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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Jun 10. 2024

21. 녹두 삼계죽, 며느리를 안아주게 만든 보양식

          

  K의 아내가 K를 배신했다. 아름다운 배신이었다. K의 어머니가 집에 온 지 두 주 반이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퇴근 후 K는 모친상을 당한 동료 교사의 문상을 다녀왔다. 그는 45년 동안 어머니와 한집에 살다가 작별을 했다고 했다. 태어난 집에서 대학에 가고 결혼을 한 뒤 죽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 왔던 것이다. 팔순 노모의 삶이 무너졌던 몇 해 동안 그가 지나온 길이 어떠했을지 함께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를 터였다.

  동료 교사는 어머니의 몸이 무너진 상태가 이어졌을 때 “이제 편히 가세요. 그게 아들을 위한 일이에요”라고 말했다고 고백했다. K는 그가 간 길에 비하면 자신이 지금 어머니의 수술 후 요양을 해드리는 일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미약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가 상가에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저녁을 드신 후 잠들어 계셨다. 여자배구 4, 5세트를 남편과 함께 보던 아내가 넌지시 K에게 말했다.

  “어머니한테 불편하지 않으시면 2월까지 두 달 더 있다 가시라고 했어.”

  그건 K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다음 주에 아내는 호주 딸네로 가서 5주 동안 지내고 올 예정이었다. K는 1월 한 달 동안 어머니를 혼자 모셔야 할 터였다. K가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 호주 가 있을 거라고 막 질렀구만.”

  K의 아내는 K가 생각하지 못한 일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아파트에서 마트가 너무 멀잖아. 장 보러 다니다 넘어지시면 큰일 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끔찍한 수술을 다시 하셔야 할 터였다. K가 어머니 반응은 어떠셨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어머니 입이 찢어지게 좋아하시던데?”


  K의 어머니는 열흘 뒤 당신 아파트로 돌아가 지낼 일이 막막하셨을 터였다. 성치 않은 몸으로 집안일에 조카 뒷바라지까지 엄두가 나지 않으셨을 것이다. K의 어머니는 아들 집에 있는 게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당신 호주에서 2월에 돌아와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거 불편하지 않겠어?”

  K의 물음에 아내가 쿨하게 대답했다.

  “뭐가? 2주 동안 출근할 거고 지인들이랑 제주도 여행 다녀오면 금방 갈 텐데.”


  K는 ‘돌봄 노동은 아들이 하고 생색은 며느리가 낸 것인가’라는 생각을 슬쩍 해봤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아내가 그런 생각을 자신보다 먼저 하고 어머니에게 제안해 준 게 K는 고맙기 그지없었다. K는 아내를 통해 여성성의 놀라운 배려와 사려 깊음에 다시 놀라게 되었다.

  어머니가 열흘쯤 뒤 본가로 돌아가시기 전에 몸이 성치 않아 아들 집에서 더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면 K는 물론 흔쾌히 그러시라고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어머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도 아닌 며느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다음 날 K가 집에 도착해 보니 어머니가 절친인 오 권사님이 낮에 다녀가셨다고 했다. K의 어머니는 하루 새 마음이 바뀌었다.

  “아범, 나 그냥 한 달 채우고 병원 진료받는 날 집에 갈래.”

  “네? 두 달 더 계신다고 했잖아요.”

  K의 어머니는 제주도의 딸이 인터넷으로 장을 다 봐줄 것이기 때문에 요리하는 일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따뜻한 봄이 오기 전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며 아들을 달래기도 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어머니 친구분들이 빨리 돌아오라고 닦달을 한 듯했다. K의 어머니 집이 거의 교회 분들 사랑방이었기에 많이들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K는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도 딸도 친구는 못 이기는 법이었다. K는 어머니가 아들네서 어지간히 심심하셨던 가 보다 싶었다.          


  3주가 훌쩍 지나갔고 어느덧 아내의 출국일이 되었다. 아침을 먹던 K의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마음을 담아 말했다.

  “엄마가 3주 동안 며느리 사랑 듬뿍 받고 간다. 정말 고마웠다, 우리 며느리.”

  K의 어머니 얼굴에선 고마움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K의 아내 얼굴에서도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K의 어머니는 전날 며느리가 만들어 드린 삼계녹두죽을 맛있게 먹었다. 원래 그날 저녁 메뉴는 K가 만두전골을 끓이는 것이었다. 일요일이었던 전날 아침에 K의 어머니가 넌지시 며느리에게 부탁했다.

  “아범이 만두전골 하는 건 필수로 하고. 이따가 네가 저번에 해줬던 삼계탕 끓여주면 좋겠다.”

  K가 씁쓸하게 웃으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럼 만두전골은 다음에 하죠, 뭐. 환자가 원하시는 것 해드려야죠.”


  오후에 K는 시장에 가서 큼직한 토종닭 두 마리를 사 왔다. 아내가 웍 2개에 토종닭과 인삼, 녹두, 찹쌀을 넣고 푹 끓여 드렸다. K의 어머니는 커다란 닭다리 하나와 녹두찹쌀죽을 맛있게 다 드셨다.

  K가 어머니와의 동거 3주를 돌아보니 어머니가 흡족하게 드신 음식은 아내가 만든 것들이었다. 전복이 가득 들어간 전복죽과 찹쌀을 갈아서 넣은 호박죽, 코다리찜, 굴비구이, 조기조림, 황태국, 물김치, 수시로 쪄드린 고구마, 밤, 옥수수 등을 전부 맛있게 드셨다.


  K는 요리 좀 한다고 설레발만 쳤을 뿐 안타를 친 게 거의 없었다. 시어머니가 아들 요리는 신통찮아 하면서도 며느리 요리를 맛있게 드시니까 K의 아내도 신이 나서 해드린 것 같았다.     

  K의 어머니가 캐리어를 들고 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하던 며느리를 안아주며 말했다.

  “네가 28년 전 처음 인사하러 왔을 때 안아주고 두 번째 안아주는 거 같구나. 몸 건강히 잘 다녀와라.”


  3주간의 동거 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한결 가까워진 듯했다. K는 자신이 초짜 요리사라는 게 들통난 시간이었지만 더없는 기쁨과 감사를 느꼈다. 아내와 어머니의 짧은 동행이 해피엔딩으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K는 자신이 어설프고 허당이어서 아내가 더 빛이 났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는 부실하고 망가질수록 명품 조연이 되는 때가 있는 것 같다고 K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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