리 마비라는 아찔한 사건부터―엉덩이에 난 종기, 입천장에 핀 곰팡이, 전부 다 빠져버린 손톱의 감각까지―골수이형성증후군 진단을 받고 십 년 넘게 숙주 반응에 시달리는 고통을 빠짐없이 늘어놓았다. 아빠는 마치 통증을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자랑스러운 업적처럼 여기는 듯했다.
“…그러니 아빠야말로 완전 통증의 백과사전이지.”
나는 자꾸만 맞장구를 쳤다. 아빠의 고통에 비하면 나의 통증은 새 발의 피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통증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한 사람처럼 득의양양했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어린아이가 자신의 상처를 훈장처럼 뽐내는 것처럼 비춰졌다.
그제의 아빠는 ‘최고’만을 설파하던 고집쟁이 같은 노인이었다면 오늘의 아빠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노인이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려왔다. 당신의 세계에서는 그만큼의 고통이 곧 삶의 흔적이자, 살아냈다는 증명이었을 터였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자 생각에 잠겼다. ‘서운했다면 미안하다’라는 아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오히려 미안한 건 나였다.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이해했더라면, 아빠와 나 사이에 존재했던 넓고도 깊은 이해의 계곡은 좀 더 일찍 메워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며왔다. 하지만 글쓰기처럼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긴 시간과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아빠를 이해하는 과정은, 아빠의 숨겨진 사랑과 나의 예민한 감수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외롭고 기나긴 여정이었다.
외롭고 긴 여정 끝에 다다라서야 나는 비로소, 아빠의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해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