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은 왜 마지막에 불렸을까

말라리아 치료제가 바뀌어온 방식에 대하여

by 루인

쑥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보이는 식물이다. 너무 흔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식물이다.
봄이 되면 사람들은 쑥을 캐서 음식을 만들고, 말려 차로 마시며 계절을 보낸다.
생활 속에서 자주 마주치는 식물이지만, 이 풀을 특별한 약으로 떠올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더구나 이 식물이 말라리아라는 치명적인 병의 치료제로 쓰였다는 사실은

아마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을 것이다.


Artemisia cina, Pictured by W. O. Müller, Public Domain

말라리아는 오랫동안 인류에게 가장 많은 죽음을 남긴 병으로 알려져 있다.


열이 반복해서 오르고 내리며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었고,


치료법을 알지 못하던 시기에는 그저 버텨내는 수밖에 없는 병이었다

이처럼 막막한 상황에서 처음으로 분명한 효과를 보인 것이 기니나무였다.
그 껍질에서 얻은 퀴닌은 실제로 말라리아의 열을 낮추었고 증상을 완화시켰다.

17세기 이후 퀴닌은 수백 년 동안 말라리아 치료의 중심에 놓였다.

이 약은 많은 생명을 살렸고, 그 자체로는 실패한 치료제가 아니었다.


약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가, 오래도록 쓰기에는
아직 여러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시대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약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가 조금씩 드러났다.

퀴닌은 효과가 분명했지만, 그 효과를 유지하기에는 대가가 컸다.
이명과 두통, 시야 이상 같은 부작용은 장기 복용을 어렵게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퀴닌은 특정 지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자원이었다.

식민지 정책과 전쟁, 유통 문제에 따라 공급은 쉽게 흔들렸고,
대규모 인구를 대상으로 꾸준히 투여하기에는 여러 한계가 따랐다.

약을 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간극은 자연스럽게 치료의 격차로 이어졌다.

퀴닌은 약효 이전에, 누가 치료받을 수 있는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드러난 문제는 약효가 아니라 사용 조건이었다.

퀴닌은 좋은 약이었지만, 현대적인 공중보건 체계가 요구하는 안정성과 대량성에는 맞지 않았다.

효과가 있다는 사실과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은 서로 다른 문제였다.


이러한 한계에 결국 20세기 중반, 사람들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자연에서 얻은 복잡한 물질 대신 더 단순하고, 더 일정한 성분의 약을 만들고자 했다.

퀴닌을 바탕으로 한 합성 항말라리아제가 등장했고, 이 약들은 한동안 말라리아 치료의 표준이 되었다.
값이 싸고, 관리가 쉬웠으며, 빠르게 보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선택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말라리아 원충은 빠르게 적응했고, 합성 약물에 내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약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이전만큼 효과를 내지 못했다.
치료는 다시 막다른 지점에 이르렀다.


이때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기록을 다시 들춰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물질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지식들에 시선을 돌렸다.

그 가운데에는 열을 내리는 풀에 대한 오래된 기록도 있었다.

그 기록 속에 등장하는 식물이 바로 쑥이었다. 정확히는 개똥쑥(Artemisia annua)이었다.

이 식물은 새로운 약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선택지에 가까웠다.


쑥은 갑자기 발견된 식물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고, 효과에 대한 경험도 축적되어 있었다.
다만 그 지식은 실험실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았고,

표준화된 약으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치료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다시 질문되지 않았고,

일상 속에 스며 있다는 이유로 의심받지도, 검증되지도 않았다.
쑥이 기다려야 했던 시간은 효능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에 가까웠다.


위기가 닥친 뒤에야 사람들에게 이 식물은 다시 불렸다.
이번에는 생활 속의 풀이 아니라, 치료제로서였다.


말라리아를 대했던 인간의 태도는 더 강한 약을 향해 곧장 나아간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이해할 준비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다시 불린 이름들의 기록에 가깝다


어떤 지식은 틀려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기다리게 된다.


그렇기에 쑥은 마지막에 등장한 약이 아니다.

가장 늦게 이해된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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