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가 이제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by 박승연

나라는 사람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을 만한 삶을 살아왔으니까요.

고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상관이 없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니 밖을 돌아다닐 일이 조금 더 생기긴 했지만,

결국 매일 보는 익숙한 얼굴들과 알코올을 들이붓고,

피시방 모니터를 쳐다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바빴습니다.


허비한 시간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와 후회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이제라도 잘 보내봐야죠.


더위도 추위도 싫어 실내에서만 머무르는 사람이 날씨가 중요하겠습니까.

날씨는 그저 옷차림을 결정하는, 외출을 할 때 우산을 챙길지 말지 따위의

행동을 결정하는 귀찮은 요소였습니다.


내게 자유가 주어지기 이전까지는.




누군가에게는 대학 시절이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시절이었을 테죠.

그러나 제게는 '내 힘으로 번 돈'으로 삶을 영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였습니다.


대학시절 학자금과 생활비를 본인이 충당하는 대학생들도 다수 있겠지만,

나의 대학시절을 생각해 보면 도움의 비중이 더 컸습니다.


아니, 도움이 없었다면 대학교를 제대로 졸업이나 했을지 모르겠네요.

그런 상황에서 밖에 나돌아 다닌다 한들 진정한 자유라고 느끼지 못하게 하는

채무감이 항상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남들 다 가는 군대도 미뤄,

직장을 얻기 위해서 응시해야 하는 임용시험은

잘나 보이는 선배들마저 연거푸 고배를 마시는 모습을 보며

1학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난 이후 2학년때부터는 놀아도 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내가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불안감에

이제와 돌이켜보면 진정한 자유라고 볼 수도 있는 그 시기를


알차게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날씨에 그리 민감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에 취업을 하고 채무감에서 벗어났습니다.

군대라는 녀석이 남아있지만,

가서 시간만 보내면 무사히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미뤄진 숙제의 부담감보다 직장에 취업해서 얻은 해방감이 더 컸습니다.


심적인 자유가 주어지니,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졌습니다.

이전에는 날씨가 좋건 나쁘건 실내에서 죽치고 있던 내가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평일에는 직장을 가야 하니, 나에게 주어진 진정한 자유의 시간은 주말뿐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일주일에 단 2일만이 주말에 해당하는데,

그 주말이 날씨가 좋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겁니다.


기껏 시간 내어 밖에 돌아다니려 하는데,

비가 온다거나 공기질이 매우 나쁘다거나 하는 상황이 생기니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어? 왜 내가 날씨를 이렇게 신경 쓰고 챙겨보고 있지?"

라는 자각을 함과 동시에


나라는 사람은 날씨에 꽤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날씨와 무관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에 몰랐던 것이고,

지금은 날씨의 좋고 나쁨에 따라서 발걸음이 달라집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늘을 보고 하늘이 맑거나

시야가 멀리까지 보인다거나

구름이 드문드문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날씨가 좋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집니다.


시간을 충분히 낼 수 없는 평일에 날씨가 좋으면

괜히 심술이 나기도 하고,


날씨가 궃으면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도 합니다.


우연히 날을 잘 잡아 멀리 떠나는 날

날씨가 화창하면, 바람이 적당하면

공기의 내음이 화사하면


운전을 아무리 해도 지치지가 않습니다.

여행지에서 흘리는 땀은


마치 운동을 할 때 흘리는 땀과 같이

찝찝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더위를 잘 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화창한 날 햇볕을 맞으며 그늘과 볕을 신나게 오가는 모습을 보니

심적인 자유가 좋기는 좋은가 봅니다.


왜 나는 물리적으로 더 자유로울 수 있었던 순간에

그리 심적인 부분에 얽매여 나를 옥죄고 있었던 걸까요.


혹시 지금도 아직 일어나지 않을 미래의 걱정거리를

미리 발굴해내와 힘듦을 자처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 봅니다.


내일을 걱정하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바람직한 행동이지만,

그렇다고 내일 때문에 오늘이 불행해서는 안될 일이죠.




나라는 사람은 어떨 때는 대범한 사람인 양 연기도 해보고,

시간이 지나면서 기다림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하고,

속으로는 조바심을 내면서 여유로운 척하기도 합니다.


과거랑 비교하면 더 나아졌겠죠.

각종 일들을 겪어내면서 자연스레 성장을 하니까요.


그런데 내일을 걱정하는 일은

쉽게 멈출 수가 없습니다.


걱정만 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아니라

문제라고 생각을 하면 어떻게 던 해결 방법을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니까요.


이 양날의 검과도 같은 나라는 사람의 특징을

쉽게 버릴 수 없어. 오늘도 걱정을 하며 날씨를 찾아봅니다.


날씨에 대한 걱정이기도 하고요. 미래에 대한 걱정이기도 해요.

내가 걸어가는 길이 흐릴지라도,

결국 내가 머물고자 하는 곳은 화창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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