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 두레 대심방을 앞두고 K의 아내는 몸과 마음이 부산했다. 일주일 동안 도배한 지 20년 가까이 되는 집을 닦고 정리하느라 바빴다.
K의 아내는 처음에 메인 메뉴를 집 앞 정육점의 주문 돼지고기 수육으로 하려고 했다. 그러다 사흘 전 메인 메뉴를 남편에게 맡기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주저하는 K에게 아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당신 요리 잘한다고 교회에 파다하게 소문났으니까 알아서 해봐. 된장찌개랑 닭볶음탕으로 하면 되겠네.”
된장찌개는 아내가 최고로 인정해준 요리였기에 K도 조금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닭볶음탕이었다. 된장찌개랑 잘 어울리지 않는 듯했고, 먹기 위해 손을 써야 한다는 점도 걸렸다. K는 아내와 조금 고심하다 된장찌개의 파트너를 제육볶음으로 바꿨다. 그의 요리 중 요리 스승인 아들이 가장 맛있다고 감탄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참석 인원이 더 늘어 총 12~13인분의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K는 대심방 하루 전날 사전연습 겸하여 앞다리살 3근으로 여유분의 제육볶음을 만들어 두었다. 요리연구가 <이보은의 제육볶음> 레시피였는데, 제육 600그램(앞다리살 300g, 삼겹살 300g)에 버무릴 양념 7종(고춧가루, 고추장, 다진 마늘, 간장, 맛술, 매실액, 설탕)이 모두 2숟갈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마침내 대심방일이 되었다. 퇴근 후 K는 5시쯤 집에 도착하여 두 시간 동안 메인 메뉴를 준비했다. 앞다리살 두 근과 삼겹살 한 근에 양념 6종을 6숟갈씩 넣어 버무린 뒤 재워두었다. 이어서 다시팩을 넣은 육수에 감자와 송이버섯, 표고버섯, 팽이버섯, 애호박을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다른 날엔 넣지 않는 우렁을 듬뿍 넣었고, 자연드림된장과 조개된장, 미소된장을 크게 한 숟갈씩 떠 넣어 푹 끓였다.
된장찌개를 완성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양파 세 개와 파 2대를 썰어 식용유를 두른 냄비에 넣고 볶았다. 양파가 살짝 익었을 즈음 양념한 고기를 넣고 한참 볶았다. 커다란 냄비에 세 근의 고기를 볶는 일은 시간이 꽤 걸렸다. 20분쯤 지나니 양파와 파가 녹아 국물이 자작하게 끓으며 맛있는 냄새가 올라왔다. 이로써 메인 메뉴의 준비를 다 끝낸 것이었다.
K의 아내는 며칠 동안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어 놓았다. 무생채와 콩나물무침, 멸치볶음, 가지무침, 깍두기 등을 풍성하게 준비했다.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손님들이 도착했다. 손님용 커다란 상에 작은 상까지 펴야 했다. 주방으로 상 차리는 일을 도우러 온 여자 집사님들에게 K가 말했다.
“자매님들, 오늘은 그냥 앉아 계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K 부부는 서둘러 밥을 퍼서 12개의 그릇에 담았고 된장찌개도 국그릇 12개에 퍼담았다. 두 부부가 알아서 하기엔 시간이 걸리고 손이 분주했다. 결국 여집사님들의 손길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여 집사님들이 밥과 국을 옮겨 주시는 동안 세 개의 접시에 제육볶음을 듬뿍 담아 통깨를 뿌려 상에 올렸다.
K의 아내가 준비해 놓은 반찬이 7~8개나 되어 한정식을 방불케 하는 상이 차려졌다. 목사님이 된장찌개가 맛있다며 감탄을 하셨다. 제육볶음을 드시고 난 사모님이 레시피를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유튜브에서 <이보은 제육볶음> 치시면 나와요, 사모님.”
“아, 저도 이보은 알아요. 이금희 아나운서 닮은 분이잖아요.”
K가 맞다고 하며 사모님과 크게 웃었다. 사모님은 그 레시피로 꼭 제육볶음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옆자리에서 된장찌개를 떠먹고 난 홍 집사님이 K에게 농담조로 말했다.
“아, 이거 맛있으면 안 되는데….”
아내인 안 집사님에게 “손 집사님처럼 요리 좀 해보라”고 푸시 받을까 봐 걱정되는 듯한 뉘앙스였다. 그러던 홍 집사님은 잠시 뒤 메인요리에 대해 극찬을 해주었다. 된장찌개와 제육볶음을 묶어 단일 메뉴로 장사를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자주 찾아가는 소하동의 <돼지집>이라는 맛집이 있는데 돼지두루치기 메뉴 하나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했다. ‘된장제육백반’으로 이름도 정해주었다.
목사님과 집사님들이 된장찌개와 제육볶음을 맛있게 먹는 모습에 K는 ‘엄마 마음’ 비슷한 감정이 생기는 게 느껴졌다. 된장찌개 냄비를 들고 와 비어 가는 국그릇에 찌개를 더 부어 드렸다. 그러다 아예 밥과 찌개를 큰 그릇에 담아 상에 올려놓았다. 더 드시고 싶은 분들이 편하게 덜어 드시도록.
K에게 가장 큰 감동을 안겨 준 말은 전도사님의 멘트였다.
“집사님, 너무 맛있어요. 마치 친정집에 온 것 같아요. 어머니가 해 주신 맛이에요.”
손님들의 과분한 칭찬에 K는 몸 둘 바 모를 지경이 되었다. 요리 입문 5년 만에 손님맞이 메인요리를 맡았는데,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내가 집안 정리와 밑반찬 준비 등을 하며 조연을 맡아준 덕분에 K가 주연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K가 정성껏 만든 요리를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일은 가족에게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행복감을 안겨 주었다. 이보은에게 레시피를 빌린 것이긴 하지만, 자신이 만든 음식으로 타인의 한 끼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요리 입문 이전의 생에서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신박한 기쁨이었다.
K는 얼마 전 읽었던 책 [인스타 브레인]의 내용이 떠올랐다. 자연 진화는 인간에게 오래 지속되는 행복감을 심어 주는 데 인색했다고 했다. 우울과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즐거움을 누리는 일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와 친구들과 어울릴 때, 연인을 안을 때, 사회적 성취를 얻을 때 등에 인간은 ‘일시적으로’ 행복감을 느껴왔다.
그 중 첫 번째로 꼽는 것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라는 건, 요리가 인생의 행복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하루 세 끼 밥 먹는 시간,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씩’이나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자연 진화의 엄청난 선물로 보였다.
맛있는 행복은 즐거운 대화로 연결되었다.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맛깔스러운 반찬들로 행복해진 손님들은 식사를 마친 후 과일을 먹으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 맛난 음식을 먹고 행복해진 뇌가 서로에게 기쁘고 훈훈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게 한 듯했다.
손님들이 더 즐거울 수 있었던 건 안주인 만의 노고와 희생으로 만찬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터였. 남편과 아내가 함께 노동하고 기쁘게 협력하며 만든 음식이었기에 더욱 뛰어난 맛과 행복감을 선사한 것 같았다.
두 시간의 즐거운 식사와 흥겨운 대화 뒤에 손님들이 떠나갔다. 저녁을 먹은 후 이 집사님이 설거지를 한 판 해주셨음에도 꽤 많은 설거지가 남아 있었다. K가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며 말했다.
“손님맞이를 당신이랑 내가 분담해서 하니까 훨씬 수월하지?”
K의 아내로부터 돌아온 것은 칭찬보다는 원망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예전에 당신은 명절마다 도서관 갔다가 저녁 시간에 딱 맞춰서 나타났잖아. 이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지?”
“그랬구나, 그랬어. 그땐 내가 미생의 인간이었어.”
십여 년 전의 K는 그야말로 미생(未生)이었다. 아내가 몇 날 며칠을 만들어 놓은 음식을 먹기만 하고 설거지조차 하지 않던 남편이었다. 결혼 후 K가 명절에 설거지를 하는 데 십 년이 걸렸다. 그 후 명절에 요리를 하는 데 다시 십 년이 더 걸렸다.
요즘 K는 조금이나마 만회하고 싶은 마음에 아내보다 더 자주 요리하고 설거지하려고 노력했다. 요리는 그의 삶에 회복과 치유를 안겨 준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