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말을 돌보는 것만으로? 믿기 힘들었다. 글자일 뿐이다. 정신병이 있는 소녀가 그저 말을 돌보는 것만으로 그렇게 빠르게 회복이 되다니. 책을 읽다가 믿기 힘들었다. 그 과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트에 진열된 새들은 대부분 유리창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모두 먹이를 먹거나 둥지 속에 숨어있었다. 한 마리가 열심히 맹렬하다 싶을 정도로 해바라기씨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노랗고 이마는 살구색으로 불그스름한, 예쁜 새였지만 코딱지가 콧구멍을 뒤덮고 있었다. 잠시 모이 먹는 모습을 보다가 옆으로 발을 옮기려는데, 갑자가 새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내가 가는 쪽으로 새장 끝까지 따라왔다. 우연인 걸까? 나는 반대쪽으로 다시 발을 옮겼다. 새가 다시 나와 같은 방향으로 반대쪽으로 끝까지 따라왔다.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새가 확실하게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우연이 아니었다. 새는 육만원 이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동물을 키우게 됐다. 마트의 점원은 코딱지를 걱정하는 나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마트에 있는 다른 새들도 모두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집에 와서 보니 정도가 심했고 콧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새는 움직이지도 않고 제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하루를 조용히 보냈다. 밤이 되어서야 새를 치료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특수 동물 병원을 찾을 수 있었고, 다음날 나는 새가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과는 심각한 폐렴이었다. 약값과 진료비가 대략 이십만 원 정도 나왔다. 새값보다 몇 배가 비쌌다. 새를 데려온 책임감이 숫자와 함께 밀려왔다. 새의 약봉투는 꽤 길었다. 생각지도 못한 정신없는 일상의 시작이었다. 아기 모란 앵무는 입질이 무척 심했다. 만지려고 손을 근처에만 가져가도 피가 나도록 물어댔다. 약을 먹이기 위해 수건으로 얼굴만 내어놓은 새에게 작은 플라스틱 주사기로 약물을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몇 번을 먹였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자 콧물이 조금씩 줄어가는게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새를 살펴보고 새장에 붙여둔 온도계가 삼십 도에 잘 맞춰져 있는지 확인부터 했다. 조금 나아졌구나. 드디어 안도를 하고 새장앞에 털썩 주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내가 지난 일주일간, 이십 오년 넘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반복하던 아픈 자책을 멈추고 있었다는 것을. 표범이 일주일 동안 어떤 일인지 나를 잊고 찾아오지 않은 것이다. 아픈 새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책 속의 정신병원의 말을 돌보던 아픈 소녀가 생각났다.
노란 작은 새가 사랑스러워서. 새가 아프고 약해서. 새에게 내가 필요한 것 같아서.
나는 일주일간 새를 열심히 돌보았고, 수년간 방법을 찾지 못해 어떻게 조절할 수 없었던 괴상한 악습관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무런 애도 쓰지 않았는데. 이럴 수가.
작고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것. 내가 필요한 살아있는 것이 나의 아침을 더이상 코통스럽지 않게 지켜주었다. 결혼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안는 다면, 그리고 그 아이를 돌본다면 나는 예전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내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표범과 맞설 수 있을거라고. 그런 묘한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게 사실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침마다 하늘이가 잠에서 깨자마자 나를 찾아온다. 내 이불 속으로 들어와서 나를 꼭 껴안고 중얼거린다. ‘엄마 안고 있을 때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있을까. 아이를 껴안을 때마다 매번 놀란다.
새는 나이가 들었고, 예전만큼 내가 자주 놀아주지 못해서 목 주변과 날개의 깃털을 뽑기 시작했다. 피가 날 정도로 날개의 털을 뽑아대는 새를 보면 미안하다. 상처는 간지럽고 따갑고 주변으로 통증이 번져간다. 새는 미련하게 그 주변을 추가로 더 쪼기 시작한다. 작은 상처가 점점 크게 번져간다. 하늘이가 새를 자주 꺼내서 예쁘다 예쁘다 말하고 놀아주라고 알려주었다. 동물전문 유투버가 알려주었다고 했다. 새장 문을 연다. 살구가 기다렸다는 듯이,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조심 조심 내 손가락으로 올라온다. 살구의 까만 눈을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만 아는 바보같은 가사의 노래를 중얼 거린다.
그래픽 노블 [내 어깨 위 두 친구]를 만들면서, 내가 꿈속에서 만난 표범을 주인공 토끼의 어깨 위에 묵직하게 얹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 어깨에는 작은 노랑 새를 얹어두었다. 그 두 개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 내가 사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나온 지 몇 년이 지났는데, 가끔 그 장면을 그려 넣었어야 했다며 후회되는 빠진 컷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 그림을 추가하고 싶다. 나는 처음에는 교만하게 폐렴에 걸린 작은 노랑 새를 내가 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를 키운 지 십일 년 차가 된 지금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입질이 매서운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를 잠시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하게, 아침에 잠이 덜 깬 어린아이를 안아주듯 그렇게 다정하게 품어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알려주었다. 나에게 있어, 세상에 글자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던 회복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진짜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품다
동사 품속에 넣거나 가슴에 대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