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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Jun 27. 2024

23. 된장찌개, 아내를 치유해 준 음식


제 부 – 요리가 선물해준 인생 리부트             

       


  23. 된장찌개아내를 치유해 준 음식         

      


  몇 해 전 K의 장인은 오월의 눈부시고 따사로운 햇살이 푸르른 하늘에서 막힘없이 쏟아져 내리는 날 세상을 떠났다.

  그날 K는 집 근처 병원의 외과 과장이라는 사람에게 장인어른이 임종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다급히 자전거를 타고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자전거 페달을 어떻게 밟는지 모른 채 달려가는 동안 K는 자꾸만 외과 과장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여느 아침처럼 그가 차려 드렸던 아침을 잘 드셨던 분이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에 도착하셨다니…. 누군가 외과 과장이라고 속이고 장난 전화를 한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이런 장난은 하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집에 도착한 직후 K는 아내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지하 이층 영안실.’

  장인어른의 우주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K는 그제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때보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푸르른 잎들 너머로 눈부신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실로 오랜 만에 목욕탕에 가셨던 장인어른은 뜨거운 물이 출렁이는 탕으로 들어가신 순간 아득히 세상을 등지셨다고 했다. 장인어른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날에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따뜻한 물속에서 잠들 듯 돌아가셨다.


  다음 날 입관식을 할 때 아내는 장인어른을 끌어안은 채 울부짖었다. “아부지, 미안해…. 아빠가 미워서 그랬던 게 아니야…. 그래도 작별인사는 하고 갔어야지….”

  장인어른은 살아계셨을 때보다 더 평화로운 얼굴로 누워 계셨다. 마침내 안식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그다음 날도 눈부신 햇살이 화장장으로 쏟아져 내렸다. K 부부는 화장이 끝난 장인어른의 뼈가루들을 뿌려드린 뒤 집으로 돌아왔다.


  K의 아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후 내내 쓰러져 잠이 들었다. 지치고 평온한 얼굴로 잠이 든 아내를 보던 K는 가슴 깊은 곳에서 아내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 올랐다.

  K는 주방으로 가서 정성을 다해 찌개 끓일 준비를 했다. 그즈음 그는 요리책 몇 권을 사서 막 요리에 입문한 차였다. 김치찌개, 감자고추장찌개, 황태국 등 책에 나온 레시피대로 만들어 보면 제법 맛이 났다. 그중에서 아내로부터 가장 호평을 받은 것은 된장찌개였다.

  K는 냉장고를 뒤져서 호박과 양배추, 버섯 등을 꺼냈다. 베란다에 있던 양파와 감자 3알도 가져왔다. 큰 냄비에 물을 올리고 멸치다시 팩을 넣고서 끓이며 감자 칼로 감자부터 깎았다. 감자를 썰고 버섯과 호박을 써는 K의 손길에 절로 최대한의 정성이 담겼다.     


  K의 아내는 장인어른과 함께 살아온 여섯 해 동안 때때로 아버지와 감정적으로 충돌하곤 했다. 장인어른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위와 손주들에게 상처를 줄까 봐 홀로 맞서 싸웠던 것인지도 몰랐다. 십일 년 전 장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장인어른은 지독한 외로움과 싸워오셨다. 장인어른에게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한 명이 없었다. 병들어가는 몸과 나약해져 가는 마음은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감정적 고통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마다 장인어른은 딸과 충돌하게 되었고 한바탕 전투가 벌어지곤 했다. 그러고 난 뒤에는 부정적 감정을 씻어내신 듯 한동안 안정을 되찾곤 하셨다.


  딸과의 충돌은 자신이 여전히 관심을 받고 있고 소통을 하고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해드린 듯했다. 사실인즉 아내의 싸움은 관심이고 사랑이었다. 장인어른에게 기본만 해드리고 적당히 중립을 지키는 자세를 고수했던 사위는 결코 넘볼 수 없는 핏줄의 정이었던 것이다.


  노화는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멍에가 되는 과정이다. 노년은 점점 나빠져 가는 일밖에 남은 게 없는 세월이기도 하다. 그런 노년과 함께 생활하는 일은 결코 좋은 날만 계속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궂은 날도 있고 참담하게 절망적인 날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K의 아내는 그런 날들을 잘 버텨내 왔다.     



  K는 초췌한 개선장군처럼 돌아와 잠이 든 아내에게 최고의 상을 주고 싶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최선이 담긴 된장찌개였다. 끓는점을 향해 나아가는 국물에 감자와 버섯을 넣자 냄비 속의 열기가 잠시 사그라들었다. 호박과 양배추를 썰어 넣고 팽이버섯도 씻어 넣은 뒤 뚜껑을 닫았다.

  국물이 끓어오를 즈음 뚜껑을 열고 냉동 꽃게 네 조각을 풍덩 던져 넣었다. 마늘도 한 숟갈 떠 넣었다. 꽃게는 K표 장찌개의 화룡점정이라고 볼 수 있었다. 꽃게는 된장찌개에 있어서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식재료’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자연드림 된장 두 숟갈과 간장 두 숟갈을 넣은 뒤 한소끔 푹 끓인 후에 두부를 썰어 넣고 대파도 잘게 썰어 넣었다.


  된장찌개가 완성되었을 즈음 구수하고 향기로운 냄새에 K의 아내가 잠을 깼다.

  “우와! 너무 맛있는 냄샌데!”

  K는 잠이 깬 아내를 위해 저녁 밥상을 차려주었다. 아내는 그가 만든 된장찌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맛이라며 감탄을 그칠 줄 모르며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K의 장인어른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치매 증상이 악화되어 두 번 ‘사고’를 치신 적이 있었다. 한 번은 한밤중에 깨셔서 아파트가 무너진다며 공포에 떨다가 대변을 보셨다. 또 한 번은 새벽에 아이스박스를 들고 대변을 보러 밖으로 나갔다가 변을 지리기도 하셨다. 그 사건이 있고 난 후부터 장인어른은 음식을 아주 적게 드셨고, 최대한 늦게 주무시려고 애쓰셨다.


  그 얼마 뒤 심방예배를 드리러 오신 담임목사님에게 K의 장인은 이렇게 덤덤히 말했었다.

  “요즘은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많아요. 남은 바람이 있다면 자식들 힘들게 하지 않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하고 있어요.”

  그런 말씀을 하시며 쑥스러운 듯 희미하게 웃으시던 장인어른의 모습이 K는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루하루 전쟁 같기도 했던 아버지와의 동거를 K의 아내는 무사히 완수해냈다.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울부짖었지만 그의 아내는 끝끝내 승리한 딸이었다.     


  K의 정성 가득한 된장찌개 상도 아내로부터 성공적이라는 응답을 받았다. 그날 이후로 K의 아내는 지인들에게 아버지를 떠나보내 드렸던 날 남편이 끓여주었던 된장찌개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두고두고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K의 된장찌개는 주부 9단인 아내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능가한 유일한 요리라는 인증을 해주기에 이르렀다. 그 후로 아내는 집에서 된장찌개를 거의 끓인 적이 없고 된장으로 끓이는 찌개 요리는 오직 K의 차지가 되었다.


  어쨌거나 K는 된장찌개를 끓일 때마다 장인어른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허무하고도 아득한 마지막을 떠올리다가 그도 장인어른처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들과 딸들이 안정적으로 살고 있고 손주들도 장성하여 의젓해졌을 즈음이 되면 장인어른처럼 평화롭게 잠자듯이 몸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장인어른처럼 작별인사도 없이 홀연히 떠나고 싶었다. 마지막 인사라는 것은 아무리 아름답고 정이 넘칠지라도 어찌할 수 없이 슬플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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