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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

단계를 줄이면 일어나는 일

by 박승연

최근에 물을 많이 마시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 아무리 신경을 써도 목표한 양을 채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하루에 물통 기준으로 몇 번 먹었는지 숫자도 세어보고,

따로 수첩에 기록도 해봤지만,

결국 내가 목표한 양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내가 너무 과한 목표를 세운 것도 아니며,

심지어 한 달 전에는 그런 목표를 세우기 전에도

알아서 잘만 마시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알아서 잘 먹던 물의 양을

목표까지 세워가면서 도달하려고 노력했던 것일까?




원래 사용하던 큰 물통이 고장 나서 버렸다.

당장 원래 사용하던 물통이랑 똑같은 종류의 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 일단 마트에 파는


금속 재질의 불투명한, 원래 사용하던 물통보다 작은

텀블러를 사서 사용을 시작했다.


그러니 거짓말처럼 원래 먹던 양보다 훨씬 적게 물을 마셨다.

고작 바뀐 것이라고는 물통의 종류 하나뿐인데, 왜 나는

물을 마시는 양이 너무나도 줄어들었을까?


"물을 마시기 위한 단계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물통에 물을 따라서 마시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다.

물통을 가지고 정수기에 가서 물을 붓기만 하면

물이 가득 찬 물통이 완성이 되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 보자.


첫 번째 허들은 '물통의 불가시성'이다.

투명한 물통은 물의 잔량을 확인할 수 있기에

'아 이쯤이면 다 먹어가는군, 지금 한가하니까 다 마셔버리고 떠올까?'

이런 사고가 가능하다.


만약 불투명한 물통이었다면, 물을 두 모금 남겨놓고는

물의 잔량을 알고 있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정작 목이 마를 때, 물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일을 하느라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에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

자연스럽게 내가 마실 수 있는 물의 총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물의 잔량이 확인 가능한 정도의 유무에 따라서

물을 따르러 가는 일의 허들의 높이가 낮아진다.


불투명한 물통은 잔량을 확인하기 위해 흔들어보거나 뚜껑을 열어야 한다.

투명한 물통은 잔량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항상 파악이 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투명한 물통은 상대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물을 보충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용기의 투명유무가 행위의 허들의 높낮이에 관여하는 경우를 하나 보았다.




두 번째 허들은 '물통의 용량'이다.

설명을 길게 할 것도 없다.

물통에 물을 채우러 갈 수 있는 상황은 동일하다.

물통의 용량에 관계없이.


하지만 물통의 용량이 충분하다면,

적은 횟수의 급수로도 충분한 양의 수분 섭취를 용이하게 한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하루에 마실 물의 양만큼의

물통이 가장 좋겠지만, 3L 이상의 물통은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1.5L나 2L 물병을 이용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 필요한 수분 섭취를 편리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큼지막한 물통이

가장 관리도 편하고 용량도 충분하여 권장하고 싶다.


카페에서 파는 예쁜 텀블러는 최소 2배 이상의 급수 횟수를 요구한다.

가장 유명한 사이즈인 스타벅스사의 '벤티'를 볼까.


'벤티'사이즈는 꽤 많은 용량이라고 생각이 되겠지만,

600ml가 채 안된다.


결론적으로 아래와 같다.


물을 많이 마시고 싶거든

용량이 충분하고 투명한 물통을 사용하라.




우리가 하는 행위를 촉진시키거나, 감소시키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허들의 높낮이를 조작하는 행위는


행위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그 결과가 즉각적이고 뛰어나다.


물통의 사례 이외에도 허들을 이용한 행동 촉진과 감소의 사례는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


구독 신청은 쉽지만, 구독 취소는 어렵다.

카드 결제는 카드만 있으면 되지만, 환불은 영수증도 함께 있어야 한다.

인터넷 결재는 계속 간편해지지만, 취소는 이것 저것 신경써야 할 것이 많다.

판매를 하는 입장에서야 다 이유가 있다고 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고민해볼 일이다.


이러한 행위의 허들의 높낮이가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해했다면,

지금까지 이용당해왔던 만큼 이용해주어야 한다.


이 방법은 내가 알면서도 당하기 때문에

내가 일부러 설정을 해놓는다면, 꽤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용당하지 말고, 이용하자.




인위적으로 허들의 높이를 조절하여 이득을 볼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모두 다 필자가 시도해봤거나,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방식들이다.

혹은.. 사용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아직 시도하지 않았거나...


[지출 관리]

1. 신용카드 대신에 체크카드를 사용하자.

-> 카드 잔액이 허들이 된다.

2. 카카오뱅크 체크카드의 경우 '보관함'기능을 이용하자.

-> 큰 돈을 사용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3. 간편결제는 너 좋으라고 하는게 아니다. 결제가 편하면 지출이 는다.

-> 기왕이면 불편하더라도 카드를 이용해야하는 일반결제를 사용하자.

4. 극단적인 방법으로 등락폭이 낮은 주식을 사놓는 방법이 있다.

->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주식을 판매하더라도 손에 쥐는 현금이 되기

까지는 시간이 며칠 걸린다. 그 시간동안 생각했는데 필요하다면 사는게 맞다.


[식단 관리]

1. 손 닿는 곳에 간식류를 두지 않는다.

-> 눈에 보이면 먹게 된다. 아니라고? 과연 그럴까,

2. 사서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소량으로 구매를 한다.

-> 사실 이렇게 하면 확실히 줄지만, 할인 때문에 대량구매를 한다.

3. 귀찮지만 먹어야 하는 비타민 등은 손 닿는 거리에 둔다.

-> 눈에 보이니까 잊지 않고 먹을 수 있다.

4. 반드시 먹어야 하는 약의 경우에는 라벨링을 해서 벽에 붙여놓는다.

-> 눈 뜨자 마자 보이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반드시 먹게 되어있다.


[학습/업무 관련]

1. 자주 사용하는 책이나 노트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 둔다.

-> 막상 짬내서 하려고 하다 보니 안보여서 못하는 경우를 방지한다.

2. 메모는 간편해야 한다. 파일로 저장하는게 아니라 스티커 메모를 이용한다.

-> 스티커 메모는 항상 떠있기 때문에 누락될 일이 없다. 파일을 열어보는 수고를 덜어준다.


[범용적으로]

1. 그냥 하는 습관

-> 이것 저것 완벽하게 하려다 보면 시작을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냥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상황에 맞게 수정해나가면 된다.



이외에도 생각해보자면 아주 많지만,

결코 필자가 게으른 사람이라서 저런 방법을 사용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아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으로 저런 방법을 체득하여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필자의 제안이다.


1.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손을 씻지 않는 행위

-> 세면대를 화장실 밖에 공용으로 두고, 화장실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비누가 나오게 한다.

사람들이 지켜보니 안 씻을 수가 없고, 이미 손에 비누가 발려 있는데 안씻고 배기나


2. 지하철 입구 옆에 마시던 커피컵을 올려놓고 가는 행위

-> 그냥 음료 전용 쓰레기통을 설치하면 된다. 쓰레기통이 없어서 거기다 올려놓는 것이다.

정말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행동이 단순하고, 행동 교정도 크게 어렵지 않다.


3. 무한리필 뷔페에서 접시를 애매한 사이즈로 만든다.

-> 접시가 크면 많이 담다가 남기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말고도 평소에 이것 저것 많이 생각했었는데, 배가 고파서 그런지

머리가 잘 안굴러간다.


간식이 잔뜩 들어있는 박스를 침대를 밟고 올라가야 손이 닿는

깊숙한 곳에 넣어놓았는데, 꺼내려다가 실패했던 몇 시간 전의 상황이 기억이 난다.


이처럼 허들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행위는 우리의 행동을

변경함에 있어 아주 큰 효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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