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이 일상이 되기까지

쪽빛에 대한 기록

by 루인

어릴 적, 크레파스 상자에서 파랑은 늘 특별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장 많이 쓰이는 색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색이었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조금 머뭇거리게 되는 색이었다.

파랑은 쓰기에는 조금 아껴 두고 싶은 색처럼 느껴졌다.


indigo 염색, Photo by Dimaz Fakhruddin

식물에게서 쪽빛을 얻기 전까지, 파랑은 오랫동안 보석을 갈아야만 얻을 수 있는 색이었다.

중세의 화가들은 푸른 하늘과 성모의 옷자락을 그리기 위해 라피스 라줄리를 곱게 갈아 안료를 만들었다.


파랑은 귀했고, 비쌌고, 그래서 아무 데나 쓰일 수 없는 색이었다.

그 색은 옷보다 그림에, 일상보다 상징에 먼저 쓰였다.


보석으로 만들어진 파랑은 자연스럽게 권력과 성스러움의 색이 되었다.

쉽게 얻을 수 없었고, 반복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랑은 일상의 옷이 아니라, 제단화와 성화 속에 머물렀다.

성모 마리아의 옷이 파란색으로 그려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옷은 단순히 아름다운 색의 선택이 아니라, 가장 값비싼 색으로 신성함을 표시하는 장치였다.

동시에 그 파랑은 손에 닿지 않는 세계, 일상에서 분리된 영역에 속한 색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냈다.


그러다 파랑을 둘러싼 조건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값비싼 보석에 의존한 색은 상징으로는 남을 수 있었지만,

반복되거나 널리 쓰이기에는 너무 멀고 무거운 재료였다.

파랑이 더 많은 삶의 자리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다른 재료가 필요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차 돌이 아니라 식물에서 파랑을 얻기 시작했다. 열대의 인디고 식물과 동아시아의 쪽.

이 식물들 안에는 파랑이 들어 있지 않았지만, 대신 파랑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들어 있었다.

잎을 베고, 삭히고, 기다리고, 공기와 만나게 해야만 비로소 드러나는 색이었다.

쪽빛은 자연이 바로 내어준 색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의 시간이 겹쳐질 때 비로소 나타나는 색이었다.


쪽빛이 특별한 이유는 이 색이 한 번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잎을 따는 순간에도, 물에 담그는 동안에도, 그 어디에도 파랑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물은 탁해지고, 냄새가 나고,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먼저 온다.

파랑은 그 모든 과정을 지나 마지막에야 드러난다.

천이 공기와 만나 산화되며 서서히 색이 변할 때, 우리가 아는 쪽빛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이 과정은 실패가 잦을 수밖에 없다. 날씨가 달라도, 물의 상태가 달라도, 같은 파랑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실패’는 치명적인 손실이 아니라,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편차에 가까웠다.

보석의 파랑이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가치를 잃는 색이었다면,

쪽빛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전제로 유지될 수 있는 색이었다.


바로 이 반복 가능성 때문에 쪽빛은 귀족의 색이 아니라 일상의 색이 될 수 있었다.

한 번의 완벽한 성공보다, 계속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조건이 이 색을 삶의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자연의 파랑은 대부분 꽃의 색으로만 존재한다. 앞서 보았던 쪽빛과 달리,

이 파랑은 애초에 남겨질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햇빛에 바래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서, 사용하기보다는 바라보는 색에 가깝다.

자연은 파랑을 잠시 드러내지만, 그 색을 오래 붙잡아 두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쪽빛이 일상으로 들어오기까지 걸린 시간과 노동을 생각하면,

이 색이 얼마나 많은 손과 기다림 위에 놓여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한 번에 완성되지 않고, 매번 같은 결과를 보장하지도 않는 과정.

그래서 쪽빛은 결과보다 과정이 먼저 보이는 색, 만들어진 색이라기보다 쌓인 색처럼 느껴진다.


파랑이라는 색이 좋은 이유는, 이 색이 기다림의 색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과가 곧바로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설령 실패로 남더라도, 그 상태 그대로 머무를 수 있는 색.

쪽빛을 떠올리면 그런 시간들이 먼저 생각난다.


모두 파랑이라고 불리지만, 염색의 결과는 매번 조금씩 다르다. 그

럼에도 사람들은 그 서로 다른 색들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며 좋아해 왔다.


그래서 파랑은 그림에서 옷으로 내려왔다.

감상되던 색은 몸에 닿는 색이 되었고, 멀리서 보던 색은 매일 입고, 빨고, 바래는 색이 되었다.

쪽빛은 특별한 날을 위한 색이 아니라, 노동과 시간을 함께 입는 색이 되었다.

이 색은 자연이 혼자 만든 것도, 사람이 마음대로 만든 것도 아니다.

식물이 남긴 가능성과 사람이 들인 시간이 겹쳐, 그렇게 일상 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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