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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려야 그리운, 평범한 하루

공기는 항상 우리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모르지

by 박승연

아침에 눈을 뜨면 기지개를 켭니다. 출근 시간이 여유롭기에 부릴 수 있는 사치겠지요.

밤새 나를 받쳐내느라 뻣뻣해진 근육과 뼈에게 숨 돌릴 틈을 줍니다. 나에게 숨 돌릴 틈이 필요한 만큼 다른 것들에게도 그런 틈이 필요한 듯합니다.


집 앞의 커피숍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삽니다. 나중에 제대로 된 집을 구하면 반드시 커피머신을 구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죠. 텀블러를 사는 건 환경오염 방지에 그리 도움이 안 된다고 말을 하는 나이기에 꾸역꾸역 운동 물통에 아아를 담아냅니다.


뜨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나 물통에 뜨거운 것을 담는 것은 왜인지 불안합니다. BPA free임을 알면서도 꺼려집니다. 집 도어록 배터리는 안 갈아놓으면서 이런 것에는 또 신경을 씁니다. 세심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직장인들에게는 미안합니다. 그들의 출근길은 괴로움이 동반되겠죠. 빽빽한 지하철에서 타인의 원치 않는 숨결을 느끼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나의 출근길은 차로 5분 걸어서 15분입니다. 퇴근 이후에 이동할 일이 있으면 차를 가지고 가고, 아니라면 걸어갑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양재대로의 자동차들은 다들 어디로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요. 나에게는 즐거운 출근길이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겐 출근길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 규칙과 같다고 생각하니, 묘한 배덕감이 듭니다.


학교에서의 하루는 즐거운 날도, 힘든 날도 있습니다. 시계를 봅니다. 4시입니다. 바쁘지 않은 시즌의 중학교 교사는 4시 40분 칼퇴근이 가능합니다. 보통의 직장인의 퇴근이 대개 6시인데 비하여 상대적으로 여유롭습니다. 점심시간에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불안하지만, 그 보상이 빠른 퇴근이라면 감내할만합니다.


빠른 퇴근의 장점은 1시간 20분의 시간을 어떤 상황에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자유입니다. 운동을 가는 날에는 여름방학 숙제를 미룬 초등학생처럼 후루룩 해치우고 샤워를 하고 나옵니다. 운동 부위에 붓기가 있습니다. 미래의 내 몸을 엿보는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뿌듯해하는 그 마음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붓기는 잠시 동안 내 몸을 감싸는 것이지 내 몸이 아님에 우쭐대는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운동을 간 날에는 보통 식단을 합니다. 운동을 다녀온 이후에 보상 심리로 보통의 음식을 먹어버리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연비가 소형 하이브리드 세단에 견줄 수 있는 High-Tec 내 신체는 잠시만 방심해도 묵직해지고 맙니다.


책을 읽었을 때 내용이 내 머릿속에 저렇게 남을 수 있다면, 벌써 박사학위가 3개입니다. 그렇기에 식단을 합니다. 당을 첨가하지 않은 통밀 시리얼, 그릭요구르트, 하림에서 판매하는 닭 안심과 함께라면 맛있고 클린한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닭을 바짝 익혀먹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신선한 닭고기는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먹어도 괜찮습니다. 다양한 향신료를 좋아합니다. 소금이 다 같은 소금이 아니라는 것을 4년 전에 알았습니다. 소금 중에서도 감칠맛이 강하고 바삭거리는 식감이 매력적인 말돈 소금을 좋아합니다. 닭고기의 풍미와 소금의 감칠맛이 어우러지니 고급의 소고기에 견줄 만합니다. 사실 아닙니다 고급의 소고기가 훨씬 좋습니다.


운동을 가지 않은 날에는 식당 탐험을 떠납니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찾아 떠나는 과정은 일종의 탐험과 같습니다. 1시간 20분 일찍 퇴근하는 것의 장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서울 경기의 그 누구와도 6시에 만남이 가능합니다.


아, 6시에 퇴근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미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제가 그쪽으로 이동할 테니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세요. 상대방의 직장 쪽으로 이동하여 약속을 잡는 것을 즐깁니다. 내가 약속을 잡는 사람은 내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고,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면서 동시에 새로운 장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과 같습니다.


미리 웨이팅을 걸어놓고 길거리의 풍광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요즘 사람들에게 유행하는 신발이 무엇이 있나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면서 살핍니다. 눈알을 굴리고 있다가 보면 내 지인이 초췌한 얼굴로 옵니다. 고생했다고 어깨를 두들겨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힐링하자며 너스레를 떱니다.


즐겁습니다. 뭐든 즐거운 일들은 많지만, 사람과 함께 하는 대화만큼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나와 관심사가 같은 사람은 공감이 가서 편안하고, 관심사가 다른 이는 나의 지평을 넓혀줘서 좋습니다. 내가 단단해지거나 넓어지는 것이니 둘 다 바람직하고 적극적으로 취할만합니다.


약속이 끝나면 내 눈앞에 야경이 펼쳐집니다. 서울은 이게 매력입니다. 도시가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서울이라는 이름 하에 지역마다 다양한 특색과 즐길거리가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는 평생토록 서울을 알고자 하겠지만, 서울은 쉽사리 자신의 속내를 다 내주지 않을 듯합니다. 마치 짝사랑하는 상대의 일면을 알아가는 10대의 소년의 마음으로 살아가게끔 해줍니다.


돌아가는 길은 휴식의 시간입니다. 퇴근시간은 한참 지났기에 지하철은 여유롭습니다. 유튜브 뮤직에서 '드라이브하며 듣기 좋은 재즈모음',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클래식' 이런 키워드를 던져놓으면 내 입맛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말아줍니다.


음악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기능입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오늘 하루는 어떠했는가,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은 어떠할 것인가 등의 공상을 내게 허락해 줍니다.


집에 도착하면 잘 준비를 합니다. 하루 중에서 가장 기다렸던 일입니다. 베개에 머리를 댔는는데 잠에 들지 않고 뒤척이는 날에는 더 빡빡한 하루를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보통 그 다짐을 하다가 보면 어느샌가 잠에 듭니다. 코를 골면서 자면 다음날 목이 아픕니다.


3M 테이프를 살짝 입에 붙이고 자면 코골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2년 전의 나를 기특해하면서 테이프를 입에 붙입니다. 말을 할 수 없게 된 나는 누군가 전화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잠을 청합니다. 온갖 생각을 하다가 보면 다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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