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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24.2025

by 한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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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날짜도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서 살면 어떨까?


새들이 지저귀면 새벽동이 트겠구나 하며 이불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있다가.

감은 눈이 주황색이 되면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키고 이불을 착, 펼치고 창문을 활짝 연다.

신선한 잎채소와 토마토, 계란을 삶아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차 한잔을 마시다 보면 살짝, 공기가 더워졌음을 느낀다. 창문 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하늘 높이 떠있다.
아직 배가 많이 고프진 않지만 천천히 점심 먹거리를 준비해 본다. 두부와 버섯, 애호박을 다듬고 보글보글 찌개를 끓인다. 팬에 오일을 둘러 간단한 반찬도 만든다.

점심을 맛있게 비우고, 잠시 고양이와 침대에서 뒹굴뒹굴.
잠이 올 것 같으니 일어나 산책을 나간다. 햇볕이 좋다. 얼마 전까지 바람이 습하게만 느껴졌는데, 서늘해진 것을 느끼며, ‘가을이 오는가 보다.’ 입안에서 작게 말한다.
조금 걸으니 얼굴이 뜨겁다. 나무의 잎들은 조금씩 물들기 시작했지만, 아직 초록인 것을 보아 며칠은 더 반팔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정신이 맑아졌다.
집으로 돌아와 작업을 한다.
중간에 커피도 끓여마시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몇 번했을까.
창밖이 붉게 물들었다.
배도 꽤 고파졌다.
부엌으로 몸을 옮겨, 점심에 끓여둔 찌개를 데우고 남은 반찬을 꺼내 저녁으로 먹는다.
설거지까지 모두 끝내니 해는 이미 지고 어둑어둑하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어내고 가장 좋아하는 긴팔 단추 잠옷을 입는다.
열려있는 창문을 조금 닫아야 할 정도의 찬바람이 들어오고,

달은 하늘 높이 떴다.

불을 끄고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가 목까지 덮는다.
내일은 해가 중천에 뜰 때쯤 약속이 있다. 이번엔 내가 그쪽 동네로 가서 함께 움직일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떤 새들이 나를 깨워줄까. 고양이 배 밑에 손을 묻고 스르륵 잠에 든다.

상상에만 존재하는, 시간과 날짜가 없는 삶은 여유롭게 느껴진다. 얼마나 나이 들었나, 생각하지 않게 되고, 모든 것이 자연과 함께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그 덕분에 해야 할 일도 물 흐르듯 이어진다.
9월 끝자락. 몇 장 남지 않은 달력을 뒤적이다 불안해져서 상상으로 도망쳐봤다. 아무리 상상해도 연말은 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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