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하면 영원히 모른다
양주동 박사는 시인이자 국문학자이고 영문학자이다
국어시간에 배운 '몇 어찌'는 지금까지도 항상 가슴에 남아있어 오늘은 그 글을 다시 찾아보며 왜 그렇게 내 가슴에 남아 있었나를 더듬어 본다
박사의 중학시절 새 교과서에 실린 '기하(幾何)'라는 말에 대해 한문을 풀이해봐도 '몇 어찌'라는 말인데
무슨 말인지 도대체 잠이 오지 않고 밤새 골똘히 고민하다가 아침 되자 세수하는 것도 잊은 채 등교하여 선생님을 기다려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한다.
기하의 뜻을 알고 나니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긴다. 대정각을 증명하라는 말, 이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가위를 벌려 보면 당연히 맞꼭지각은 같은데 그걸 왜 증명해야 하나? 다음날 수업시간을 기다려 박사는
또 손을 번쩍 들고 질문한다.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그건 비 유지 증명이 아니라며 증명해 보이기 시작한다
선생님의 설명에 빠져 들어 '예' , '예'하며 대답을 하다 보니 어느덧 증명이 되었다
그 부분을 양주동 박사의 책 <문주반생기>에서 발췌해 보았다
<< "예, 예." 하다 보니 어느덧 대정각(a와 c)이 같아져 있지 않은가!
그 놀라움, 그 신기함, 그 감격,
나는 그 과학적, 실증적 학풍 앞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내 조국의 모습이 눈앞에 퍼뜩 스쳐감을
놓칠 수 없었다. 현대 문명에 지각하여, 영문도 모르고 무슨 무슨 조약에다 "예, 예." 하고 도장만 찍다가,
드디어 "자 봐라, 어떻게 됐나, "의 망국의 슬픔을 당한 내 조국! 오냐, 신학문을 배우리라.
나라를 찾으리라. 나는 그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노력을 했으나, 결국 질문을 통해 깊이 있게 이해하여 갔다
국문학적 깊이로 수학을 접근한 공부 방식이었던 것 같다
어쨋든 <<영문도 모르고 무슨 무슨 조약에다 "예, 예." 하고 도장만 찍다가, 드디어 "자 봐라, 어떻게 됐나, "의 망국의 슬픔을 당한 내 조국! >>
앗! 이 부분.
이 부분이 지금까지 학창 시절 내 가슴속 깊이 새겨져 없어지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말고, 알 때까지 끝까지 물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이해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모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잘 아는 사람들에게 가서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은 영원히 모르게 된다
모르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배우면 쉽게 해결된다
그런데 나의 소극적 성격은 아직도 혼자 해결하려는 습관이 남아있다
예상치도 못한 코로나19로 시대가 5년 앞 당겨진 요즈음
온 세상이 온라인화 되면서 세계가 좁아졌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 사람의 장기가 '오장육부'에서 하나 더 늘었다
'오장 칠부'라고 스마트폰이 우리 몸에 하나의 장기로 자리 잡고 있다.
없으면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소중한 '장기'.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니다. 이제 보이지 않는 공간의 세상에 온라인 빌딩을 세우고
거기서 온라인으로 거래가 되고 새로운 온라인 화폐가 등장하고 있다
요즘 내가 가입한 '꿈블 북클럽'은 주로 이프랜드에서 모인다
내 얼굴도, 내 이름도, 내가 있는 곳도 노출할 필요가 없다.
대신 아바타를 만들어 이름도 만들고, 섹시한 드레스를 입히고 높은 구두와 멋쟁이 모자를 쓰고
럭셔리하게도 혹은 발랄 깜찍한 모습으로도 변신해 가며 북클럽에 참석한다.
장소도 다양하다. 어느 때는 웅장한 도서관에서, 어느 때는 모닥불 피워놓은 야외 캠핑장에서
시간도 차비도 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
할 말이 있으면 버튼만 누르면 아바타가 손을 대신 들어준다.
마이크를 켜고 나의 목소리만 방출하면 된다.
끝나면 나의 아바타는 박수도 치고, 하트도 날려주고,
무대 위까지 올라가 앤딩 댄스도 즐긴다
요염하게도 추기도 하고, 요즘 아이돌 트렌드에 맞는 춤도 추고 자유자재로 춘다
그동안 나는 손가락으로 버튼만 잘 눌러주면 된다
정작 나는 뚱뚱한 몸매로 드레스 코드도 안 맞고, 관절이 아파 춤도 출수 없는데 말이다
나의 아바타가 나의 소망을 대신해주니 고맙기는 하다
이프랜드에 들어가 보면 모든 아바타들이 다 날씬하고 예쁘다 모두 춤도 잘 춘다
진짜의 모습은 안보이니까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다.
물론 우리 북클럽은 줌 회의도 겸하고 있어 얼굴은 알고,
또 매일 오픈 카톡방이나 블로그에서 소통하니 끈끈한 사이 이긴 하다
그러나 점점 온라인 세상 깊숙이 들어가면 대면으로 만날 수 없는 먼 이웃나라의 사람들도 있기에
알 수 없는 일이다
멋진 남성(혹은 여성)의 유혹에 이끌려 "예스 예스"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 위험도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뉴스에 나온 끔찍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섹시한 여자 아바타로 애정에 목마른 남자를 꼬셔 많은 돈을 사기 친 일.
모르면서 파도에 휩쓸려 내려가 버리면 나라도 잃고 자신도 잃는다
"난 몰라 그거 모른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 이프랜드는 또 뭐야?"
"무슨 버스라고?"
"난 메타버스 안 타면 돼지"
하면서 시대를 애써 외면하려고 배움을 등진다면
어느 날 갑자기 거센 디지털의 파도에 휩쓸려 내려가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래전 공부한 양주동 박사의 '몇 어찌'가 왜 지금 가슴에 남는 걸까를 이제는 알 것 같다
타이탄의 도구들 중 말콤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는
"모르는 것을 알 때까지 계속 묻는 것 , 그것이 질문의 정수요. 가장 좋은 질문법이다
정확히 알 때까지 질문하고 그것을 앎에 적용하기까지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
이라고 했다
#디지털시대 #배워야산다 #양주동의몇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