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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Jun 14. 2024

22. 우렁된장찌개, 아들에게 6대 4법칙을 들려주다

  

             

  K는 진즉 이런 방법을 생각해 냈어야 했다고 속으로 한탄했다. 어머니가 떠나실 날이 임박해서야 그는 마침내 어머니 입맛에 조율된 음식을 내놓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도 쉽고 당연한 방법이었다는 게…….

  그날 K는 우렁된장찌개를 끓이다 어머니에게 맛을 봐달라고 했다. 그게 K가 모처럼 성공한 요리를 만들어낸 비법이었다. 나흘 전 K의 어머니는 마트에서 파는 우렁된장소스로 찌개를 끓여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때 K는 우렁된장소스로 평소보다 적은 양의 찌개를 끓이다 간이 짜서 물을 더 부었다. K의 어머니는 짭짤하지 않은 국 같은 맛에 잘 드시지 못했다.


  다음날 끓인 순두부찌개는 간 돼지고기에 생강술 2숟갈을 넣는 단계에서 망치고 말았다. 생강술이 없어 생강가루를 2숟갈 넣어 생강 맛이 찌개를 점령해버리게 만들고 말았다. 하루 전엔 두부조림을 하다가 맛간장 대신 액젓을 5숟갈 들이부어 짜디짠 조림을 만들어 버렸다. 맛간장이 똑 떨어진 날이었는데 조선간장을 제대로 못 찾아 사달이 날 것이었다. 어찌나 짠지 국물 4분의 3을 덜어내고 그만큼 물을 부어서야 짜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그러느라 다른 양념들(맛술, 설탕, 올리고당, 후추)이 같이 빠져나가 밍밍한 두부조림이 되고 말았다.

  K는 그동안 왜 어머니에게 간을 봐달라고 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계속 요리에 실패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K의 어머니는 사흘 더 계시다 떠나기로 돼 있었다.     


  K가 어머니와 저녁을 먹고 난 뒤 설거지를 마칠 즈음 아들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K의 아들은 다이어트를 위해 고기를 구워 먹거나 알리오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설거지를 하진 않았다. 자기 먹을 걸 스스로 해결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한 ‘남자 사람’이라 인정해줄 만했다. 


  그랬던 한결이 그날은 밥을 먹고 난 뒤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K는 2년 전 아들이 직장이 된 후부터 설거지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2년 동안 K와 아내는 아들이 그저 직장에 잘 적응해 주기만을 바랐다. 아들에게 집안일로 잔소리를 하지도 부담을 주지도 않았다.

  “아들이 설거지하는 거야?”

  신기해하며 묻는 K의 얼굴에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들이 기특한 얼굴로 대답했다.

  “응. 할머니도 계신 데 같이 도와야지.”


  한결은 K가 홀로 할머니 수발과 집안일을 도맡은 걸 보고 조금이라도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듯했다.

  “야! 우리 아들 결혼할 준비가 다 됐네. 장가갈 때가 됐어.”

  K의 아들은 3년 사귄 여자친구와 일 년 후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결혼할 아들에게 K가 조언을 건넸다.

  “부부가 싸우지 않고 사는 법은 어떻게 보면 간단해. ‘내가 집안일의 6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사는 거야.”


  K의 아들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갸웃하는 아들에게 K가 말했다.

  “아무리 정확하게 집안일을 5대 5로 나눠서 해도 대부분 이런 생각이 든대. ‘내가 더 많이 하는 것 같아 억울하다.’ 남편과 아내 둘 다 그렇게 생각한다더라.”

  K의 아들은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지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해 전 딸이 결혼할 때 K는 <결혼하는 딸과 사위에게>라는 장문의 글을 카톡으로 보내준 적 있었다. 그때 K가 딸 부부에게 가장 강조했던 것도 ‘내가 집안일의 6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었다. ‘내가 한 일은 내가 다 알지만, 배우자가 한 일은 내가 다 알 수 없다’, ‘내가 6을 하고 상대가 4를 한 것 같을 때가 객관적으로 5대 5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K 주장의 요지였다.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니 K는 자신이 조금 더 일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땐 ‘이게 정상이다’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아내와 자신이 5대 5정도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땐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껴졌다.

  그렇게 살다 보면 K가 더 일을 많이 하고 살게 될 수도 있었다. ‘우주의 계산은 아주 정확하다’는 것이 K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확신이었다. 객관적 상황에서 K가 일을 많이 하는 시간이 쌓여 가면 아내의 마음에 ‘빚진 마음’이 쌓이게 된다. 인간의 의식은 정확해서 더 일을 많이 하는 듯한 배우자에게 ‘빚진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상대에게 뭐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어머니와 3주 동안 동거했을 때 K의 아내가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2달 더 계시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이전에 K에게서 ‘빚진 마음’을 느꼈기 때문일 거라고 K는 추측한다.

  물론 ‘빚진 마음을 갖게 해야지’라거나 ‘빚진 마음을 갖겠지’라는 마음으로 집안일 6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마음은 ‘강요의 에너지’로 상대에게 전해지고 상대의 마음에서 저항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는 마음’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K의 어머니는 떠나기 전날 K에게 “아들이 차려주는 밥 먹다가 집에서 어떻게 해먹을 지 모르겠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들의 수발을 당당하고 흡족하게 받으시는 어머니가 K는 좋았다. 아들이 기꺼이 해드리는 일에 미안해하거나 불편해했다면 K의 기꺼운 마음에 손상을 입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껍게 해드리는 일은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는 게 가장 좋은 것이다.

  다음 날 K는 어머니를 의왕 아파트에 모셔다드리고 돌아왔다. K와 어머니 모두 흡족하고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며칠 뒤 제주도의 남동생으로부터 K에게 전화가 왔다.

  “형, 어머니 3주 동안 모시느라고 고생 많았지?”

  순둥이 동생의 물음에 K가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다 할 줄 아는데 뭐가 힘들어? 내가 할 줄 몰라야 힘든 거지. 어머니 음식 해드리는 게 기쁘고 재밌더라구.”

  동생이 “그랬어?”라며 놀란 목소리로 K에게 물었다.

  정말로 K는 어머니와 기거하는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어머니의 필요를 채워드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뿌듯한 행복감을 느꼈다. 그건 리모콘 효자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충일한 행복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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