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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그런 대추를 먹었었나.

by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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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다 스무 살 근처에 찍은 사진.




요즘 아빠 생각을 많이 해서 인지 꿈속에 아빠가 자주 찾아온다. 지난밤에는 냄비에 알 수 없는 요리를 아빠와 나누어 먹었다. 대추가 선드라이드 토마토 같은 것에 절여져 있었는데 평소에 내가 먹는 메뉴가 아니어서 이건 도대체 뭐지 이러면서 아빠랑 나누어 먹었다. 대추 몇 알이 손이 안 가서 남아 있었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대추가 아니라 방금 나무에서 딴것 같이 싱싱한 대추가 기름이 발려져서 반빡 거렸다. 아빠는 하얗고 깨끗한 옷을 입고 계셨는데 그만 토마토소스가 배에 튀어서 우리는 둘 다 놀랐다. 남은 대추 몇 개를 아빠의 그릇에 덜어주었나.. 그리고 꿈에서 깼다.

나는 평소에 대추를 좋아하지도 실제로 볼일도 별로 없다. 아이들 삼계탕 끓여줄 때 보았던 쪼골쪼골 한 진한 밤색의 그 대추가 아니었다. 언제 내가 그런 통통한 대추를 보았던가. 먹었던 적은 있었나. 맛을 확실히 아는데..




일곱 살 때쯤이었을 것 같다. 엄마가 또 집을 나갔다. 아빠는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동네를 돌아다니며 엄마를 찾아다녔었는데 그때 엄청 큰 대추나무밑에 과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몇 개씩 줍는 것을 보고 아빠가 주어서 옷에 슥슥 닦아서 나에게 먹어보라고 하셨었다. 크기가 대추치고 꽤 컸다. 그 이후로도 그렇게 큰 대추는 본 적이 없었다. 아삭거리는 사과 같은데 조금 더 진한 단맛이 났다. 그리고 단단한 씨가 사과보다 더 통통하게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대추의 색은 밝은 연두색에서 진한 밤색이 섞여 있었다. 엄마를 며칠을 찾아 돌아다니느라 아빠와 나는 조금 지친 상태였을텐데, 그날 만났던 대추나무는 이상하리만치 크고 열매가 달았다. 그게 내가 그렇게 크고 싱싱한 생대추를 먹어본 첫 기억이자 아마도 마지막 기억일 것이다. 그 뒤로는 그런 대추를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대추나무와 아빠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꿈속에서 아빠에게 덜어준 대추는 그때의 대추와 닮아있었다.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것은 이렇게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분명히 무언가가 바뀌고 윤색되는 것이니까 진실은 아무도 모르겠지. 그래도 일곱 살 때 나에게 아빠는 술만 마시면 이상하게 변했지만, 평소에는 분명히 아주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런 크고 작은 기억들이 아직도 나에게는 생생하게 남아있다. 비 오는 날, 아빠가 우산이 없다고 내 머리에 덮어주던 큰 비닐, 아빠가 끌던 수레뒤에 나를 그렇게 태우고 빗속에 모자하나 쓰고 걸어가던 아빠의 뒷모습, 키가 작아서 바위 위로 못 올라가면 아빠가 근육이 툭툭 튀어나온 종아리를 자랑하면서 발을 걸쳐서 바위에 계단을 만들어 주셨던 모습. 그 시절 아빠가 나를 바라보던 표정들이 흐린 비닐봉지 사이에서도 쨍쨍 내리쬐던 햇살 사이에서도 기억이 난다. 아빠는 야외에서 일을 많이 하셔서 그때부터 하얗던 얼굴이 많이 익다가 결국 까맣게 변해져 있었다. 까만 얼굴 사이로 하얗고 고른 치아가 보이도록 나를 보고 매일 싱글벙글하셨었다. 그게 어린 마음의 나에게도 아빠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애정이 다 느껴졌었다. 그 표정을 내가 이렇게 오래 기억할 줄을 그때는 몰랐었다.


얼마 전 버스에서 아빠와 뒷모습이 너무 닮은 어르신이 아주 천천히 걸어서 버스를 조심조심 내리셨다.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요즘 아빠가 많이 그립긴 한가보다. 자꾸 꿈에 나오신다. 오래전 쓰다가 십 년 정도 방치해 둔 블로그 속에 글들 정리하다가 엄마아빠 젊은 시절의 사진을 찾았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다 못해 앳된 두 분의 모습을 본다.


아빠는 왜 그렇게 빨리 가신 걸까. 돌아가신 지 3년째인데 이제야 아빠가 가신 게 실감이 되는 것인지.

내가 유학 갔을 때 아빠가 전화로 내가 보고 싶다고 우신적이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도 울었었다.

나는 전화도 못하는데.

아빠. 나도 지금 많이 아빠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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