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도시 기행 03
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은 제 각각일 것이다. 압도적인 풍경을 찾는 이가 있을 것이고, 고급진 숙박을 추구하는 호캉스족도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나와 배우자가 '재방문'할때는 보통 어느 음식이나 식당을 잊지 못해서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술마신 다음 날 여러번 입맛만 다시다, 최근 다시 다녀온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군산에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콩나물국밥집 일흥옥이다.
일흥옥
전북 군산시 구영7길 25
영업시간: 05~15시(수요일 휴무)
콩나물국밥은 과음한 다음 날 곁들임처럼 먹던 음식이었다. 큰 자극은 없기에 서울에선 다른 해장국에 밀리기 일쑤. 전주쯤은 가야 우선순위가 올라서, 웬만큼 유명하다는 콩나물국밥 집은 다 가봤다. 주문 후 한 모금하면 늘 '또 속았다.' 생각이 드는 모주도 더 이상 마시지 않는다.
그러다 작년 군산에서 일흥옥을 만났다. 당시 2박 3일 방문했고, 근대문화유산과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온 관광거리들을 찾았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아침 해장 식당 하나 정도 찾아야겠다는 맘으로 이곳을 체크해두었던 것이다.
새벽 5시에 열어 오후 3시까지만 하는 전형적으로 잘 되는 해장국집 운영시간. 일요일 아침 8시 반에 찾았더니 현지인과 관광객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약간의 대기 후 입장. 깍두기, 고추, 쌈장을 곁들인 단출한 구성. 계란 하나 올라있는 정석적인 비주얼. '그래도 콩나물 국밥은 전주 아니겠느냐?'는 미련한 생각으로 국물 맛을 보면 거기서 게임이 시작된다. 김가루, 고춧가루를 조심스레 풀고, 아래 잠긴 쌀밥을 골라 얹으면 맛있는 한 숟가락이 완성.
무엇보다 이 집은 국물의 감칠맛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맛있는 국물', 거기에 플러스 알파가 분명히 느껴진다. 맛있는 국물을 만나면 보통 '제대로 우렸네.' 정도 표현하는데, 이곳은 그런 국물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분명히 뭘 넣긴 넣었을 텐데(물론 조미료도), '이렇게 맛있는 국물을 먹어본 적이 있나?'싶을 정도로 맛이 좋다.
손님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계란 노른자를 풀지 말지 하는 것'뿐이다. 노른자를 남기면 깔끔한 국물을 맛볼 수 있고, 처음부터 터뜨리면 비주얼은 탁하지만 더 고소한 국물을 느낄 수 있다. 미리 노른자를 빼 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으나, 가급적 천천히 터뜨리고, 그 전에 국물 원본(?)을 충분히 맛보길 권한다. 콩나물국밥의 핵심인 토렴은 사장 부부 내외가 번갈아 하시고, 스무 개 남짓한 테이블은 회전이 워낙 빨라 열댓 명의 종업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국물 추가, 밥 추가, 콩나물 추가가 각각 가능해서 양이 부족할 일은 없다.
우리는 군산에 작년과 올해 세 번 다녀왔다. 많은 분들이 엄지 척하는 짬뽕집들이 다수 영업 중이고, 서울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가성비의 오마카세 월명초밥도 있다. 해장으로는 초원사진관 앞의 한일옥이 유명하고, 앞서 소개한 일흥옥도 많이 찾는다. 특히 전국구 빵집 이성당의 본점이 있다. 그런데 이성당은 주말 낮에 대기줄이 매우 길다. 수도권에 몇 개 지점을 운영 중이니 멀지 않다면 집 근처에서 사 드시길 권한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눈뜨면 콩나물국밥 먹을 생각에 설레며 잠을 청했고, 새벽에 일어나 눈곱만 떼고 그 춥고 어두운 길을 걸어 6시 반에 방문했다. (당시 춥다고 내 뒤에 숨어서 가던 배우자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실망시키지 않는 일흥옥의 맛에 감탄했고, 그게 그리워서 이번에 또 다녀왔다. 다행히 군산은 생각보다 가까운 도시이다. 충청권을 굽이도는 금강의 하구를 건너면 바로 마주하는 도시로, 수도권에서 빠르면 2시간 반 만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이 풍부해 역사기행 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관광지와 맛집들은 구시가지에 거의 몰려있기에 도보로 둘러보기도 좋다.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방문하기에 무리가 없으니 화창한 날 방문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