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코 중얼거리는 말들에도 힘이 있을까?
잠에 들기 전에 불을 꺼두고 침대에 누워서 마음을 다스리는 말을 하고 싶은데 문장으로 떠오르지는 않을 때,
그냥 괜찮은 단어를 중얼거리기도 한다. 놀랍게도 천천히 내뱉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진다.
며칠 전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빠가 보고 싶다'라는 말이 나왔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2년 전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았었는데 그 말 한마디로 눈물이 났다. 가끔씩 내가 운다면 그건 거의 다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이 나온 날들일 것이다.
편집자님께서 그림책 원고 수정사항을 이야기하면서 아이가 나무를 찾아가는 이유를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아빠가 보고 싶어서'로 수정했다. 요즘 정말 아빠 생각이 많이 나서인지, 원고는 하루 만에 완전히 다른 글이 되어버렸고 어제 월요일에 드디어 1차 퇴고를 하고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밤 9시에 내 원고를 붙들고 있는 이사님과 통화를 했다. 그리고 10시 반에 한번 더 통화를 하고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아빠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때 더 외롭다고 하셨어.
그래서 나무 앞에서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나무에게 아빠가 얼마나 많이 보고 싶은지,
이런 이야기를 다 꺼내 놓을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나에게 나무가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도 숨기지 않고 다 이야기했어.”
나무는 정말 나무가 아니다.
숲은 정말 숲이 아니고
비도 정말 비가 아니다.
13년 전에는 왜 이렇게 비가 오는 버려진 공장을 그리고 싶었는지 나 스스로 잘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저 거기에서 비를 흠뻑 맞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그리고 싶었다. 그 후로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던 편집자들은 아이들이 둘이서만 이렇게 위험한 장소로 놀러 가는 게 어린이 그림책 시장에서 부모와 아이들에게 잘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배경의 수정을 대부분 요청했었다. 결국 수정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이었기에 중간에 멈춰버렸고, 나는 나도 왜 꼭 금지된 폐허로 아이들이 놀러 가야 하는지 문장으로 설명해내지 못하고 스케치북은 책꽂이 맨 위칸으로 올라가 버렸다.
다행인 것은 13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무의식이 왜 비 오는 날, 아이들을 버려진 맥주공장으로 보내야 하는지, 진흙으로 아이들의 무릎이 지저분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이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존중과 배려의 과정을 통해 길벗어린이 출판사에서 나오게 되어서 기쁘다. 작년에 출판을 제의한 3개의 타출판사에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남긴다.
이 책이 4월에 나오다니.
13년이나 걸려서 나오다니. 정말 오래도 걸렸다.
이렇게 여러 출판사에서 제의를 받고 잘 성사되지 않은 책도 이책이 처음이다.
힘들었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