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난다!
내 단기 수면이 새벽운동에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새벽 5시면 눈이 떠진다. 이것도 길게 잘 잔 편이다. 5시에 깨면 감사할 정도다. 덕분에 잡생각, 스트레칭, 기도 하다가 나가도 여섯 시 반에 여유 있게 나갈 수 있다.
첫눈온날 뛰면서 겪었던 일이 좀 대단하긴 했다. 그런 첫눈일 줄이야.
고가도로 밑에만 비교적 눈이 덜 쌓여서 거기만 달릴 수 있었는데 고가 위에서 버스 지나가면서 살얼음들이 다 다리아래로 촥촥 떨어졌다. 우비를 입고 있기는 했지만 아, 진흙탕 물을 그렇게 무작위로 뒤집어쓸 줄이야. 한두 번 맞으니까 이미 망했다, 빨래하면 되지 그러고는 무시하기 시작했다. 30분쯤 지나자 신발 다 젖고 길은 다 얼어가서 할 수 없이 한강 근처는 가지도 못하고 제한된 코스만 왔다 갔다 하면서 8킬로를 뛰었었다.
그날 너무 호되게 고생했었는지 오늘은 비교적 평화롭다 못해 황송하기까지 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새벽 체조하던 어르신들이 스무 명 정도에서 세명으로 줄어있었다. 이런 날은 어르신들은 고혈압일 경우 혈관 수축해서 위험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추운 날이긴 했는데,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고, 귀도리에 모자에 얼굴까지 다 가리고 나가서 춥지 않았다. 방수 러닝화를 신고 나갔는데 얼음이 다 녹아 있었다. 신난다! 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 모두 날씨가 너무 드라마틱해서 상대적으로 평화롭다 감사하다 하면서 30분 조금 뛰고 힘 빠져서 30분 살살 걸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혹시 눈이 올까 싶어 우비를 입고 나갔었는데 벗다가 깜짝 놀랐다. 땀 진짜 안 흘리는 사람이라 처음 있는 상황이었는데 옷이 다 젖어있었다.
다 씻고 체중계 위에 올라갔다가 18년 쓴 거니까 고장 날 때가 된 것인가 잠시 생각했다.
먹는 양이 늘고 있어서 당연히 체중이 올라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루 만에 700그람씩 빠지고 있다니..
겨울 새벽 운동이 고되긴 한 것 같다.
아니면 너무 잘 못 자다 인간답게 자서 살이 빠지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주만 세 번 7시간을 잤다. 지난 8년간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패턴이 잡히면 안정제를 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정신과 선생님이랑 캐미가 영 안 맞는다. 한 달에 한번 보는 것도 별로 안 당긴다.
새벽 하늘색이 남색에서 보라색, 진한 주홍색에서 연하게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보았다.
겨울 아침 하늘은 이런 거구나.
이러나저러나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것 같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