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K의 아내가 전복을 듬뿍 넣어 끓인 죽을 어머니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K의 어머니는 억지로 죽을 몇 술 뜬 뒤 안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K는 어머니의 무릎에 얼음팩을 올려드렸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거울로 입안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두 번의 큰 수술 뒤 제대로 음식도 섭취하지 못한 어머니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보였다. 입 안이 헐기 직전 상태였고 바짝 말라 있었다. 어머니는 약국에서 입 안에 상처 났을 때 바르는 연고라도 사달라고 했다. K의 아내가 아들에게 집에 오는 길에 연고를 사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K가 저녁 먹은 설거지를 하려는데 아내가 설거지는 자신이 할 테니 약국에 다녀오라고 했다. 아들이 카톡을 늦게 봐서 연고를 사 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집 아래 단골 약국에 가보니 15년째 봐왔던 약사가 K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저희 어머니가 양쪽 무릎 수술을 하신 뒤 입안이 헐기 직전 상태가 되셔서 거의 못 드시고 계세요.”
약사님은 “아, 그거요?” 하더니 생약과 알약을 4일 치 챙겨 주었다. K가 소염진통제는 안 된다고 하자 진통제가 아니니 걱정 말라고 했다. 입 안에 바르는 연고와 타이레놀 2박스까지 사들고 K는 집으로 돌아왔다.
K의 어머니는 이런 약이 있었으면 진작 먹을 걸 그랬다며 생약을 반겼다. 생약과 연고를 보고 마음이 조금 놓인 표정이었다.
할머니 대신 소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고 난 K의 아들이 안방으로 가서 살살 치료를 해드렸다. 아들이 할머니를 척척 치료해 드리는 모습을 K 부부는 대견해하며 바라보았다. 잠시 뒤 K가 거실로 나와 월드컵 하이라이트를 보는 동안에도 K의 아내는 계속 안방에서 함께 있었다.
“할머니 내일은 제가 회식이 있어서 혼자 숙제를 하셔야 돼요”라고 말하는 아들의 목소리를 K는 거실에서 들었다. 이어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내일은 제가 같이 해 드릴게요.”
K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집안일을 많이 할수록 아내가 어머니에게 쓰는 마음이 커진다는 것 말이다. K가 아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학교 선생님이 에어프라이어에 쓰는 종이 호일이 있다고 하더라구. 그거 깔고 생선 요리한 뒤에 종이만 빼면 설거지 안 해도 된대. 그럼 나도 생선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K의 아내가 에어프라이어엔 물기가 많이 생겨서 요리가 잘 안된다며 생선은 전문점에 가서 사 먹자고 단칼에 정리했다. 그때 K의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말했다.
“에미야, 굴비 같은 건 괜찮지 않니? 병원에선 매끼 고기랑 생선이 나왔어야.”
K의 아내가 선뜻 대답했다.
“어머니, 굴비 드시고 싶으세요? 내일 제가 사 올게요.”
K의 어머니는 다이렉트 소통으로 자신을 위한 단백질 공급을 이루어냈다.
다음 날 아침에도 K의 어머니는 전복죽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퇴근 후 K는 서둘러 집으로 와서 미역국 끓일 준비를 했다. 소고기미역국으로 어머니에게 단백질을 충분히 보충해 드릴 심산이었다. K의 어머니는 생약을 먹고 상태가 좋아져서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전날 모임에 가지 않아서 단골 약국에 갈 수 있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K는 생각했다. K는 어머니의 요청대로 안심소고기를 가늘 게 썬 뒤 칼로 쳐대며 잘게 잘랐다. 미역도 같은 방법으로 잘게 자르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그 사이에 K의 아내가 커다란 조기 두 마리를 사 들고 들어왔다.
“어머니 해드리려고 시장에서 사 왔어. 조기조림 해드리면 되는데 미역국 끓이는 거야?”
의아해하는 아내에게 K가 미역을 잘게 썰며 대답했다.
“어머니도 소고기 좀 드셔야지.”
K는 어머니가 수술 후 원기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좀 과하게 단백질을 공급해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냉동실에 있던 살코기로 미역국을 끓여 드리지 왜 기름 많은 안심으로 끓이고 있어?”
남편을 타박하며 K의 아내가 밥은 했냐고 물었다.
“당연히 압력밥솥이 하고 있지.”
그날은 K 부부의 손발이 맞지 않았다. K의 아내가 다시 남편을 타박했다.
“으이그. 내가 조 넣고 맛있게 해 드리려고 서둘러 왔는데 그새 밥을 했네. 어머니 잘 못 드시니까 밥 질게 했어야 되는데!”
“아차! 그 생각을 못했네.”
K의 아내는 생각이 짧다며 한 번 더 남편에게 잔소리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K는 자신이 할 일을 했다. 웍에 참기름 두 숟가락을 넣은 뒤 소고기를 볶고 미역도 볶았다. 국간장이 떨어진 걸 보고 K가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미역국에 맛간장은 아니지? 진간장 넣어야지?”
“아직 미역국에 넣는 간장도 모르냐? 여보, 맛간장하고 진간장은 같은 거야.”
“하아, 그랬구나.”
K는 조선간장 두 숟갈을 미역과 소고기에 붓고 더 볶았다. 일단 물을 3분의 1쯤 붓고 끓였다. 국이 끓는 동안 K가 어머니에게 가서 아는 체를 하며 말했다.
“엄니, 국물 맛을 내려면 물을 세 번 나눠서 부으면서 끓이는 거래요.”
K의 어머니가 힘겹게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래, 맞아. 미역국은 푹 끓여야 맛있어.”
K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와 물 1/3을 더 붓고 간장과 액젓을 더 넣었다. 간을 보니 여전히 싱거운 느낌이었다. 물 1/3이 더 들어가야 한다는 계산을 하며 K는 간장을 더 부었다.
K는 아내가 미역국 끓는 동안 조기조림할 냄비를 설거지 해 놓으라고 하여 부지런히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끝낼 즈음 미역국 간을 보던 아내가 인상을 쓰며 “으아, 짜”라고 했다.
“이상하다. 그렇게 짤 리가 없는데.”
K가 서둘러 설거지를 끝내고 간을 보았다. 맛이 엄청 짰다. 미역에 스며들어 있던 간장 두 숟갈이 우러나서 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계산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머니에게 가서 국은 세 번 나눠서 끓여야 한다고 떠들어댄 자신이 K는 한없이 부끄러웠었다. 게다가 K의 어머니가 푹 끓이라고 하여 더 짜진 것이었다. K의 아내가 조기를 냄비에 올려놓으며 남편을 놀리면서 말했다.
“미역국은 난 몰라. 내가 한 요리만 맛있으면 되니까.”
조기조림이 완성되는 데 시간이 걸려 평소보다 30~40분 늦게 저녁상이 차려졌다. K의 어머니는 짠 미역국에 뜨거운 물을 말아서 먹었다. 신기하게도 아내가 만든 조기조림은 짠 부위와 싱거운 부위가 나뉘어 있었다. K의 어머니는 조기는 짭짤해야 맛있다며 짠 부위를 맛있게 먹었다. K의 아내가 장인어른 생전에 하던 대로 고기를 발라서 어머니 밥 위에 올려놓았다.
K의 어머니는 밥 한 그릇에 조기와 소고기미역국을 다 먹고 흡족해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K의 아내가 남편에게 넌지시 말했다.
“미역국은 싱겁게 드시고 조기는 짜게 드시네. 어른 입맛 맞추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K가 “그러네”라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남편을 조금 고소해하며 K의 아내가 말했다.
“어머니 모시는 거 혼자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더니, 어때? 쉽지 않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K가 대답했다.
“그러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 당신 도움 없이는 안 되는 일이었어.”
K의 아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남편의 얼굴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K는 아내의 웃음이 나쁘지 않았다. 미역국은 짰지만 조기조림은 어머니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었다. 아들이 혼자 어머니를 완벽하게 모셨더라면 며느리 입장에선 남편이 엄청 재수 없었을 수 있었다. K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아내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K의 어머니는 입안도 많이 좋아지고 음식도 잘 먹어서 힘이 난 듯했다. 손자가 내준 숙제들을 거뜬히 해냈고, 걸음걸이도 한결 자연스럽고 힘 있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