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2차 가해를 멈추자

by 권서희

스스로에게 2차 가해를 멈추자


“내가 사랑한 것 중에 왜 나는 없을까?” 드라마 ‘런온’에 나온 대사이다. 우리는 수많은 존재들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부모님, 가족, 자녀, 연인, 친구, 강아지, 고양이, 맛있는 음식, 여행지, 아이돌, 연예인, 음악, 미술작품, 영화나 드라마 등등..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에게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밀며 자기 반성과 비판을 더 많이 한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열심히 못 한 자기 자신을 나무라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성장하는 어른의 방식이라 믿고 살아간다.


심지어 우리는 때론 내가 왜 그때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됐을까?를 되돌아보며 감정에 대한 것 들까지 스스로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내가 조금만 더 흥분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더 침착했다면, 하고 복기하는 것을 성장이고 발전이라 배워왔다.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개선점을 찾아서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 멋진 어른의 모습이라 여겨왔다. ‘내가 지금 화낼 때가 아니지. 겨우 이런 일로 속상한 건 나약한거야.’ 라며 때로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감정을 억제하려 애쓰기까지 한다.


그러나, 감정은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하는 것이 먼저이다.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감정은 없다. 화가 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 분노의 감정이 반으로 줄어있고, 또 시간이 더 지나면 분노의 감정은 지워지고 그 위로 기쁨이나 편안함 같은 또 다른 감정이 자리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정이 지나가도록 그저 문을 활짝 열어 두면 된다. 하나의 감정을 오랜 시간 마음 속에 꼭꼭 가둬두지 않도록 흘려보내고 가벼워질 수 있도록 그져 두면 된다. 감정이라는 손님이 내 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갈 수 있도록 문만 열어 두면 된다. 굳이 느껴지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된단고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 없다. 어차피 지나가는 감정인 것이니,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 현병한 방법이다. 그러니, 느껴지는 감정에 대한 죄책감이나 비난은 이제 그만 멈춰도 괜찮다.


burnout-2326686_1280.png 이미지 : 픽사베이


누구나 살다보면 안 좋은 일을 겪게 된다. 그러면 딱 그 일 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를 한 번 더 공격하고 찌른다. “다 나 때문이야. 내가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반성이라는 포장지로 사실은 가슴을 쿡 찌르는 칼날을 들이민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면 돌에 맞은 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커다란 바위를 만들어서 나 자신에게 한 번 더 던진다. 예를들어,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나서 우리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그 상황을 다시 떠올리며, 상사가 했던 말을 다시 곱씹어 의미를 해석해본다. ‘그 말을 나한테 왜 한거지? 완전 나를 찍었다는 건가? 이제 가만 두지 않겠다는 건가? 내가 그 실수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왜이렇게 한심할까? 이제 직장 생활 망했다.’ 사실 그 상대방은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냥 그 상황에 대한 지적일뿐이었을텐데, 곱씹고 상대방의 의중을 내 멋대로 해석하면서 나 자신을 한 번 더 공격하는 것이다.


상사한테 맞은 돌로도 충분히 우리는 아팠을텐데, 왜 나 스스로 바위를 만들어서 한 번 더 던지는 것일까? 우리가 겪는 고통중에 외부의 상황에서 주는 고통보다 때로는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2차 가해가 더 큰 경우들이 있다. 이미 충분히 아픈 나 자신을 더 괴롭히지 말자. 착한 사람들이 화살표를 내 안으로 돌리는 경우들이 있다. 상황이 잘못되어도,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 더 큰 경우에도 자신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나는 화살의 표적이 아니다. 함부로 비난하고 고통을 줘도 되는 그런 만만한 존재도 아니다. 이제 그만 스스로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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