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Ⅱ. 기억의 앨범: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
두 명의 동생이 생길 뻔했지만 하나는 엄마가 난간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또 하나는 자연 유산으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태어나지 못했지만 어쩐지 늘 내 곁 어딘가에 있는 것 같던 존재들. 어렸던 나는 그 빈자리를 자주 더듬었다.
나는 언니와 함께 인형 놀이를 하는 수진이를 부러워했고, 과자나 젤리를 사주는 오빠를 가진 유리도 부러워했다. 한 학년 어린 동생을 챙긴다며 데리러 가는 동훈이도 어딘가 멋있고 어른스러워 보였다. 나는 챙겨줘야 할 대상도, 챙김을 받을 대상도 없었다. 언니나 동생은 보름달에도, 산타클로스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아무리 소원을 빌어도 가질 수 없는 존재였다.
아홉 살, 세상은 심심하고 지루해졌다. 그리고 외로운 곳이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동화책도 읽어주고 인형 놀이도 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였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외출하고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 돌아오는 저녁까지의 시간은 늘어지는 엿가락 같았다.
아빠는 매일 집에 있었지만, 내게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나와 놀아주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빠는 언제나 서재에 박혀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었다. 누워 있으면 생각하는 것이고, 엎드려 있으면 글을 쓰는 거라 했다. 하지만 도대체 무얼 생각하고 무얼 쓰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세계에는 투명한 장막이 있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강아지를 사 달라고 조른 건 이때쯤이었다. 강아지만 있다면 지루하지도,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홉 살 때부터라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도 함께 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태어난 것은 언젠가 죽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처음에 엄마는 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몇 달간 끈질기게 졸랐더니, 엄마는 결국 항복했다. 두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생명체를 처음 마주한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수진이도, 유리도, 동훈이도 이제는 부럽지 않았다. 아빠도, 엄마도 필요 없었다. 보드라운 털, 콩자반처럼 반질거리는 작은 코, 반짝거리는 커다란 눈망울을 보자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벅차올랐다.
이름 짓기라는 새로운 사명이 눈앞에 놓였지만 내 부족한 창의력으로는 멍멍이나 해피가 한계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털 뭉치와 하루를 보낸 다음 날, 아빠는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그 이름은 썰렁이였다. '썰렁하다'는 사전적으로는 ‘서늘한 기운이 있어 조금 추운 듯하다’는 뜻이었지만, 90년대 후반, ‘썰렁하다’는 지금의 ‘갑분싸’나 ‘킹받는다’같은 유행어였다.
왜 썰렁이냐고 물어도 아빠는 ‘썰렁하니까 썰렁이’라고만 대답했다. “그게 다야? 진짜?”라고 되물어도 아빠는 “또 뭐가 있어야 하는데?”라고 오히려 받아쳤다.
이름대로 간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썰렁이는 정말 썰렁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양과 달리 성격은 시크했다.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달려오는 법이 없었다. 큰 목소리로도, 작은 목소리로도, 애원조로도, 열렬하게도 불러봤다.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언제나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리는 게 전부였다. 가족 모두에게 그랬다.
결국, 먼저 다가가서 아양 떠는 건 주인인 내 몫이었다. 손짓, 발짓으로 관심을 끄는 것은 썰렁이가 아니라 나였다. 간식으로 유혹하거나 장난감을 흔들어 대야만 썰렁이는 나를 상대해 주었다.
나는 실망했다. 강아지라면 먼저 다가와서 아양도 떨 텐데. 이웃집 강아지는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오면서 혓바닥으로 핥고 애교도 부리던데 말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름대로 정말 썰렁해져 버렸잖아.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시간이 흐를수록 썰렁이랑 아빠는 묘하게 닮아 갔다. 이름을 불러도 한 번에 오지 않는 썰렁이처럼, 아빠도 밥 먹자고 불러도 “알겠어”라고 대답해 놓고 좀처럼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와 엄마는 집 밖으로 나가는 존재였고, 아빠와 썰렁이는 온종일 서재에만 있는 존재였다. 어느새 서재는 아빠와 썰렁이의 서식처가 되어 있었다.
다행인 건 이전보다 덜 외로웠다는 점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나는 언제나 썰렁이와 함께였다. 동네 놀이터에서 내가 그네를 타면 썰렁이는 모래 속에 코를 박고서 보물이라도 찾는 것처럼 킁킁댔다. 운동장에서 함께 달리기도 했고 모르는 산책길을 걷기도 했다. 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비록 주인은 잘 따르지 않는 썰렁이었지만, 내가 배를 만지면 썰렁이는 얌전히 누워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고요하고도 무방비한 눈빛. 부드러운 털 사이로 느껴지는 온기. 통통한 복숭아 같던 보드라운 배를 쓰다듬으며 나는 외로운 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이제는 만질 수 없지만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살며시 올라오고, 살며시 내려가던 배의 울림을. 내 기억에 남은 그 감각만큼은 썰렁하지 않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은 기억에 남아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나를 위로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