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러너 Lode Runner

PART Ⅴ. 시간의 흔적: 사라짐과 남겨짐 사이에서

by 연우

비극은 일상 사이를 비집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재작년 2월, 외삼촌은 화장실 변기에 앉은 자세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돌아가셨다. 원인은 심장 마비였다. 오십 구세의 나이였다. 외삼촌의 장례 일로부터 1년 6개월 만에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시다가 의식을 잃었다. 사인은 흉부 대동맥의 급성 파열로 인한 쇼크사였다. 할머니는 치매도 없었고 노인성 질환을 앓지도 않으셨다. 걸음이 조금 불편하여 워커에 의지해 걸어 다니실 뿐이었다. 조문객들은 그래도 호상이라며 위로했지만, 이모들도, 엄마도, 나도, 그 누구도 할머니에게 찾아온 죽음의 형태를 수긍할 수 없었다. 죽음이란 그랬다.


가까운 사람을 두 번이나 떠나보내고 나서부터 내 마음에는 그늘이 졌다. 사람이 죽는 건 당연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도로 위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 전광판을 눈여겨보았다. 어디선가 자꾸 죽음의 냄새가 풍겨왔다. 한 번 머릿속에 뿌리를 내린 나쁜 상상은 끝없이 가지를 뻗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골수 이형성 증후군이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은 아빠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은 떠나지 않고 오래된 친구처럼 곁에 머물렀다. 풍부한 상상력은 때로 나를 옥죄었다. 아빠의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투명해졌다. 불안함과 두려움은 현재마저 앗아갔다. 말하고, 웃고, 숨 쉬는 아빠를 볼 때마다 이미 잃어버린 사람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곤 했다. 아빠의 존재는 분명했는데도 내게는 사라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빠는 끊임없이 과거의 존재가 되어갔다. 언젠가부터 나는 살아있는 아빠를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그리워했다. 그래서 나는 유년 시절, 아빠가 영원히 죽지 않던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내가 달님반 명찰을 달고 노란 모자를 썼던 시절, 아빠는 아이 학습용 컴퓨터로 ‘로드러너’ 게임을 하곤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게임에 집중하던 아빠는 때로 어린 나보다도 더 아이 같았다. 화면 속에서 로드 러너는 멈추지 않고 구멍을 파내며 금괴를 먹었다. 죽을 때마다 리스타트 버튼 하나로 부활했다. 스테이지는 그렇게 계속됐다. 나는 그 게임 화면을 옆에서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그곳에서 아빠는 영원히 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썼다. 로드러너 게임 속에서 영원히 달리는 아빠를. 내 기억 속에서 절지 죽지 않았던 아빠를. 올해 일흔넷의 아빠는 언제 내 곁을 떠날지 알 수 없다. 이 글을 읽을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드러너 게임에서 아빠가 무한히 부활했듯, 이제 이 글 속에서 아빠는 영원히 달리고 있다.




유튜브에서 좋아요를 누르던

손가락 아빠가

복구 불가능한 버그로 사라졌다


노란 모자를 쓰고 달님반 명찰을 달고

넓은 무릎 위에서 들여다보던 모니터 속

디지털 아빠는


피하고 오르내리고 훔치고

멈추지 않는 움직임으로

픽셀의 미로를 누비며


살아남았다

늘 다른 세계에서

늘 다른 방식으로


고아가 된 명령어와

컴파일되지 않는 기도에도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길을 만드는


아빠는 이제

영원으로 남아

황금 바위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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