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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May 31. 2024

19. 홍합된장국,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어요?

             

 

  어머니가 집에 오신 지 일주일이 지났을 즈음 K는 몸살이 났다. 그날 저녁 송년회에 참석하려 했던 K는 열이 나고 두통이 점점 심해져 집으로  바로 귀가했다.

  집에 도착해 보니 K의 아내가 노릇노릇하게 구운 장어를 어머니와 함께 먹고 있었다. 제주도 여동생이 보내준 장어로 K의 어머니는 몸보신을 제대로 하시는 듯했다. K는 씻은 뒤 전날 먹고 남은 짬뽕으로 저녁을 먹었다. 자기 세뇌를 하듯 K가 말했다.

  “짬뽕 맛있는데?”

  K의 어머니도 강하게 아들의 말에 동조했다.

  “아들, 나도 짬뽕 맛있었어!”


  어머니의 강한 긍정이 K는 왠지 강한 부정 같았다. K가 만들어 놓은 미역국도 냉장고에 꽤 남아 있었다. 아침마다 부지런히 먹어 치워야 할 터였는데 K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만든 찌개나 국을 몇 끼씩 계속 먹는 것을 좋아했다. K의 어머니가 짬뽕을 먹고 있느니 아들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원래 자기가 만든 음식은 자기가 먹어 치우게 되는 거야.”     


  K의 어머니는 아들네에 왔던 첫날 막장드라마 3편을 연달아 봤었다. 다음날부터는 무릎이 아프다며 저녁을 먹은 뒤 바로 침대로 가서 누웠다. 주로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듯했다. 장어를 먹고 난 K의 어머니는 바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안방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K에게 은밀히 말했다.

  “어머니 뭐 보시는 줄 알아? J목사 영상만 보고 계셔.”


  K의 아내는 어머니가 한기총에서도 이단으로 진단한 목사 설교만 듣는다고 한 걱정이었다.

  “담임목사님 설교 들으시면 좀 좋아? 왜 사이비 목사 설교 들으시는지 모르겠어.”

  K가 안방 쪽을 쳐다보고 난 뒤 말했다. 

  “어머니한테 얘기해도 안 바뀌실걸? 그냥 예능 보시는 거려니 해야지 뭐.”

  K의 어머니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J목사의 재담을 들으며 통증과 시름을 잊고자 하는 듯했다.


  집에서 밥을 먹고 쉬고 난 K는 두통이 가라앉고 으슬으슬하던 것도 나아졌다. 아내가 K에게 어머니 돌봄 노동에 시달려서 몸살 두통이 난 거라고 했다. K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닐걸? 어머니 위해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게 난 재미있었는데?”

  K에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어머니 입에서 찐 “맛있다”가 터져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다음 날 저녁에 K는 주특기인 된장찌개를 준비했다. 이틀 전 짬뽕을 하고 남은 홍합과 갑오징어를 넣고 끓이기로 했다. 한창 홍합을 씻고 있는데 코웨이 코디님이 방문했다. 정수기를 분해해 세척하는 코디님 옆에 나란히 서서 K는 홍합을 씻었다. K가 아무리 빠르게 홍합 껍질을 손질해도 코디님의 손놀림을 따라갈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손이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잠시 뒤 K의 아내가 귀가했다. 정수기 세척을 마친 코디님이 거실에서 아내와 대화하는 소리가 K의 귀에 들렸다.

  “아니,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어요? 남편분이 된장찌개 많이 끓여보셨나 봐요. 홍합 껍질 손질하는 남자는 처음 봐요.”

  K의 아내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된장찌개만 조금 끓여요”라고 대답했다.


  코디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됐기 때문인지 K의 어머니가 배가 고프다고 보챘다. 된장찌개를 끓이는 동안 K의 아내가 어제 남은 장어를 구웠다.

  전날 장어를 먹고 질린 아내에게 된장찌개를 맡겨 두고 K는 어머니와 거실 식탁에서 장어를 먹었다. 맛있게 먹다가 된장을 풀러 주방으로 가봤더니 아내가 채에 된장을 거르고 있었다.

  “풀다 남은 된장은 어떻게 해? 버려?”

  된장찌개를 남편에게 넘긴 지 오 년이 넘은 K의 아내는 기본적인 것도 까먹은 듯했다. K가 주방으로 가며 “다 넣어야지”라고 대답했다. 아내가 건성으로 채에 된장을 걸러 웍에 쏟아붓는 걸 보고 K는 거실로 돌아와 장어를 다시 집어먹었다. 깻잎에 장어와 양념, 생강을 넣고 싸서 먹는 맛이 꽤 진하고 강했다.


  장어로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난 K는 주방으로 가서 된장찌개에 간장을 넣고 간을 했다. 충분히 된장을 넣었는데도 싱거운 맛이 느껴져 평소보다 간장을 한 숟갈 반 더 넣었다. 간장을 넣고 난 뒤 장어 양념 때문에 입맛이 짠 상태에서 간을 봤기 때문에 싱겁게 느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였다.  

 

  결과적으로 그날 K의 주특기인 된장찌개도 어머니 입에서 찐 ‘맛있다’를 끌어내지 못했다. 홍합과 갑오징어가 왠지 된장찌개가와 궁합이 잘 안 맞았다. 덜 푼 된장 맛이 평소보다 썼고 또 짜기까지 했다. 어머니 입맛만을 탓할 수 없는 게 K의 입맛에도 감칠맛이 없었다. K는 어머니가 온 이후로 신기할 정도로 실패한 요리만 하고 있는 셈이었다.


  K의 어머니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난 어머니가 “승진이 목요일에 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승진은 K의 어머니와 함께 기거하고 있는 조카였다. 할머니가 어떤지 다음 날 살펴보러 오기로 했었다.

  “의왕에서 고척동 오는 교통도 좋지 않고, 할머니 금방 갈 거니까 다음에 오라고 했어.”


  순간 K는 어머니가 4주를 채우지 않고 돌아가실 생각인가 싶어 뜨끔했다. 나름대로 마음 편히 계시게 하려고 힘쓰고 있었는데 불편해서 일찍 돌아가시려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K가 이런 말로 슬쩍 어머니의 의중을 물었다. 

  “집에서 텔레비전도 안 보시고 핸드폰으로 유튜브만 보시니까 좀이 쑤시시죠?”

  K의 어머니가 뭐라고 대답하시려는 찰나 퇴근한 K의 아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한결이 무릎이 어떠신가 보자며 할머니를 침대로 모시고 갔다. 양쪽 무릎을 천천히 굽혀 보던 아들이 말했다.

  “할머니 너무 잘 구부려지시는데? 집에 가셔도 되겠어!”

  그 말을 듣고 K는 한 번 더 뜨끔했다. ‘야, 이 녀석아. 할머니 집에 가시라는 말로 들으시면 어떡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표정을 읽었는지 한결이 웃으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가시라는 말은 아니에요. 집에 가실 정도도 다리 상태가 좋으시다는 얘기예요.”

  K의 어머니가 마주 웃으며 손자에게 말했다.

  “그럼. 할머니 4주 다 채우고 병원 진료받은 다음에 집에 갈 거야.”


  K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안심이 되었다. 열흘 정도 지내시는 동안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해보지 않으신 듯했다. 또는 며느리 눈치가 조금 보여도 아들을 믿고 더 있어도 되겠구나 라고 느끼신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어머니가 4주를 채운 뒤 댁으로 돌아가시면 좋겠다고 K는 생각했다.

  K의 아내는 열흘쯤 뒤 호주의 딸네로 떠나기로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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