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병일 May 28. 2024

18. 메밀짬뽕, 어머니의 연기도 끌어내지 못한 맛

               


  K 부부는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성가대로 활동하고 있었다. 성가대 연습을 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종이컵에 우린 녹차를 마시며 K는 아내와 절친 정 집사의 대화를 들었다.

  “어머니 언제까지 계시는 거야? 요즘 많이 힘들겠다.”

  아내가 K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힘든 건 없어. 이 사람이 다 하는데, 뭐.”

  정 집사가 감탄 어린 표정으로 K에게 말했다.

  “어휴, 집사님이 힘드시겠어요.”

  “아뇨. 어머니한테 요리해드리는 거 재미있어요. 제가 해야죠. 아들이 많이 할수록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마음을 더 쓰게 되는 거니까요.”

  그 말을 듣고 난 K의 아내가 “난 마음만 써”라며 웃었다. K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토요일이었던 전날 K는 평소처럼 카페에 가지 않고 어머니 돌봄을 전담했다. 아침엔 전날 먹고 남은 조기와 물김치 위주로 어머니에게 아침을 차려 드렸다. 점심엔 두부조림을 만들어 신메뉴를 제공해 드리기도 했다.

  K의 아내는 실컷 자고 일어나 고구마로 아점을 먹은 뒤 콩나물무침과 무생채를 만들어놓았다. 설거지는 기본적으로 K가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가끔 아내가 해주면 K가 고마움을 표현했다. 전날 저녁에 K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아내가 어머니에게 “머리 감아 드릴까요”라고 물었었다. K의 어머니가 이제 목욕도 할 수 있다며 괜찮다고 했다. K는 아내의 그 말에 더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K의 어머니도 아들 못지않게 며느리의 마음을 살피며 지냈다. 그날 아침엔 집 근처 식당에서 사 온 곰탕을 끓여 드렸다. K의 어머니는 전날 딸이 보내준 명란젓을 먹고 싶다고 했다. K는 미어터질 듯한 냉장고에서 명란젓을 잘 찾지 못했다. K의 어머니가 다가와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말했다.

  “그만 찾자. 에미 깰라.”

  다행히 K가 막 냉장고를 닫으려는 순간 어머니가 명란젓을 발견했다. K의 어머니는 아들이 갖다 드린 가위와 참기름으로 명란젓을 먹기 좋게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주일 예배를 마친 뒤 K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K의 아내는 친한 교인들과 모임이 있었다.

  K가 집에 도착해 보니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엄니, 가서 장 좀 봐올게요. 오늘은 짬뽕을 맛있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들의 말에 K의 어머니는 별 기대하지 않는 표정으로 “그래라”라며 웃었다. 이틀 전 미역국에 실망한 뒤 아들에 대한 기대감을 많이 낮춘 듯했다. 남은 미역국에 물을 붓고 K가 두세 끼를 먹었는데도 그 미역국은 아직도 냉장고에 남아 있었다.


  이번엔 기필코 어머니 입에서 감탄이 나오는 짬뽕을 만들리라 마음먹으며 K는 마트로 향했다. 유튜브 Y셰프의 짬뽕은 K의 아내도 맛있다고 인정한 레시피였다. 삼겹살과 갑오징어, 홍합, 청경채, 애호박 등 짬뽕 재료와 계란, 순두부, 가지 등을 한아름 사 들고 돌아왔다.

  홍합껍질을 씻고 있는데 아들이 교회에서 돌아왔다. 아들은 자신이 먹을 소고기를 굽고 K는 홍합 손질과 야채를 다듬었다. 재료를 다 준비하고 요리를 시작하려는데 아들이 ‘화유’를 건네주었다. 불맛이 나는 기름이라는 말에 K는 주저 없이 세 숟갈을 웍에 부었다. 생각보다 색깔이 붉어서 살짝 께름칙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기름이었다.


  얇게 자른 삼겹살을 먼저 볶고 양파와 파, 마늘을 넣고 더 볶았다. 홍합과 갑오징어, 야채, 고춧가루를 넣고 볶은 뒤 물을 한 컵 붓고 끓였다. 물을 나눠서 붓고 끓일 때는 간이 변하기 때문에 간을 마지막에 하라는 Y셰프의 말대로 맨 나중에 간장, 맛술, 치킨스톡, 후추로 간을 했다.

  K는 메밀면을 삶아 짬뽕 국물에 데운 뒤 둥그런 그릇에 짬뽕과 함께 담아 어머니께 갖다 드렸다. 4시쯤 소고기를 구워 먹은 K의 어머니는 7시 반이 되었는데도 그리 배가 고프지 않은 듯했다. 짬뽕을 먹던 K의 어머니 입에선 좀처럼 맛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K는 그런 어머니 옆에서 연신 짬뽕을 퍼먹었다. K에게 요리는 갑자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이상하게 잘하려고 하면 평소와 다른 맛이 나는 생리를 갖고 있는 듯했다. 뜨거운 국물과 홍합, 갑오징어, 삼겹살 등을 후루룩 먹는 맛이 K의 입에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감칠맛’은 찾을 수 없었다.

  마침내 K의 어머니 입에서 짬뽕 맛에 대한 표현이 나왔다.

  “아들, 맛있다.”

  최소한의 연기조차 없이 덤덤하게 나온 말이었다. K의 어머니는 맛있다고 하면서 면과 국물을 자꾸 아들 그릇에 덜어주었다. 진짜 배가 안 고파서 그런다면서.


  K는 화유가 문제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유 세 숟갈은 너무 많은 양이었다. 매운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짬뽕을 입안이 신통치 않은 K의 어머니는 겨우 먹은 것이었다. 그래도 아들이 열심히 차려낸 음식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먹고 계신다는 걸 K도 느낄 수 있었다.

  K의 어머니는 홍합살과 갑오징어, 삼겹살을 꿋꿋이 씹어 삼키시며 단백질만은 잘 섭취했다. 보통 짬뽕 레시피엔 굴소스를 넣는데 Y셰프 레시피엔 넣지 않았다. K는 넣을까 말까 하다가 넣지 않았는데 그 때문인지 밍밍한 짬뽕 맛이 났다. 남은 짬뽕에 굴소스를 한 숟갈 넣고 K가 다시 끓였더니 맛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K의 어머니는 이미 숟가락을 놓은 상태였다.     


  저녁을 먹고 난 K는 파 다섯 개를 썰어 큰 통에 담아놓은 뒤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끝낼 즈음 K의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K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나 어머니한테 요리 고문하는 것 같아.”

  K의 아내가 웃으며 안방으로 들어가 “어머니, 아들이 요리 고문해요?”라고 물었다. K의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니다. 짬뽕 맛있었어. 누가 맛없대?”

  K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 맛있다고 하셔도 느낌으로 맛없는 거 다 알아져요.’


  안방에서 나온 K의 아내가 재미있어하며 말했다.

  “으이그, 요리 좀 한다고 큰소리치더니 아직 한참 멀었구나. 입 아프신 어머니께 매운 짬뽕이나 해 드리고.”

  “그러니까. 환자에게 맞는 음식 해 드릴 생각은 못하고 머릿속에 있는 것만 하고 있네.”

  K의 아내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가 좀 나서 봐야 하나?”

  K가 맞장구를 치며 환영했다.

  “그래. 내일 나 회식이니까 당신이 건강식으로 좀 해 드려봐.”

  K의 아내는 내일 굴비로 찜 요리를 해드려야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K는 그래도 어머니에게 요리를 해드리는 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그리 재미있는 일 같지 않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K에겐 아직 어머니에게 해드릴 요리가 열두 개나 남아 있었다. K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른 건 다 관두고 된장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다. K는 모레 된장찌개나 다시 끓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머니가 주문한 대로 소고기를 듬뿍 썰어서 넣고 말이다.

이전 17화 17. 조기조림, 그 어려운 환자의 입맛을 정조준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