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요. 비가 와서 아쉬웠던 러닝 기록이 배경입니다.
아쉽다는 감정이 늘 나쁘지는 않고요.
아쉬우니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요.
그러니까 나중을 기약하게 되더군요.
뭐든 충분한 게 좋을 수 있겠지만,
충분하지 않은 아쉬운 정도에 익숙해지는 것도 좋습니다.
돈이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통장이 있다면
밥 먹을 때 메뉴판의 가격을 보는,
주유소에서 5만 원을 긁었을 때 30L가 넘지 않아 서운한,
10만 원을 채우면 20퍼센트 할인이 들어간다는 말에
서점 구석에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려놓은
낡은 책을 뛰어가서 가지고 오는 일이 없을 테죠.
그러나 나는 겁쟁이라서,
돈이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통장이 있다 해도
그렇게 살지 않을 텝니다.
아쉬움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아쉬움이 내가 느끼는 감정과 경험을 관장한다고 믿으니까요.
뭐든 쉽게 얻을 수 있고,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이란 것이 없다면,
show me the money를 외쳐 이겨낸
스타크래프트 컴까기와 다를게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압도적인 무력에
낯선 손맛이랄 게 있겠지만, 금세 적응한 나는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요즘은 그래서 일부러 아쉬우려고 할 때도 있어요.
인생은 긴데, 점점 무뎌지고 익숙해지다 보면
웬만한 일에는 서운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나에게 2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이 주어지기에
그 시간을 쪼개서 소중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나에게 30만 원이라는 한정된 돈이 주어지기에
함부로 쓰지 않고, 계획적으로 사용하여
최대한의 만족을 느끼려고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래요.
친밀하고 가까운, 모든 것을 다 터놓은 관계라고 할지라도
서로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너무 익숙해져, 상대를 놓아버리는 일이 없을 테죠.
나는 요즘 부쩍 아쉬움을 느끼는 일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