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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16.2025

by 한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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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극성이었던, 두 마리가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러브버그’.

이름이 참 아름다운 ‘사랑벌레’는 둘이 서로 붙은 모양이 마치 하트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얼핏 굉장히 낭만적인 이 이름과는 다른 그들의 외관은, 하트모양인지는 잘 모르겠고, 날면서도 계속 교미 중인 건지 의심하게 되는 모습이다. 그것보다는 한국 학명인 ‘붉은 등우단털파리’가 러브버그보다 훨씬 납득이 가는 이름이다.


그들이 교미 후에도 ‘하트’의 형태로 붙어 다니는 진짜 이유는 유전자 균형에 있다고 한다.

암컷은 교미를 끝낸 수컷이 이동해 다른 암컷과 교미하여 유전의 다양성이 무시되고 균형을 잃게 될 것에 대비하여, 그들의 유전에 새겨진 대로, 교미 후에도 붙어있다가 생을 마감한다.

이는 사람 커플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더더군다나 아이를 낳기 위해 법 테두리 안에 들어가게 되면, 러브버그처럼 붙어 다니진 않지만 법적으로 만든 ‘사랑’ 아래 붙어있게 되니, 아주 더 비슷해진다.

우리도 유전에 새겨 있는 걸까?


환경의 변화로 떠밀리듯 사람들 앞에 대거 나타난 이들은 인간종을 포함한 모두에게 낯설 듯, 그 자신도 모든 것이 몹시 낯설다. 나타난 지 만 삼 년이 지나고 나서야, 천적이 생기기 시작했고, 아마 그들의 유전에 이제 인간이 자신을 죽이는 존재로 각인되기 시작하면 사람에게 달려드는 습성도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적응하고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모든 것이. 자연인 모든 것이.

그러니, 좀 징그럽고, 달라붙는 것이 불쾌하더라도. 그들과 함께, 그냥 어느 정도는 양보하고 같이 사는 것이다. 그리고 먹이사슬에 가장 아래에 있으면서도 주춧돌 역할을 하는 ‘벌레’들이 살아야 궁극적으로 우리도 산다.


벌레뿐 아니다.

우리가 ‘혐오’라는 이름표를 붙여놓은 모든 것들.

그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거기에 있음으로 다른 모든 것들이 함께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법은 당연히 없다.


혐오는 슬픔과 분노와는 완전하게 다른 감정이다.

아주 잘 들여다봐야 하는 사실은 조작되었을 수 있는 감정.


나 자신이 누구로부터 대상화될 수 없듯 함부로 그럴 수 있는 것은 없다.


잘 들여다보면,

그들도...

...

뭐. 여전히 징그럽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건 다분히 우리가 인간 종이기 때문이지

혐오할 대상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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