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Ⅱ. 기억의 앨범: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
10살, 나는 혼자 놀기의 달인이었다. 원래부터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이라 왁자한 분위기가 편치 않았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일도 어쩐지 벅차게 느껴졌다. 그래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편했다. 하지만 편하다는 것은 지루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루함을 견디기 위한 놀이법은 점점 발전해 나갔다.
썰렁이에게 간식을 멀찍이 던져두고 방문이나 옷장에 몰래 숨는, 일방적인 숨바꼭질을 즐기기도 했고, 알록달록 종류별로 정리해 둔 레고를 일부러 한꺼번에 쏟아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내 방 안에는 레고, 탱탱볼, 미미와 주주 인형, 롤러스케이트, 도미노, 닌텐도까지 보물 같은 장난감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 안에서 헤엄치듯 놀았다.
하지만 으뜸가는 보물창고는 단연코 아빠의 서재였다. 그곳은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처럼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부터, 챔프나 점프 같은 만화 잡지, 시집과 소설책까지 온갖 책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나는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기 때문이었다. 미하일 엔데의 『모모』는 손때가 묻을 만큼 여러 번이나 읽었다. 읽을 때마다 작은 서재 안에서 거대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곤 했다.
그날도 아빠는 거실에서 화면 속으로 거의 빨려 들어가다시피 닌텐도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아빠를 뒤로하고 습관처럼 서재로 향했다. 그런데 책상 위에는 전에 본 적 없는 파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A4 크기 정도 되는, 반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늘 생긴 셈이었다. 호기심이 먼저 앞서 무작정 파일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단정한 필체로 빼곡하게 적힌 글들이 들어 있었다. 종이마다 날짜도 하나하나 적혀 있었다. 얼핏 봐도 일기였다.
‘어제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혀가 빨개졌다. 맛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네모 칸에 짧게 쓴 문장들. 내가 아는 일기란 이런 것이었다. 그림은 없지만 아빠도 일기를 쓴다는 사실에 나는 대단한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신이 났다. 다른 사람의 일기를 몰래 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호기심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괜히 죄짓는 기분이 들었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거실에서는 들려오는 뿅뿅거리는 게임 효과음이 들려오는 한 나는 안전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점점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나갔다. 빼곡하게 쓰인 내용이 다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처럼 계속 넘기기만 했다.
그러다 한 페이지에서 손끝이 멈췄고 한 문장에서 얼어붙은 것처럼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일어나보니 머리가 사라진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알아서는 안 될 비밀에 다가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섬뜩한 문장이었는데도 이상하게도 시선은 다음 줄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목만 남은 채로 나는 급히 거실로 나갔다. 거실 구석에는 딸아이가 가지고 놀던 노란 탱탱볼이 있었다. 나는 탱탱볼에 얼굴을 대충 그리고 본드로 목에 붙여주었다.
아빠의 머리가 없고 그 자리에 탱탱볼이 붙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자 등줄기가 찌릿했다. 그런 모습은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다. 그 순간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절대 보면 안 되는 걸 봐버린 것만 같았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소리가 귀까지 울려 퍼졌다. 나는 플라스틱 파일을 급하게 덮고, 도망치듯이 서재를 빠져나왔다. 몸만 남은 아빠와 노란 탱탱볼 얼굴의 오싹한 조합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깨어 있는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아빠는 어딘가 닿을 수 없이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친구들의 아빠들도 이렇게 이상한 꿈을 꿀까?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아빠는 역시, 다른 사람들과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거실 구석에서 굴러다니는 노란 탱탱볼을 볼 때마다 아빠의 꿈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런 악몽을 자주 꾸면 아무리 아빠라도 얼마나 무서울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마음이 일었다. 탱탱볼에 검은 유성펜으로 예쁘게 눈, 코, 입을 그려 넣어 주고 싶었다. 눈, 코, 입을 어떻게 그려야 아빠답게 보일까? 나는 상상 속에서 탱탱볼의 얼굴을 매번 다르게 그려내곤 했다. 하지만 상상의 결말은 언제나 똑같았다. 미소를 짓는 탱탱볼을 건네주며 “아빠, 이제 무서워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빠는 그런 무시무시한 꿈을 더는 꾸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계속 상상하다 보니, 아빠의 악몽이 떠올라도 더는 무섭지 않았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빠와 대화는 점점 줄었지만, 그 악몽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빠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어딘가 기울어진 세계에 존재하는 것만 같던 아빠도 다른 사람들처럼 무서운 꿈을 꾼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빠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깨달음이 심리적 거리를 좁혀주는 것만 같았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가끔 소파에 누워 잠든 아빠를 바라본다. 궁금하다. 아빠는 지금도 그런 기이한 악몽을 꿀까. 나는 묻지 않는다. 대신 가끔 탱탱볼에 아빠다운 표정을 상상으로 그려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