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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Jun 07. 2024

20. 그릭요거트양배추샐러드, 어머니에게 처음 화를 낸


          

  K의 어머니가 아들네에 온지 열흘 때 되던 날 아침이었다. K는 전날 어머니가 먹고 싶다고 한 그릭요거트양배추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평소보다 십 분 일찍 일어났다.

  미리 썰어놓은 양배추 접시에 깔고 사과 반쪽을 얇게 썰어 올렸다. 그릭요거트를 듬뿍 두르고 견과류를 잘게 잘라서 뿌린 후 식초와 조청으로 간을 해 뒤섞었다.   

  여느 날처럼 K는 전날 먹던 찌개를 데우고 밑반찬과 샐러드로 아침 식탁을 차렸다.

  “아들, 샐러드 맛있다. 입맛이 확 도네.”


  K는 어머니가 샐러드를 다 드시도록 접시를 옮겨 드린 뒤 자신의 몫인 미역국을 먹었다. 습관적으로 채널을 돌리던 K가 뉴스 채널에 맞춘 뒤 리모콘을 내려 놨다. K의 어머니가 와이티엔 뉴스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이태원 유가족 어머니 한 분이 카메라를 향해 울분을 터뜨리며 호소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뒤 한 달 정도 지났을 즈음이었다.

  “용산구청장, 서울시장, 경찰서장, 청와대 대통령실에 있는 분들, 이 영정들을 좀 보세요. 이 젊은 목숨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기자의 목소리를 듣던 K의 어머니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지들이 나라를 구하다 죽었어, 왜들 저래…”

  인상을 쓰며 유족을 비난하는 어머니를 향해 K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어머니! 한결이도 이태원에 갈 수 있었어요. 어머니 손자도 거기 가서 죽을 수 있었다구요. 자식 잃은 부모에게 어떻게 그렇게 말하실 수 있어요!”


  K의 어머니가 당황해하면서도 여전히 완고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세월호 때처럼 사람들이 억지 부리는 거라던데. 다 마약한 사람들이었다고 하고.”

  실망과 분노를 금치 못한 얼굴로 K가 어머니에게 쏘아붙였다.

  “한결이도 이태원 가려고 했다니까요. 가지 말라는 데를 간 게 아니라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에 가서 죽음을 당한 거예요. 내 가족이 저런 일을 당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그렇게 공감 능력이 없으세요.”


  어머니가 집에 온 이후 K가 처음 화를 낸 것이었다. 아들의 서슬에 놀란 K의 어머니는 곧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내 말에 따르면 K의 어머니는 J목사의 영상을 핸드폰으로 보면서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고 했다. K는 예능 보시는 거라고 치부하기엔 도를 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빨간 거짓말도 두세 번 들을 때까진 귓등으로 듣게 되지만, 수십 번 수백 번 듣게 되면 진실로 여겨진다고 하지 않던가. 8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만 해도 K의 어머니는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쏟은 분이었다. 


  그랬던 K의 어머니가 변한 건 5년 전쯤 아파트 재개발 반대 운동을 하면서부터였다. 리더인 목사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조합이었다. 그때 함께했던 분들과 ‘전우’처럼 친해졌는데 그분들이 대부분 우익 성향이었다. 그분들과 극우 편향의 유튜브 영상을 공유하던 K의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극단적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K는 디지털과 SNS가 청소년보다 노인들에게 미치는 해악이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막장드라마라도 함께 봤다면 아들 부부와 어느 정도 현실을 공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밥을 먹고 난 K의 어머니는 자전거타기 운동 조금 하다가 바로 안방 침대로 돌아가 J목사 영상이나 극우 유튜버의 영상을 시청하곤 했다. K는 어머니와 자신과 너무 다른 우주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J목사의 추종자가 되면서 K는 신앙조차도 공유할 수 없는 부모 자식이 된 듯했다. K에게 그건 너무도 떫고 씁쓸한 현실이었다.     


  그날은 아침에 비가 와서 K가 차로 아내와 함께 출근했다. K는 아내를 D초등학교에 내려주기 위해 차를 역 쪽으로 몰았다. 아침을 먹다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K에게 듣고 난 아내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퇴한 뒤에 형제들이 어머니 모시고 함께 살자고 내가 했던 말 취소야. 에휴, 어머니랑 도저히 같이 못 살 것 같아.”


  예전에 K의 아내는 손아래 동서와 통화하다가 나중에 함께 보여 살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시동생네를 배려한 말이기도 했다. K가 실망한 기색을 숨기며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왜 그런 말을 했어.”

  그러면서 K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엄마하고 나하고 살면 되지 뭐.’          



  다음날 토요일 저녁에 생긴 일이었다. 식사할 때마다 K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밥을 덜어주었다. 평소보다 먹는 양이 많았기 때문인지 저녁을 먹고 난 K는 용변이 급히 마려웠다. 닫혀 있던 화장실 문을 두드리니 아내의 “기다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뒤 아내가 나오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간 K가 말했다.

  “으아! 냄새…”

  K가 화장실에서 나와 페브리즈를 찾고 있을 때 어머니가 화장실로 쏙 들어갔다. 작은 일을 보시겠거니 했던 K는 이내 어머니가 큰일을 보시고 있다는 걸 깨닫고 속절없이 기다렸다. K는 어머니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다가 점점 생리적 한계상황을 느꼈다. K가 집 앞 마트 화장실에 가서 욕구를 채우려고 나서려던 찰나 극적으로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급히 페브리즈를 뿌리고 큰일을 보며 K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문제는 그 뒤에 생겼다. 잠들기 전 K가 화장실에 들렀을 때 변기가 막혀 있었던 것이다. 압착기로 뚫어내기에 벅찬 내용물이 쌓여있었다. 어머니가 안방에서 잠든 상태였음에도 K는 자신도 모르게 건넌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보! 큰일났어! 변기가 막혔어…. 이거 어떡하냐?”

  쓰리고를 맞은 변기엔 물에 녹는 것일지라도 3인분의 휴지가 더해져 있었다. K는 압착기로 뚫어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K의 아내가 화장실로 다가오며 낮은 목소리로 남편을 타박했다.

  “어머니 주무시는데 왜 소리를 질러?”


  변기를 살펴보고 난 아내가 별일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K에게 말했다.

  “뜨거운 물 부으면 되는데 뭘 그렇게 야단을 떠니.”

  K의 아내는 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 변기에 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K가 물었다.

  “그걸로 뚫리겠어…?”


  K의 아내가 어린애 달래듯 남편에게 말했다.

  “어머니 주무시니까 그만 떠들고 들어가 있어.”

  차가운 변기에 뜨거운 물을 느긋하게 붓는 아내의 얼굴은 놀랍도록 태평했다. 다행히 물은 넘치지 않고 부은 만큼 조금씩 내려갔다. K는 저렇게 해서 언제 뚫리나 싶었다. 아내의 동작을 하릴없이 바라보던 K는 곧 건넌방으로 가서 드러누워 버렸다. 몇 분이 지났을까. K의 귀에 기적처럼 변기 물이 빠져 내려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진짜 뚫린 거야?”

  놀란 얼굴로 화장실로 다가간 K의 눈에 거짓말처럼 깨끗한 물이 차 있는 변기가 보였다.

  “우와! 당신 이런 생활의 지혜는 어떻게 다 아는 거야? 진짜 신기하다.”

  K의 아내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그냥 아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건넌방으로 자러 들어가는 아내를 보며 K는 전날 했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머니와 함께든 아니든 어떻게든 아내 곁에 붙어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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